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우스 카이사르 - 갈리아 전쟁기 5년째부터 루비콘강을 건너기 전까지
갈리아 전쟁 5년째
(기원전 54년, 카이사르 46세)
[갈리아 전기의 ‘브리타니아 소개’]
전해오는 말을 믿는다면, 브리타니아 내륙지방에는 이 섬에서 생겨났다는 원주민이 살고 있다. 반대로 해안지방에는 전쟁이나 약탈을 목적으로 벨기에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정착하여 농경에 종사하고 있다. 그들의 이름이 대부분 고향의 지명을 따르고 있는 것이 그 것을 입증한다. 인구는 무수히 많다. 집들도 밀집해 있다. 이 점에서는 갈리아와 비슷하지만, 가축의 수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화폐로는 동화와 금화, 무게가 일정한 쇠막대를 사용하고 있다. 내륙지방에서는 주석이 생산되고, 해안지방에서는 소량이지만 철이 생산된다. 구리는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수입한다. 너도밤나무와 전나무를 제외하면, 숲의 수목 구성은 갈리아와 같다. 토끼와 닭과 거위를 먹으면 죄가 된다. 그런데도 그런 가축들을 사육하고 있는데, 식용이 아니라 오락이나 위안을 얻기 위한 애완용인 모양이다. 기후는 갈리아보다 온화하다. 추위도 갈리아보다는 심하지 않다(아마 카이사르는 갈리아 북동부와 비교해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섬의 지형은 세모꼴을 이루고 있다(이어서 카이사르는 브리타니아와 갈리아와 에스파냐의 위치 관계를 기술하고 있는데, 이쯤에서부터 그의 지리 감각이 상당히 어설펴지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하겠지만, 오늘날의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에 있는 맨섬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어느 책에 따르면, 북쪽 끝에서는 겨울철에 받이 30일이나 계속된다고 한다. 우리가 수집한 정보로는 이 말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물시계로 실험 해본 결과, 밤이 대륙보다 짧다는 것만은 밝혀졌다.
주민들 가운데 가장 '인간적'('문명적'이라는 뜻)인 것은 칸티움(오늘날의 켄트)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풍속은 갈리아인과 거의 다르지 않다. 한편 내륙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밀을 경작하지 않고, 우유와 고기를 먹고, 옷이라고는 모피를 몸에 결칠 뿐이다. 게다가 브리타니아인은 모두 푸른색 물감으로 몸을 물들인다. 따라서 전쟁터에서는 훨씬 무섭게 느껴진다.
장발이 보통이지만, 머리와 코밑을 제외한 곳은 모두 털을 깎아버리는 것이 습관이다. 남자들은 10명이나 12명의 아내를 공유한다. 특히 형제나 부자가 아내를 공유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면 아이 아버지가 누구냐는 문제가 생기는데, 여자가 처녀를 바친 남자를 자식의 아버지로 삼는 모양이다.
갈리아 전쟁 6년째
(기원전 53년, 카이사르 47세)
1. 트레베리족의 요청에 호응해 라인강을 건너 갈리아로 쳐들어오려 한 게르만인에 대한 대책.
2. 강 너머로 달아난 에부로네스 족장 암비오릭스에 대한 추격.
갈리아 전쟁 7년째
(기원전 52년, 카이사르 48세)
갈리아 전쟁 8년째
(기원전 51년, 카이사르 49세)
“발부스, 당신이 그토록 열심히 권유하는데도 내가 매번 거절한 것이 이 어려운 작업에 대한 두려움보다 나 자신의 게으름 탓으로 여겨지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도 마침내 이 어렵기 짝이 없는 임무를 떠맡기로 결심했습니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에서 『내전기』에 이르는 서술 가운데 빠진 부분을 보충하고, 『내전기』에 서술되지 않은 알렉산드리아 전쟁 이후의 내란-이것은 지금도 결말이 나지 않았지만-중에서도 카이사르의 죽음까지를 내 펜으로 메우기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대목을 읽는 이들은 적어도 내가 이 임무를 떠맡을 마음이 얼마나 내키지 않았는지는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준다면, 감히 카이사르가 쓴 책의 속편을 쓰는 내 어리석음과 자만심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해주겠지요“
1. 프로빈키아 속주를 제외한 갈리아 전역의 경계는 남서쪽은 피레네산맥, 서쪽은 대서양, 북쪽은 도버해협, 동쪽은 라인강으로 정한다.
2. 하이두이족, 아르베르니족, 세콰니족, 링고네스족 등 4대 부족을 로마의 동맹자로 삼아 협약을 맺고, 이 4대 부족을 중심으로 갈리아가 통합되는 것이 현실적이다.
3. 중소 부족을 포함한 갈리아의 모든 부족에게 내정의 자치를 인정한다.
4. 사제, 기사, 평민, 노예로 나뉘어 있는 갈리아의 사회제도는 그대로 유지한다.
루비콘 이전
1. 갈리아 총독 카이사르는 원로원의 귀국 명령에 복종할 것.
2. 후임자는 기원전 54년도 집정관인 도미티우스 에노발부스로 하고, 그에게는 당장 이탈리아 안에서 4천 명의 지원병을 모집할 권한을 부여한다. 그는 군단이 편성되는 대로 키살피나 속주로 부임한다.
3. 카이사르는 로마로 돌아와 직접 집정관 입후보 등록을 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