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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al IK Jul 15. 2016

[Travel] 여행이란?

여행 이후의 삶을 통해 묻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 명이다. 

모든 것이 이 말에서 시작되었다. 

지금 햇볕이 살짝 비켜 지나가는 창이 있는 상파울루의 작은 사무실 공간에 앉아 지난 여행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대학교 시절 수업시간 중 우연이 들었던 저 말 때문이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항상 했었으므로(지금도 하고 있고), 그전에 하고 싶은 것은 해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때 교수님이 던진 버나드 쇼의 후회 앞에서, 처음으로 여행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항상 이상 앞의 현실은 참 웃프다.  

 이유는 항상 '고따구로 살 것인가?'라는 질문 뒤에 따라붙은 질척한 현실의 꼬리표들.. 당시 4학년 대학생이었던 내가 고따구로 살지 않고 뭔가 할 수 있기 위해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군에서 제대 후 알바하면서 모은 돈 몇 푼이었다. 정말 파견직 알바로 일하면서 모은 돈 몇 푼이란 표현이 정확하다. 아마 통장에 몇 백 이었다면, 당장 고따구 인생에서 탈출하기 위한 짐을 당장 꾸렸겠지. 그래도 잔고는 얼마 없었지만, 감사하게 나에게는 선택권이 하나 있었다. 한 번 정도는 내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선택권.  


'졸업까지 약 3개월 정도 남았으니 아껴 쓰고 퇴직금 받으면 대략 쓸 돈과 비행기 나오겠군.'


아껴 쓰면 비행기표를 사고, 비교적 물가가 쌌던 남미에서 쓸 비용은 충분히 모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략 마음을 먹자, 고따구 인생에 또 다른 현실의 꼬리표가 붙었다.


여행 후에는 어쩔 거?

 다른 애들은 다 졸업하고 취업할 텐데, 졸업 후 6개월 공백이 생기는 것은 어쩔 거냐? 

참 현실적인 질문이었다. 맞다. 내가 여행 다녀온다고 해서 한비아 씨처럼 여행계의 슈퍼스타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취업이 떡하니 되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지금부터 학원 다니며 토익 공부해서 점수라도 올려놓고, 졸업과 동시에 바로 직장을 알아보는 것이 났다. 지금도 처음 접하는 현실은 대학을 졸업하는 이들에게는 잔인하지만, 그때도 그랬으므로. 

괜히 어설프게 배낭여행 다녀온 다고 하고 한 6개월 놀다가, 면접관한테 책잡힐 이력사항을 만드느니 그게 더 현실적일 것이다. 


그런 고민을 하면서 약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아래 사진을 찍었다. 

Buenos Aires / Argentina, 마데로 항구에서, Photo by Neal

영어 이름도 생겼다. "Neal"이란 이름. 

이미 눈치 쳇겠지만, 어렸을 적 봤던 만화 'Nils의 모험'에 나왔던 주인공 이름이다. 

학부시절 영어라면 D와 C만 맞았고, "I am fine. Thank you. And you?" 수준의 영어 레벨 습득자에게 영어 이름이 생겼으니 촌놈이 출세한 거다. 

왜 굳이 영어 이름까지 만들어야 했을까?


What's your name?

당시 배낭여행하면서 돈을 아끼기 위해, 영문판 론니플래닛 South America 편을 구입해 도미토리라는 곳을 찾아다녔다. 도미토리란 배낭여행객을 위해 침대를 빌려주는 곳. 세계에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보겠다는 대의보다는, 보다 싸게 아끼며 여행하기 위한 얄팍한 수였다. 

하지만 튀는 페이스의 동양애가 수염 기르고 선글라스에 영문판 론니플래닛까지 들고, 안 그래도 동양인 없는 남미에 동양인 애가 다른 동양 인하고 안 어울리고 혼자 다니니, 다양한 나라의 호기심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들어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붙잡고 뭔가 엄청 많이 물어봤다. 거의 못 알아 들이니 답변이 시원치 않았고, 나중에 물어보고 물어보다가 대화가 되지 않아 결국 대화의 마지막은 항상 관등성명으로 마무리 되었다. 


