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잊기좋은 이름, 열림원, 2019
#오늘의 문장
과연 김애란이다. 그녀의 문장들은 스타일리쉬하다. 이야기의 무게에 가려 있지만, 그녀의 문장은 리드미컬한 미학성을 갖추고 있다. 인물들에게서 해방된 문장들은 자유분방하고 아름답다. 그저 자신의 삶에서 길어올린 문장들은 그 자체로도 서사적이다.
사치와 허영과 나란히 놓인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이 삶에 깃드는 것이 좋았다는 작가의 고백은 ‘깃든다’는 동사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우리를 허문다. 깃드는 것이 무엇인가. ‘아늑하게 서리어 드는 것’. 생존이라는 가열찬 투쟁의 장에는 험악한 긴장이 가득하다. 가끔 그것은 걍팍한 언어로 서로를 찌를 수밖에 없도록 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더욱 고단한 시간으로 내몰기도 하는 것이다. 생존은 그러하다. 그러니 생존을 위한 삶에 아름다움이 어디 내려 앉을 틈이 있을까.
그러나 작가는 그 생존의 삶에, 한 틈을 내준 것을, 부끄러운듯 살포시 고백한다. 이 문장에 핵심은 ‘아름다움’일 것이다. 이 짐작은 이 문장의 마지막 명사가 ‘아름다움’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어쩐지 이 아름다움과 생존을 가까이 두는 것이 부끄러웠던 것일까. 생존과 아름다움 사이에 사치와 허영을 집어 넣었다. 덕분에 이 문장은 부끄러운 자조가 되었다. 아름다움을 사랑한 작가가 그것을 에두른 것은, 생존의 삶에 미안한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생존의 삶들이 놓친 사치와 허영을 용서하고 싶었던 것일까.
김애란의 이 문장이 은연중 불러일으키는 쓸쓸함과 체념어린 자조는 문학인들의 나약함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관통하는 이 스타일리쉬한 문장들은 매력이 넘친다. 생존 어디에 아름다움이 있겠는가. 처연한 처절함과 일상의 고단함만이 생존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것만으로 생존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가끔 우리 삶에 선물 같은 허영과 눈물 한 방울 같은 사치가 반짝 빛나는 아름다움인가 싶다. 오늘은 이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