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쓰는 일기, 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살기 위한 시간
저녁 8시, 가로등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집 앞 골목을 지킨 가로등은 꺼질듯 몇 번 깜빡이더니 이내 불이 들어온다. 해가 짧아졌음을 볼 때 가을이라는 것을 처음 느낀다. 그래서일까. 극도의 피곤함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음에도 바로 눈을 붙일 수가 없다. 글을 쓰고픈 기분이다.
만나는 사람이 몇 없다 싶다가도 가만히 세어보면 꽤 많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 아니 자주 외롭다. 혼자 있는 시간은 즐겁다가도 쓸쓸하다. 오직 나에게 집중한다는 건 이리도 힘들다.
"하고 싶은 걸 모두 다할 거야. 끝까지 할 거야." 인스타그램에서 지인이 쓴 글을 보았다. 핸드메이드 제품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 점점 성공을 거둬가고 있는 지인이다. 라이크 버튼을 누르고 나서 인스타그램을 바로 껐다. 다른 사람들의 소식을, 희망찬 내일을, 즐거움을 더 읽어나갈 자신이 없었다.
가능성의 세계는 무한하다. 모든 취준생들에게 회사는 도전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눈 앞으로 끌어오는 건 너무나도 힘들다. 나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그리며 내가 대단한 사람으로 느껴졌다가도, 가고 싶던 회사에서 보내 온 전형탈락 메일을 보면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럴수록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처럼 더욱 더 많은 도전을 하게 되는 동시에, 속마음은 더욱 두려워진다. 취직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 그럴테다.
이런 지금일수록 나를 잘 잡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무언가가 되는 것보다 무언가로 살고 싶은 사람이고, 모든 경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새로운 것 앞에서 피곤하기 보다 설레는 사람이다. 내일의 내가 지쳐서 그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글이 쓰고 싶었나 보다. 내가 내 마음을 다시 마주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도록. 내가 보내온 시간의 가치는 회사나 그 무언가의 당락에 달라지는 게 아니라, 항상 의미있고 가치로웠음을 느끼도록. 그리고 항상 글을 쓰는 사람으로, 언제나 내가 사랑하는 나의 모습에서 너무 멀어지지 않는 모습으로 살도록. 해가 짧아져 밤이 길어진 가을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나로 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