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봄의 앞자락에서
달리기는 참 정직한 운동이다. 원하는 거리만큼 느긋하게 뛰면 마음 한편이 못내 아쉽다. 다음날 종아리가 하루종일 욱신거리도록 근육통을 호소해야 기록이 전보다 조금 나아진다. 요즘 같이 테니스를 배운다거나 골프장이 풀부킹 되어 필드 나가기도 어렵다는 취향 인플레이션 시대에 러닝을 시작했다. 이불 안 세계를 사랑하는 집돌이 청년이 무작정 길 위를 뛰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다름 아닌 코로나 덕분이다. 식당 곳곳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아크릴판을 세우고 누군가 옆에서 기침을 하면 날이 서있던 거리는 한겨울 바람처럼 날카로웠다. 객지에 홀로 생활 중인 1인 가구는 모임이 줄줄이 취소되고 사무실과 집을 오고 가길 수개월을 반복하니 타인과 격리된 공간은 숨이 막혀 갑갑했다. 도심 속 로빈슨 크루소가 될 거 같아 러닝화를 집어 들었다. 그저 사람 냄새를 맡고 싶어 밖으로 뛰쳐나왔다.
투명한 벽이 없는 경의선 숲길을 달리면 속이 뻥 뚫린다. 이 코스는 고층 빌딩이 즐비한 공덕에서 버스킹 공연이 열리는 홍대역까지 쭉 이어져있다. 옛날 무거운 석탄을 옮겨주던 철길이 공원으로 재구축되어 산책로 주변 곳곳에 힙한 가게들이 자리 잡아 뛰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현대 건축가 베르나미 추미는 '건축을 결정짓는 건 무엇보다 사람들의 활동'이라는 이벤트 건축을 주장했는데 과거의 추억과 현대의 트렌드가 멋지게 조화를 이룬 공간도 사람 소리가 멎으니 빛이 바래졌다. 발길이 뜸한 거리를 쏘다니면 마스크에 가려 보이지 않는 자영업자분들의 근심이 피부에 여실히 와닿는다. 가게 간판은 날마다 바뀌었고 건물 유리창에 임대 문의 전화번호를 광고하는 현수막이 늘어났다. 싸늘한 거리는 사람들의 온기가 깃들 때까지 무거운 침묵을 견디고 있었다.
벚꽃이 피고 비가 내리며 단풍 지는 사계절을 꼬박 달리다 보니 세월은 몸에 흔적을 선명히 새긴다. 배와 엉덩이살을 누가 덩어리 째 파먹었는지 체중이 10kg이나 빠졌다. 5km를 채 못 달려 허덕이는 거친 숨소리는 이젠 하프코스를 뛰어도 재즈처럼 변주될지언정 리듬에 맞춰 혈관 구석구석 산소를 즐겁게 실어다 나른다. 재밌어서 뛴 것도 아니어서 그저 달려라고 외치는 단순한 머리 대신 매번 함께 뛰었던 스마트한 NRC(러닝 기록앱)이 고맙게도 단련의 발자취를 남겼다. 러닝 이정표들을 정리하면서 나름 열심히 뛰었다고 자부하고 있었건만 최근에 나보다 더 독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바로 노벨 문학상 후보에 매번 언급되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그의 에세이『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매일 아침 10km 뛰는 루틴을 몇십 년 동안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100km 꼬박 달려 육체의 한계를 겪는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해 내고 심지어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까지 도전 중인 그는 "작품을 잘 쓰기 위해 꾸준히 뜁니다" 라며 글쓰기의 고됨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자신의 소설을 읽는 저자에게 혹여나 영향을 미칠까 달리기라는 축으로 사생활을 에둘러 표현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 사실이든 달리기를 향한 그의 사랑은 진심이다. ‘불건전한 작품을 쓰려고 건전한 신체를 갖춰야 한다’는 그의 달리기 철학이 뇌리에 남는다. 땀에 젖은 채 뛰어다녔던 경의선 숲길은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광경과는 사뭇 달랐다. 우리는 어쩌면 자신만의 속도로 달려야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달리기는 작가의 삶처럼 참 고독한 운동이다. 짧은 구간은 무리 지어 한동안 뛸 순 있겠지만, 멀리 가려면 자기 페이스로 달려야 한다.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를수록 점점 괴로워 말이 없어지고 함께한 사람들은 보이질 않는다. 왜 굳이 아침마다 외로운 길을 힘들게 달릴까? 아. 하루키는 자신이 바라본 세계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심신이 고통스러워도 꾸준히 뛰려 하는구나. 평범한 일상을 작품으로 쓰려면 우선 건강해지자. 책을 덮고 홀로 달리는 그의 바통을 이어받으려고 신발장에 먼지 덮인 러닝화를 다시 꺼냈다.
어느덧 숲길엔 산책 나온 강아지들이 부둥켜 안고, 새로 생긴 붕세권 앞에 줄 선 사람들은 붕어빵이 구워지길 기다린다.
모처럼 따뜻한 날이 왔으니 길을 달리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