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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독일기 Nov 10. 2022

오늘도 평화로운 버뮤다역 플랫폼

에세이 | 경의중앙선 어느 역 4-4에서

 


"문이 열립니다."


 지하철 대합실에 들어서자 귀를 쫑긋 세운다. '벌써 왔다고? 에이~ 아닐 거야' 지하철은 언제나 제때 도착한다고 정시성을 홍보한다만 내가 타는 경의중앙선의 경우 이야기가 많이 다르다. 네이버와 지하철 앱에 적힌 시간표에 맞춰 도착한 적이 지난 2년간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적었던 지라 회사 가는 길이 5분 정도 여유롭다. 물론 조금 더 걸어서 2호선을 타 일찍 가는 방법도 있지만 사수에게 경의중앙선은 주식 마냥 변덕스럽다고 열심히 어필해뒀다. 우스운 핑곗거리는 놀랍게도 먹혔는데 추측컨대 유능한 그의 재무구조주의 철학에 심금을 울렸거나 업무에 나름 적응하고 있다고 여겨 눈감고 넘어가 주었지 않았을까 싶다. 여하튼 약속시간에 늘 늦는 지하철을 친구로 두어 덕분에 출근길 빈 시간을 요긴하게 써먹는다. 펜을 한번 끄적인다거나 집을 나와서 마스크 벗고 칙칙한 사무실에선 맛볼 수 없는 아침 맑은 공기를 맘껏 마시곤 한다. 그날도 별생각 없이 가좌역이나 홍대역에 으레 있어야 할 그 녀석의 동선을 예상하며 플랫폼 모니터를 쳐다봤다.


 ‘당역 도착?!’ 순간 나대는 심장의 rpm에 발맞춰 뛴다. 어째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 놓치면 빼박 지각이다. 안 그래도 변덕스러운 경의중앙선은 홍대에서 서울역행과 용산행으로 노선이 다시 갈라져 다음 배차까지 간격이 절망적이다. 객차 문이 열리자 에스컬레이터 맞은편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몸을 편안히 레일에 맡긴다. 여유로운 그들과 달리 식은땀 흘리며 계단을 단숨에 뛰어내려 열차문과 거리를 좁힌다. 같은 방향 사람들이 객차에 막 올라타고 있는 걸 봤지만 방심해선 안된다. 이 시간대 지하철은 고작 4량이다. 아니 무슨 플랫폼 번호가 10-4까지 있으면서 출근시간에 4량 지하철을 운영할까? 뇌리에 답을 알려주려는 스피드웨건(라고 쓰고 설명충이라 부른다)이 나타날 틈도 없이 지하철 안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찼다. 초초한 발은 눈보다 빠르게 플랫폼 번호를 넘긴다.




 마침 남자가 차량 안에 좌석봉 사이로 한 여자를 두고 팔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서있는 걸 봤다. 세상에나..이렇게 빡빡한 출근길 아침부터 청춘 로맨스 멜로 드라마를 찍고 있네? 그가 양보해준다면 들어갈 공간이 생기겠다. 두눈을 반짝이는 그들에게 별 다른 나쁜 마음은 없었지만 빌런 역할을 맡아 꾸역꾸역 끼어들었다. 키가 족히 185cm는 넘어 보이는 남자는 농구선수 센터처럼 쉽게 골밑 공간을 내어주지 않는다. ‘기왕이면 내릴 때까지 두분이서 착 달라 붙어 있으라구요.’ 빈틈을 파고들어 엉덩이를 들이대 팔 울타리를 밀쳐보지만 오히려 그의 굳건한 만리장성 디펜스에 몸이 튕겨나가 옆에서 폰을 만지는 낯선 여성과 얼굴을 조우했다. 그녀는 자신만의 안락한 공간에 침범한 남성을 살짝 쳐다보곤 이내 폰을 바라본다. "문이 닫힙니다." 안전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무기력하게 몸싸움에 밀렸다는 굴욕감보다 어쨌든 타서 다행이란 안도감이 더 컸다. 후우.. 버라이어티 하게 하루를 시작하는구나. 이마에 흐른 땀을 손등으로 닦아내면서 오늘은 활기찬 아침을 보낼 것만 같았다. 한숨 돌린 주인공을 방심케 하는 공포영화의 뻔한 클리셰인 줄 모른 채.


 한동안 머리를 헤집는 그때 찰나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무심히 폰을 만지던 그녀는 나란 불청객으로 인해 공간이 좁아지자 문 쪽에 아슬하게 붙어있었다. 잠시후 지하철 객실 문이 출발 전 매퀘하고 칙칙한 소리를 낸다. 문은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가더니 가녀린 손을 거침없이 밀어버렸다. 그녀의 폰은 저항할 틈도 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객실 발판에 미끄러지더니 탁구공처럼 다시 튀어 오르고 이내 객실과 플랫폼 사이에 발 빠짐 주의 구간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경의중앙선은 최신 선로라 발빠짐 구간이 상당히 좁은 편이다. 주먹도 안 들어가 폭이 기껏해야 3~4cm 될까? 지하철 레일 밑에 사는 누군가가 폰을 납치해간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도 손쓸 여지도 없이 일이 벌어져 그 장면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흠칫 놀라 안타까워했다. 그녀는 소중한 무언가를 떠나보냈단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어두운 지평선을 한동안 쳐다봤다. 이 높이면 최소 중상이다.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때 절망을 깨는 구원의 소리가 들렸다.


