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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Mar 09. 2021

공정하다는 착각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이 기본 명제를 의심하지 않았다. 가장 공정하고 당연한 이치라 믿어 왔다.
이 책은 지금까지 완벽하다고 여겼던 능력주의가 공정하지 않다고 말한다.


"계급 장벽이 극복되고 누구나 오직 자신의 능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진정 공평한 기회를 갖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환영할 일이지만 과연 순전히 기뻐할 만한 상황일까. 능력주의는 승자에게 오만을, 패자에게 굴욕을 퍼뜨릴 수밖에 없다. 승자는 자신의 승리를 '나의 능력에 따른 것이다. 나의 노력으로 얻어낸, 부정할 수 없는 성과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다'라고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보다 덜 성공적인 사람들을 업신여기게 된다. 그리고 실패자는 '누구 탓을 할까? 다 내가 못난 탓인데'라고 여기게 된다."
(P59~60, 일부 내용 각색함)


성공은 여러 조건이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노력은 기본이고, 재능이 있어야 하고 행운도 따라야 한다. 부자면 더 좋고 빽이 있으면 더 수월하다.
이런 조건들을 가방에 메고 출발선에 서면 남들보다 높은 확률로 성공이라는 결승선에 도달할 수 있다.


달리기를 위한 출발선에 도전자들이 서 있다고 상상해보자.

처음엔 모두 가벼운 옷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있다. 도전자들은 자신이 가진 조건에 따라 달리기에 도움이 되는 장비들을 장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태어나보니 부자인 경우 자전거를 사용할 수 있다. 재능을 타고났으면 자전거는 다시 오토바이로 업그레이드된다. 행운이라는 바람이 불면 가속도가 붙어 남들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출발 조건은 달라진다. 재능도 운도 갖지 못한 데다 가난하기까지 하다면 낡은 운동화 한 켤레 신고 출발선에 서 있는 셈이다.


오토바이와 자전거, 맨발로 달리는 사람 간의 경주다.
결승선은 정해져 있고, 동시에 출발한다고 해도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오토바이를 탄 사람도 자전거를 탄 사람도 개인의 노력은 당연하게 들어간다.


개인이 갖고 태어난 재능과 처한 환경에 따라 성공으로 가는 길에는 차이가 있다.
이래도 능력주의가 공정한가?


자수성가한 사람도 자신이 가진 좋은 조건들을 종종 까먹는다.
자신이 쏟아부은 땀과 노력이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개인의 노력 이외에 플러스 요인이 분명 있었을 텐데 그걸 간과한다.
오랜 고생 끝에 누리는 달콤한 성공이라 보상심리가 강하게 발동된다. 성공한 사람의 오만은 어쩌면 당연한 권리인지도 모르겠다.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능력주의'의 단점은 이런 것이다.
재능과 행운, 부모의 재력과 질 좋은 선생님의 가르침 등 복합적인 요소로 얻어진 승리임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노력으로만 이룬 성과로 착각해 오만하다는 점이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나는 충분히 보상받을 자격이 있어"
"여기까지 내가 어떻게 왔는데, 이 정도는 누려야지"


패자는 실패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린다. 자신을 학대하고 책망한다.
"조금 더 열심히 할 걸"
"내가 더 잘했어야 하는데... 이런 바보 천치 같은 놈"


능력주의의 불공정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부작용을 인지하지 못하면 이런 슬픈 일이 벌어진다.
자신의 노력 이외에 운과 재능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걸 알게 되면 겸손 해질 텐데, 깨닫지 못한다.


한 의과대학에는 이런 유머가 있다고 한다.
아버지가 의대 교수면 성적과 상관없이 성골, 아버지가 성공한 개업의면 성적과 무관하게 진골, 가진 빽은 없지만 성적이 좋으면 6두품, 빽도 없고 성적도 별로면 천민이라는 거다.
'노력'에 '노오오오력'을 해도 평범한 사람이 오를 수 있는 최대치는 6두품인 셈이다.


능력주의는 개발도상국처럼 먹고 살기 빠듯하고 기본적인 사회를 구축하려는 국가에 적합한 것 같다. 국가가 안정되고, 국민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 능력주의는 한계에 이르고 변화가 필요한 제도로 보인다.
능력주의의 부작용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제도가 필요한 사회가 된 것이다.
어떤 제도로 대체할 수 있을까?


능력주의란 모두 같은 조건에서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게임인데,
기득권 세력이 진입장벽을 높여 놓은 상태로는 계층 간 이동은 요원한 얘기가 된다.
고착화된 기득권층은 자손에게 세습하고 싶어 하지 새로운 세력이 합류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눈에 안 보이는 불공정이 만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공정하다는 착각을 하며 산다.
서로 다른 리그에서 싸우고 있다는 걸 수많은 천민들은 깨닫지 못한다.
남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자기 최면을 걸며,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자신을 채찍질한다. 재능과 운이 따라주지 않음을 한탄하지 않고, 자신의 노력 부족을 자책하며 탓한다.


책은 초반에는 좋았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설득력이 조금 떨어진 느낌이었다.
다만, 능력주의가 완전한 진리라는 편견을 깨뜨려준 것과 잠시나마 사색할 수 있게 만들어준 부분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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