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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시 Jun 02. 2018

친구의 편지를 읽고 나는 한참 울었다

글자를 곱씹으면서, 울고 다시 울었다.

친구에게서 편지가 왔다. 이틀 간 가방에 넣어 다니다, 주말이 되어서야 꺼냈다. 사람이 많지 않은 한적한 카페, 혼자 자리에 앉아 노트북으로 이것저것을 하다보니 그 편지를 아직 뜯지 않은 것이 떠올랐다. 뒤에 그려진 아기자기한 그림이 그 친구답다고 생각하며 편지를 뜯었다.



편지는 길지 않았다. 세 문단 정도였고, 꽃잎 모양의 스타벅스 카드가 같이 들어있었다. 오랜만에 친구의 소식을 듣겠다는 생각에 미소를 지으며, '안녕'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편지를 다 읽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왜 우는지도 모른채 한참 울었다. 목에서 꺼이꺼이 소리가 날 정도로, 엉엉 울었다. 울음의 이유를 생각한 건 그 다음이었다.


"코모레비라는 말을 아니?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 단어래. 덥고 습한 여름은 하루라도 더디 왔으면 좋겠는데, 그럼에도 마음 한 켠에 기대가 차 있는 이유는 수직으로 내리 꽂히는 햇빛이 이파리에 부서지는 파란 풍경 때문일 거야. 잘 지내니?"


국어국문학과에서 동기로 만난 친구다운 첫 문장이었다. 함께 소설 창작 수업을 듣기도 했고, 문학 동아리도 함께 이끌었던 친구였다. 평소에는 서로 온갖 농담만 늘어놓는 터라 편지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할 거라고 예상하진 못했지만, 어딘가 그 친구스러웠다. 나는 다음 문단을 읽어내려갔다.


"온 마음으로 너의, 다른 누구의 말도 섞이지 않은 네가 진정 그리고 꿈꾸던 행복을 기원해. 다른 사람이 너의 다정하고 상냥한 마음에 탄복할 때, 나는 고요히 치열했던 시간들에 박수를 보낼게. 자랑스러운 친구야."


"벚꽃은 4월에 잠깐 피고 지지? 우리가 오뉴월에 만남을 가진다 한들 꽃갈피를 만들 수는 없을 거야. 아쉬운 마음에 사계절 내내 시들지 않을 벚꽃을 편지에 담아 보내. 짧은 휴식이라도 선물하고 싶어서."


"다음 편지는 8월에 보낼게. 내가 일 년 동안 성실하게 편지를 쓴다면 내년 7월에 너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에 대해 물으러 갈거야. 온화하고 다정한 여름을 보내길 바라."


친구를 마지막으로 만난 건 작년 가을이었다. 올해 들어서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회사생활이 어떤지는 듣지 못했겠지만, 내가 12월에 취업했다는 소식은 들었을 터였다. 몇 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게는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그리고 그 친구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을 텐데, 나와 그 친구에게 있어 서로의 시간은 그때에 멈춰 있었다.


친구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라는 것에 성공한 나를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내가 꿈꾸던 행복이길 바라고 있었다. 그런 마음이 너무 고맙고, 애틋하고, 또 고마웠다. 사실 나의 행복과, 미래와, 현재에 대한 숱한 고민에 매일 밤 악몽을 꾸다 새벽에 일어나길 반복하고 있는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내게 이런 마음을 주는 친구의 편지를 받으니, 여러 감정이 겹쳐 눈물로 쏟아진 것이었다.


고마움, 친구가 축하해주고 있는 '행복을 얻은 나'와 '그 행복을 얻지 못한 나' 사이의 괴리감, 그럼에도 그 두 가지가 같은 '나'이길 바라는 친구의 진심, 바쁘다는 핑계로 정말 중요한 건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고, 그 친구에게 제대로 인사를 전하지도 못했던 나.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 친구가 준 너무도 아름다운 문장들과, 그 문장들이 가리키는 것들. 온갖 것들이 친구의 편지와 함께 갑자기 쏟아졌다.


그래서 나는 한참 울었다.

한 글자 한 글자를 곱씹으면서, 울고 다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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