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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Mar 15. 2024

나쁜 소문은 발이 빠르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한국인이 특히 못 하는 게 'Small Talk'라고 한다. 

'가벼운 잡담, 수다'로 해석되는 스몰토크는 내게도 참 어렵다.



용기를 내서 날씨 이야기를 건넸다 치자. 그리고는? 이어질 말을 찾지 못해 찾아올 적막이 두렵다.

엘리베이터를 타도 구석진 곳을 찾고, 뻘쭘함을 휴대폰 만지작 거림으로 대체하곤 한다.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종종 모른 척, 못 본 척을 시전 한다. 



말 문이 자연스럽게 트이고 대화가 왕성할 때가 있다.

정치인이나 연예인 등 유명한 사람의 가십을 공유할 때가 그렇다.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기사에 난 가십인 경우 기정사실화 되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함께 욕을 하고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공감들, 사실이 아닌 상상과 의혹들이 덧붙여진다. 

소문은 그렇게 커지고 덕지덕지 군더더기가 붙은 채 널리 퍼진다. 


나쁜 소문은 발이 빠르다.



여기, 성실하고 다정한 품성을 가진 27살의 평범한 여성이 있다. 카트리나 블룸

집과 일터만을 오가며 교과서처럼 재미없는 삶을 살던 어느 날 한 댄스파티에 참석한다. 

파티에서 첫눈에 반한 남자를 만나 원나잇을 보낸다. 다음날 아침, 남자는 떠나고 그녀의 삶은 크게 바뀐다. 



하룻밤 사랑에 빠진 그 남자는 경찰이 오랜 시간 쫓던 범죄자였고, 

카트리나는 내연녀와 공범이라는 의혹을 받고 경찰 조사를 받는다. 

그 과정은 유명한 일간지 <차이퉁>에 의해 온 세상에 알려진다. 



퇴트게스 기자는 카타리나의 주변인물을 찾아다니며 발 빠르게 취재를 한다.

그러나 인터뷰 내용은 모두 거짓으로 둔갑했고, 독자들의 저속한 호기심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진실은 왜곡되고 '마녀'라는 프레임을 씌운 채 쏟아지는 기사들, 그녀의 진심은 힘이 없다. 

카타리나를 잘 알던 주변인들까지도 기사를 보고 실망하고 배신감에 빠진다. 



교과서 같이 평범했던 카트리나는 이제 살인범의 정부, 창녀, 잠재적 범죄자로 각인된다. 

그저 한 남자와 하룻밤 사랑을 나눴을 뿐인데, 몇 시간 만에 사회의 악인 취급을 받게 된다.



누군가 그랬다. '진실은 노잼이고 가짜뉴스는 재밌다'라고.  



확증 편향이란 말이 있다.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

이라고 나온다. (daum사전) 


한마디로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는 얘기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생각은 아무리 진실을 얘기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의식적으로 버려진다. 



소설은 황색 언론에 철저하게 짓밟힘을 당한 한 개인이 어떻게 명예를 잃어가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진실인지는 관심이 없고, 기자가 쓴 기사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 함께 욕하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조롱과 비난에 그치지 않고 직접적인 행동으로 옮겨 괴롭히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익명으로 협박편지를 보내고 시도 때도 없이 전화로 성희롱과 조롱을 일삼는다. 

이웃들은 모른 척 피하거나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어온다. 

막 대해도 되는 사람처럼 함부로 하고, 치근대며 괴롭힌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죗값을 응징하지 못할 경우, 개인의 복수는 정당할까?



카타리나 블룸은 퇴트게스 기자를 직접 만나기로 한다. 

인터뷰를 위해 기자가 카타리나 블룸을 찾아와 첫 대면하던 날이다. 


"어이, 귀여운 블룸 양, 이제 우리 둘이 뭐 하지?"

"왜 날 그렇게 넋 놓고 보는 거지? 나의 귀여운 블룸 양, 우리 일단 섹스나 한탕하는 게 어떨까?"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사적인 복수를 죄책감 없이 받아들이게 만들어준다. 

시원한 복수극을 보며, 죽여 마땅한 가해자라고 느끼게끔 철저한 악당으로 묘사한다. 



카타리나를 살인자로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평범하고 선했던 사람이 언론의 가짜 뉴스 때문에 잠재적 범죄자로 매도당하다, 끝내는 살인자가 되었다. 

처음 시작은 기자였지만 가짜뉴스에 동조하고 함께 손가락질하며 괴롭히던 익명의 독자들도 책임을 면하긴 어렵다. 



1974년에 쓰인 소설이지만 지금 적용해도 이상하지 않은 이야기다. 

우리가 익히 아는 연예인이나 유명한 누군가에게 가십기사가 뜨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여기저기 바쁘게 퍼 나르거나 삼삼오오 모이면 그 이야기로 열띤 대화를 벌이고 있지는 않는지.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지도 못한 채 소문을 부풀리는데 일조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어떤 가십거리를 접했을 때 가짜 뉴스인지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확증 편향의 오류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어떻게 자각할 수 있을까?



가짜인지 아닌지, 사실을 볼 수 있는 눈을 길러야겠다. 

긴장을 늦추지 말고 의심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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