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최근에 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를 봤다.
이 책이 원작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반가운 마음에 빌려왔다.
분명 눈으로 문장을 읽고 있는데 한석규 목소리로 입력된다. 참 좋다.
"아내를 간호하면서 힘든 하루하루를 누구에겐가 털어놓고 싶었다. 낯선 부엌일을 시작하면서 배운 것들을 적어두고 싶었다. 그리고 암 투병이라는 끝이 없어 보이는 고통의 가시밭길을 헤쳐가면서 드물게 찾아오는 짧은 기쁨을 길게 늘이고 싶었다. 아무리 슬픈 이야기라도 글로 쓰면 위로가 되었다." (p13)
작가는 음식을 하나씩 만들 때마다 sns에 레시피를 올렸다. 그 글들이 모여 책이 되었다.
부제는 '떠나는 아내의 밥상을 차리는 남편의 부엌 일기'라 적혀있다.
에세이가 소설도 아니고 스포일러라고 말하기엔 좀 우스꽝스럽지만 부제가 스포일러다.
라면밖에 끓이지 못하던 남편이 3년여 동안 아내를 위해 음식을 만들면서 못하는 요리가 없는 실력자가 되었다. 홀로 남겨질 남편을 위해 큰 그림을 그린 아내의 배려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간호한다고 고생 많았어. 당신이 해준 밥을 이렇게 오래 먹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고, 맛있을 거라고는 더욱더. 내가 없어도 밥은 제대로 해 먹겠다 싶어서 마음은 편해." (p17)
큰 줄기는 요리 레시피이다. 요리책을 보면서 따라 하고 싶은 의지가 불끈 솟아올라야 정상인데 이 요리책(!)은 읽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눈물이 난다. 문장 어디에도 슬픔을 내포한 흔적이 없는데 코가 시큰해지고 시야가 흐려진다. 신기한 경험을 하게 해 준다.
아픈 아내를 위해 해줄게 요리밖에 없다. 다양한 식재료를 손질하고 씻고 썰고 데친다. 육수를 우려내고 기름을 둘러 볶고, 삶기도 찌기도 한다. 어설프던 솜씨는 점점 나아지고 요리 시간도 짧아진다. 일머리가 생기고 노하우도 쌓인다. 한식은 참 손이 많이 간다. 대부분의 요리가 정성을 들여야만 완성된다. 이런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들어도 아내 컨디션이 안 좋으면 물 한 모금도 삼키지 못한다.
문장들이 단정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우아하다.
내내 담담한 문체로 어디서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문장이나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담담한 문장에서 어떻게 사랑과 슬픔이 감지되는지 모르겠다. 글 쓰는 순간의 감정과 진심이 녹아들어 가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가족을 위해 정성을 담아 뭔가를 만들고 싶어지게 하는 책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목적지는 동일하다. 다만 각각 개인의 종료시간은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다. 유한한 생명체로 살면서 영원을 사는 것처럼 착각하며 산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이 마냥 길 수는 없는데, 오늘도 티격태격, 고집을 부리고 사소한 것들에 감정을 소비한다.
아는 사람의 부고를 듣게 되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상갓집이라도 다녀오는 날이면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뭔 호사를 누리겠다고 이리 매 순간 치열하게 사는지, 반성하며 이젠 그리 살지 말아야겠다 다짐한다. '느리게, 욕심 버리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인스턴트 다짐을 한다. 다음날이면 다시 제자리다.
책을 다 읽고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후련하게 한바탕 울고서 남편과 아들을 위해 뭔가 요리를 해주고 싶었다. 당장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자정이 넘은 시간에 반찬 두 가지를 뚝딱 해놓았다. 그러고도 여운이 가시지 않아 리뷰로 마무리한다.
오랜만에 좋은 책을 만나 기분 좋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