능동적으로 사적 이익을 취하는 사람을 키우는 교육은 아닌가?
몇 년 전 ‘SKY캐슬’이라는 드라마가 비지상파 채널 사상 최고의 드라마 시청률을 기록하고 마쳤다. 관련 전문가들은 현재 대치동 중심의 강남 교육을 그대로 보여 준다며 드라마에서 보여 주는 사교육 대부분은 현실이라고 평한다. 드라마를 쓴 작가는 사회정의에 대한 남다른 문제의식이 있다고 평가를 받았다. 이 드라마도 한국의 잘못된 교육관으로 인해 괴물을 길러낸다는 우리 교육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그런데 입시 문제의 담론이 형성되기는커녕 입시 코디에 대한 문의가 급증했고 드라마에서 나온 공부 잘하는 학생이 사용하는 책상 판매량이 증가했다는 기사를 보면 당황스럽다.
2021년 12월 '다수의 수다'라는 방송에서 대한민국 일타 강사들이 출연해서 대화하면서 '입시 코디네이터'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SKY캐슬'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던 입시 코디네이터. 이날 일타 강사들은 "실제 대치동에 입시 코디네이터가 존재한다"고 입을 모았다. "코디가 생활기록부를 모두 관리해주는데 연 2000만 원이다"며 "거기 적히는 모든 걸 다 관리해준다"고 말해 듣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그렇다고 수능 결과가 보장되는 게 아니지 않나"는 진행자의 말에는 "아니다"며 "그게 전형적인 대한민국 현실"이라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네 개 부분에 상을 타면서 그를 통역한 ‘샤론 최’까지 덩달아 인기인이 되었다. 봉준호 감독의 통역사로 활동한 최성재(샤론 최) 씨가 강남 대치동의 어느 영어학원에 중학생까지 다녔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학부모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다. 이 학원에 "샤론 최가 어떤 수업을 수강했냐"는 학부모들의 문의 전화가 빗발쳤고 맘 카페에서는 "아이를 샤론 최처럼 키우고 싶다"라는 글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험까지 치러야 하는데도 이미 수개월의 예약이 끝난 상태라고 전해진다.
기생충이라는 영화에서 주제로 삼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빈부격차의 아픔에 공감하기보다는 감독이 유명한 상을 타니 그의 옆에서 통역을 너무 잘한 외고 출신의 샤론최에게 집중하는 학부모들의 모습을 보면 씁쓸함만 더해진다. 이런 욕구를 보이는 부모들이 원하는 자녀 상은 무얼까?
사람다운 삶을 위한 뜻과 이상, 철학 등의 본질적 가치에 집중하기보다는 능동적으로 사적 이익을 강하게 취하는 사람들은 아닌가? 생각 없이 입시공부만 시켜서 철저히 자기 탐욕에 기인한 사적 이익을 취하는 기생충의 숙주가 되고 싶어 미친 듯이 달리는 것만 같다.
수년간 학생들의 직업 선호도 1위는 교사다. 최근 들어 초등학교에서만 1위가 운동선수, 2위는 교사, 3위가 크리에이터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중고생들의 희망직업 1순위는 교사(교육부에서 2021년 1월 발표한 ‘2020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 결과 중)다.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 직업을 고를 때 가장 고려하는 점이 수입이나 안정성이 60% 가까이 되고, 적성이나 흥미는 16% 내외 나온다.
통계적으로만 보면 교사가 수입이나 정년 보장이 되는 안정적인 직업이기 때문에 선호하는 직업 1순위가 되는 것으로 읽힌다. 안정적이면서 자신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고 여성일 경우 결혼 1순위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지인인 초등학교 교사와 대화 중 통계적으로 안정성이 우선되는 교사라는 직업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게 뭐 어때서요?”라며 쉽게 받았다.
‘안정성’은 교사를 하고자 하는 이유의 한 부분이나, 이에 더해서 교사의 본분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 친구 말이 맞다. 경제적 안정성에 기반하여 교사의 본분에 집중한다. 교사의 본분은 교육이고 그 대상은 학생이다. 학생을 입시의 대상이 아닌 사람으로 인지할 때 공교육의 본질에 접근된다. 의사가 되고 싶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전문직으로 다른 직업군보다 수익이 높은 이유는 그들의 노력에 따른 전문성을 가지고 환자를 살리는 일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본분(교육, 의료 등)을 다하지 않고 자기 수익이나 개인의 안정성만을 찾아갈 때 학생이나 환자는 사람이기 보다는 사적 이기성의 대상이 된다. 이 때에 당사자도 불행해지기 쉽다. 나의 이기성을 발현하면 좋은 것이지 당사자가 돼 불행해 지느냐고?
