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준비하며 일어난 소소한 에피소드
어제부터 박스를 찾아다니고 있다.
곧 이사라 슬슬 짐을 싸야 한다. 언니와 얼른 박스를 가져와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편의점에 가던 길, 길 한 편에 박스들이 쌓여있는 걸 발견했다. 편의점에 갔다가 돌아오면 사라질까봐 얼른 두 개를 챙겼다. 그걸 편의점까지 들고 가서 뭘 먹고 있으려니, 정리하던 편의점 종업원 분이 '아니 이게 뭐지??!!'라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아.. 이건 저희 것..이에요..!' 라고 해서 서로 하하 웃고 끝났다.
문제는 그 중 하나가 명태 코다리를 담았던 박스였다는 것이었다. 밖에서도 향기로운 기운이 피어오르긴 했지만 공기가 워낙 차다보니 코가 마비되어 잘 몰랐다. 그런데 막상 집으로 들고 들어오니, 명태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이었다. 큰 방 문을 닫아두었다가 다시 열면 명태향이 계속 향기로운 자기주장을 했다.
여기에 옷을 담았다가는 명태옷이 되고, 책을 담았다가는 명태책이 될 것이 분명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명태향이 난다니, 생각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졌다. 언니는 그래도 책을 읽을 때마다 이 날의 추억이 되살아나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책과 관련한 추억은 모두 사라지고 모든 책에 명태향 추억만 남는 건 싫다고 했다.
나는 고민하다 명태 박스에 섬유향수를 뿌렸다. 명태향이 섬유향수와 함께 휘발되리라는 기대로. 하지만 명태향은 휘발되기는 커녕 그냥 섬유향수와 콜라보레이션을 이루었다. 둘의 콜라보는 명태를 더욱 돋보이게 했으면 했지 감추지는 못했다.
결국 우리는 명태 박스를 다시 밖으로 내다 버렸다. 우리집 바로 앞집에서 명태를 주렁주렁 달아 말리고 있는 게 보였다. 저 집에서 이 박스를 보면 분명히 멀리 내다 버렸는데 집 앞까지 돌아온 박스에 조금 섬뜩해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명태향이 집의 디퓨저가 되기 전에 내다 놓아야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