My name is Neal. 

그래서 그냥 둘러대어 만든 이름이 "Neal"이다. 공교롭게도 지금까지 그 이름을 쓰고 있다. 

어쨌거나 'Neal'이 시작한 첫 여행은 3개월까지 이어졌고, 이후에 '여행 중독증'이라는 불치병에 걸려 다른 나라도 틈틈이 여행했다. 이런 여행하는 삶이 나에게 남겨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모든 여행가들이 꿈꾸는 론니플래닛 창업자인 '토니 휠러'와 같은 삶?

아니면 한비야 씨 같은 명예와 국제 전문가로서 살 수 있는 삶? 


아니, 없다.

아무리 좋게 쓰려고 해도 생각해보니 특별히 없다.

솔직히 저렇게 배낭여행 마치고 오면 난 뭐라도 될 줄 알았다. 

서울약대(서울에서 약간 가까운 대학) 출신인 나로서는 배낭여행을 했던 독특한 이력을 통해 대기업이라도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꿈이었던 PD, 기자가 되기 위한 시험을 보면 보는 족족 낙방했고, 한비야 씨로 인해 더 알려진 World Vision에서 면접 때 '(배낭여행을 좀 해서 그런지) 건방지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리고 중간에 모 잡지에서 여행기 연재하자는 제안으로 여행기 연재할 기회를 얻었는데 2회 연재 만에 잡지도 패 간 되었다. 오히려 되는 일이 없었다.


바람의 딸,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라는 그녀의 슬로건에 의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여행하고 지금도 하고 있는가? 하지만 대부분 많은 이들이 여행 후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물론, 여행을 통해 많은 성공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가끔 SNS 상에서 멋진 사진과 함께 소개되는 작가들이 있고 더러는 베스트셀러 작가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여행하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 지금 어떻게 사는지 보면 거의 90%가 넘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두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떠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렇다면 남는 것도 없고,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고, 가끔 좋은 풍경을 보기 위해 죽도록 고생해야 하는데, 여행은 왜 하는 걸까? 게대가 하고 나서 언제 볼지도 모르는 사진들만 있고 뭔가 남는 것도 없다. 하지만 왜 필요한가?


이에 대한 많은 훌륭한 대답들이 있지만, 나는 경험에 비춰본다면 좀 더 나은 삶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물질적인 보상이 아닌 질적인 보상이다. 여행을 통해 많은 이들을 만나고 해어지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면서 '여행은 삶의 조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현재의 삶의 문제들을 좀 더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때로는 내 주제를 넘어선 도전도 하게 되고. 


사람이 여행을 하는 것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하기 위해서이다.
 -괴테


배낭여행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알게 된 것은 여행은 참 많은 삶이 압축적으로 일어나는 경험이라는 것이었다. 만나고 헤어지고, 울고 웃고, 알게 되고, 떠나게 되고.. 등등. 모두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일이다. 

'삶=여행'이란 공식이 머리 속에 세워졌을 때, 좀 더 앞으로의 삶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용기가 생기게 되었다. 위에 인용한 괴테의 말처럼, 여행의 연장선이 삶이 되고 그리고 '여행하듯 한 삶'이 찾아온다. 삶을 여행으로 여정으로 받아들이는 수간이다.


그런 삶의 결과는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 상파울루라는 내가 태어난 곳 반대쪽에 있게 했다.  

그리고 난 적어도 죽을 때 우물쭈물하다가 인생 종 쳤다는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여행하듯 한 삶

이것이 사진 속에 마데로 항구 밴치에 앉아서 스스로에게 던졌던 '내가 왜 여기에 왔을까'라는 질문을 해던 과거의 나에게, 11년 후의 그런 과거를 살았던 내가 해주는 답이다. 



                                                                                                   From Sao Paulo

                                                                                                   by N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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