교원 명예 퇴직자 수는 2017년 이후 계속 증가 추세였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0년 8,024명까지 늘었다가 2021년 조금 줄어들었다. 교사들의 명퇴 증가를 교원 단체는 교권 추락을 원인으로 내세운다. 명퇴 신청이 갑자기 줄어 든 원인은 코로나19 장기화로 대면 수업이 줄면서 학생‧학부모와의 갈등이 줄었고 경기 침체가 이어진 탓으로 보면서, 퇴직 이후 할 게 없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명예퇴직을 하려는 사람이 줄어든 것 같다.
나이 들어 가면서는 학생을 만나는 것을 힘겨워 하는 교사가 있는 모양이다. 교사의 본분은 학생에 있는데 학생을 만나는 일이 어렵다면 삶이 얼마나 고될까?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면 그 힘겨움을 바로 알게 된다. 환자를 보는 게 고통스러운 의사를 생각해 보았는가?, 작가인데 글을 쓰는 게 너무 고통스럽다면 어떤가?, 배우가 연기를 가장 힘겨워 한다면?, 나 또한 현장에서 청소년과 함께 그 주변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와 회의, 교육 등이 주된 일인데 사람 만나는게 두렵다면 어떻게 될까?
누구나 일의 본분을 놓치면 안정성은 상실되고 만다. 안정성이란 단순히 돈과 여유 있는 시간만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그 일이 자신의 삶에 어떤 고민과 성찰을 하며서 직업 본분에 집중해야 하지, 단순히 사회적인 경쟁에서 이겨서 자신의 안위만을 찾기 위해 선택한 길이라면 불안이 커질 개연성이 크다. 프리랜서로 경제적인 안정성이 덜하더라도 안정감을 가지고 행복할 수 있는 청년들이 의외로 많았다.
청소년들이 안정성을 갖는 이유는 현재 하는 일 안에 의미가 있고 나름의 비전을 향해 간다는 것을 자신이 안다는 거였다. 경제적으로 보장된 지속적인 안정성이 그들이 추구하는 안정감이 아니었다. 어렵지만 하는 일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이 안정감의 근원이었다. 교사나 공무원, 공사 직원일지라도 그 일 자체가 비전이 있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기지 않을 때 안정감은 낮아지기 마련이다.
내 자녀는 남보다 조금은 편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기를 원한다. 우리는 모두 이기적이고 대다수 부모가 자녀들에게 원하는 일이 그렇다. 나도 그렇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안정적으로 잘 살기를 바란다. 문제는 본질은 망각하고 사적인 이기심만을 강화할 때 그런 부모의 마음과는 다르게 의사 같은 전문직을 가지거나 고시를 패스해서 공무원이 되어도 정작 안정적이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 자녀가 혹시라도 교사가 되어서 경제적이고 시간적인 여유만 찾으면서 학생들을 월급의 대상으로 여기거나, 의사가 되어 환자의 병을 통해 돈을 버는 수단으로 여겼을 때의 삶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언론에서 나오는 극소수 의사의 돈에 병적인 집착에 대한 문제와 소수 교사의 황당한 문제들을 마주할 때면 분노할 때가 많다. 이런 사람들이 내 자녀, 혹은 내가 교육하는 학생이 아니라는 법이 없다. 정작 안정성을 추구했는데 안정은 없이 오직 경쟁과 돈의 노예로 전락해서 불안에 찌든 삶을 살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의사, 엔지니어, 검사, 공사의 직원, 공무원 등 수많은 직업에는 그 일의 행하는 과정에서 일의 가치와 본분이 존재한다. 모두가 그 일을 행하는 공간에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안정성이나 연봉에 대한 부분도 고려해야 하나, 그 일 자체의 정체성과 본분에 집중할 때 지속적인 즐거움과 감동은 당연하다. 우리가 자녀에게 교육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사적 이기성을 넘어서 그 일 자체의 본분에 맞추어 공적 가치를 알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다. 방법은 단순해진다. 청소년을 관리 통제의 대상으로서 무엇을 주입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 소통 하면서 그 일의 본분이 무엇인지,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노력이다.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교사는 학생의 교육과 진로에 집중해야 한다. 어차피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그럼에도 그 일의 가치와 철학, 이상을 붙잡고 만나는 사람을 존중하고 일의 과정에서 감동하면서 나름의 재미를 찾아서 살 것인지, 사적 이기성만을 취하면서 자신의 기득권만을 찾으면서 타자를 관리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살 것인지? 그 결정은 당사자의 몫이다. 청소년이 자기 삶에 참여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부모와 교사 등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청소년 개인이 가져야 할 성찰에 따른 나름의 가치 있는 ‘자기 결정권’을 삭제시키는 사람 잡는 ‘선무당’ 만큼은 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