 





 "얼른 역무실에 가서 폰 떨어졌다고 찾아달라고 해보세요! 지하철 사이에 틈 있어서 멀쩡히 있을지 몰라요!" 나를 밀어낸 하승진이 뒤에서 말했다. 지하철 레일 사이에 배수로가 있어 거기서 구조를 기다릴 거라는 희망이 보였다. 폭풍 같은 1어시스트. 형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그저 빛이었다. 그녀는 그 말에 정신차리고 객차를 내리면서 나를 날카롭게 흘겼다. '설마 나 때문인 건가? 내가 끼어들어서 이 사단이 났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많은 욕을 할 수 있다는 걸 그녀의 눈빛으로 배웠다. 체념하면서도 상황이 짜증나고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으면서도 발빠짐 구간이라는 함정에 당황스럽고도 황당한 복잡한 심정은 오뉴얼에 서리를 내릴게 분명했다. 문이 다시 닫히면서 이세계로 멀어진 그녀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나왔다. 그녀가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야. 움쩍거리는 볼살로 무슨 말을 씹었을까? 이 사건을 미필적 고의로 단죄한다면 상관관계조차 없는 우연과 우연이 겹쳐 일어난 우우연연한 사고라고 당당히 반박할까? 도의적 책임감에 그날 회사 사람들과 점심을 먹으며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를 열었다. 미종결된 사건에 관한 대응책을 강구하고자 머리 맞대봤다. "그것도 인연인데 한번 따라가 도와주지 그랬어" 라며 뚜렷한 대책없이 웃어넘겼지만 지하철 발빠짐 주의 구간을 보면 그때가 생각난다.


 그녀를 다시 볼 순 없던 터라 지하철 바닥에 객차 번호가 찍힌 삼각표식이 요즘 일상의 쉼표가 됐다. 지하철, 폰, 그녀. 그녀, 폰, 지하철. 세 개의 꼭짓점이 객차에 함께 올라타면서 그때 장면을 계속 플레이시킨다. 어떻게 그런 사고가 생겼을까? 여태껏 신경 쓰이는 건 그 사건에 일말의 죄책감을 느껴서인가보다. 이제는 지하철에서 폰을 쓸 때 손에 힘을 더 준다. 일명 경의중앙선 폰빠짐 사건에 사람들이 탄식한 건 타인의 상실감에 공감하기보다 소유물의 망실에 더 신경 쓰였기 때문이려나.. '이깟 폰 뭐라고' 말하기엔 너드스럽게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모름지기 인간은 폰이란 물체와 하나가 되어 점점 실존에서 멀어지고 삶의 틈을 시시각각으로 네트워크에 공유한다. 우리는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고 믿지만 결코 연결되어 있지 않다.



같은 방향, 같은 객차에 올라타도 저마다 목적지에 다다르면 등 돌리고 남이 된다. 빽빽한 메트로폴리탄의 사람들은 한 공간에 있어도 곤경에 빠진 그녀를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서로가 몸을 부대끼더라고 우린 온기 따윈 느껴지지 않는 사이라 고작 손가락 두마디 정도 틈새로도 한 사람을 공포에 빠트리기 충분했다. 깔끔한 관계는 차가운 도시생활에 편리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공감이란 문을 빠르게 닫아버린다. 이 글을 다 써 내려갈 때쯤 또 다른 틈에서 망실이 발생했다. 이태원 좁은 거리는 외로운 도시에 연결을 갈망하러 나온 이들의 타인에 대한 방관으로 소름 돋게 얼룩졌다. 언론은 신나게 네 탓 공방을 떠들어댄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닌데 무엇을 얼마나 더 잃어야 소중함을 깨달을까? 각계 전문가와 기자들이 스크린에 나와 '예견된 인재'라며 똑똑한 척하기 바쁘다. 진실을 말하러 나온 건지, 누구를 정신교육시키러 나온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만 정작 그들도 흘러간 시간을 거스를 순 없다.


 유튜브는 더 이상 보길 원치 않는 현장 영상과 청문회를 왜 자꾸 추천하는건대. 빌어먹을 알고리즘아 눈치 좀 챙겨. 인간은 반성하는 마음으로 성장해왔기에 존엄한 존재로 거듭났다. 이때다 싶어 상황을 정치적으로 또는 상업적으로 이용해 먹는 기회주의자들은 꼭 죄책감을 갖고 평생 속죄하며 살길. 울렁이는 마음이 더 동요하기 전에 얼른 글을 마무리 짓고 자야겠다. 슬프게도 내일 현실로 돌아가면 치밀어 오르는 이 감정도 서서히 옅어지겠지. 사르트르여, 타인은 지옥이라고 외친 당신의 말은 정녕 진리인가. 두 손의 자유가 없는 지옥철 출근길은 상상력이 풍부해지는 구간이다. 침묵하는 글쟁이는 시공간이 왜곡되는 플랫폼에서부터 고구마 가득 삼킨 드라마 같은 현실을 쓰고 지우길 몇 번이고 반복할 거다. 과연 뭐가 최선이었을까? 경의중앙선 그녀를 향한 하승진의 어시스트는 성공적이었을까? 어느 쪽 시나리오도 속 시원한 사이다가 있을지, 원하는 결말로 막을 내릴지는 알 수 없어 머리 위로 어지럽게 비행하는 과몰입을 이만 마침표 찍겠다.


아무쪼록 지하철 그녀의 소중한 반려폰이 무사히 주인 곁으로 돌아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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