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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Dec 20. 2022

어느 쪽으로 가시오?

그쪽으로 걸을까 하여...



"아빠는 우리 딸 0점 맞아도 사랑한다~"



아이가 시험을 망쳐 우울해하거나 자존감이 떨어져 있을 때 
부모의 사랑을 일깨워주고 인생에서 성적이 차지하는 비중을 낮춰줌으로써 
다시 일상으로 즐겁게 복귀시키려는 목적의 대화다. 


'금쪽같은 내 가족' 이란 제목으로 한 정신과 의사의 비대면 강연을 들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참 다정하네, 멋진 부모네 하며 마음속 한편에 저장해둔다.


조곤 조곤 사례와 함께 풀어나간 강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사회생활에서 가장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관계'가 조직이나 사회생활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필요한 일임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이론대로라면 아빠의 사랑을 확인한 딸은 눈물을 그치고 어깨를 펴며 
평안하고 쾌활한 예전의 아이로 돌아와야 한다. 
따뜻한 감동은 덤으로 가슴 한 편에 다운로드된 상태로 말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의 반응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리얼하게 일깨운다. 


"아빠는 우리 딸 0점 맞아도 사랑한다~"
"그러면 어떡해 내 인생이 달렸는데~"

(아빠 당황... 어, 이게 아닌데...)


똑같은 상황이 와도 아이의 반응은 아이의 수만큼 생길 수 있는 변수임을 놓치고 말았다. 
그렇다면 저런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말을 해줘야 지혜로운 부모일까. 
강연의 의도는 꼭 그렇게 하기보다 상황에 지혜롭게 대처하라는 충고였을 테다. 
멘토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리저리 고민하며 응용을 해야 하는데 머릿속이 하얗다. 이런 상황에는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심화단계의 정답을 다시 이리저리 찾게 된다. 



부모와 자식은 평행선을 달린다. 


가난하고 배움이 많지 않아도 고성장 시대를 겪은 부모세대는 지금과는 다른 환경을 살아왔다. 스펙이 화려하지 않아도 성실과 노력만 있으면 직업을 구할 수 있었고, 한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하곤 했다. 노력해서 뭔가를 이룬 경험이 있는 부모는 지금의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부모의 눈에 아이들은 끝까지 해보지도 않고 너무 쉽게 포기한다. 
조금만 더 하면 될 텐데 안타까우면서도 끈기가 없는 거 같아 화가 난다.


가난하진 않지만 비슷비슷한 스펙 경쟁에서 차별화된 뭔가를 더 장착하려 노력한다. 
개인의 스펙은 계속 높아지지만 저성장 시대를 사는 자식들은 청년실업을 면치 못한다. 
불성실한 게 아닌데, 죽을 만큼 노력을 하는데도 결과가 따라주지 않는다. 실패와 좌절을 반복해서 겪는다. 이런 상황인데 부모들은 무턱대고 더 많은 성실과 노력만 강요한다. 
왜 시간낭비를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답답하다. 


요즘 MZ 세대는 학교에서 '노력하면 된다'라고 배웠지만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금방 알아챈 세대다. 저성장 시대에 태어나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졌음에도 현실은 '노답' 임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이자 똑똑하고 창의적인 세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도 했다. 


성실과 노력 말고 어떻게 해야 성공하고 부자가 될 수 있는지 새로운 길을 궁리한다.
주식과 코인의 열풍은 이런 세대에 청년들이 취할 수 있는 제일 가능성 높은 선택지 인지도 모르겠다. 



부모와 자식은 최소 스무 살 이상의 차이가 난다.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는 요즘이라면 나이 차이는 더 크게 벌어진다.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스무 살 나는 사람과 대화라는 게 제대로 통할리 없다는 걸 안다. 소통이나 상호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인 가르침이고 충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는 그들을 꼰대로, 불통의 대상으로 만든다. 
의도를 갖고 꼰대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나쁜 길로 인도하지 않는 그들은 그들대로 억울하다.



부모와 자식은 세대차이가 존재하는 채로 태어난다. 불통을 기본값으로 갖고 출발한다. 
불협화음이 당연시된 관계에서 호전을 바라는 일은 요원하다. 수많은 삐걱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릴 때부터 계속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며 정(情)이라는 걸 쌓았다는 점이다. 


아이가 어른에 가까운 나이가 되면 몸도 마음도 부모의 보호가 필요하지 않다.
말 잘 듣던 착한 딸과 아들은 점점 자아가 생기고, 세대차이 나는 부모에 반기를 든다.
성장한 아이는 절대자라고 여겼던 부모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이상 부모를 의지해선 안된다고 느낀다. 자기만의 생각과 취향, 고집이 생긴다. 



남, 녀는 성인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하고 다시 반복이다. 
X세대, Z세대, MZ세대 이름만 달리하고 스타일은 조금씩 변화했지만 그 격차는 줄지 않는다.
나란한 평행선은 절대 만나지 못하는 것처럼 세대를 막론하고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일정한 나이가 되면 자연스레 꼰대가 된다. 


꼰대의 세대교체다.



평행선은 두 직선이 만나지는 못하지만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걷는다. 



코로나로 물리적인 거리두기가 자연스러워졌다. 심적으로도 적당한 거리두기는 필요하나 가족이라면 그 괴리가 좁을수록 화목하다. 쓸쓸하고 서늘한 세상에 따뜻한 온기 하나쯤은 집이, 가족이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적인 가면을 벗었을 때, 쉴 수 있는 마지막 보루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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