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을 해도, 여행을 가도, 똑같은 이유
나는 늘 시간에 쫓기며 산다고 한탄해왔다. "바빠 죽겠어." 그렇게 입버릇처럼 말하다가, 꿈에 그리던 육아휴직을 했다. 드디어 시간이 넘쳐나겠구나! 생각했지만, 웬걸, 여전히 시간은 부족했고, 오히려 더 쫓기는 기분이었다. 아이를 재우고 나면 밀린 집안일에 손이 바빴고, 잠시 짬을 내어 앉아있어도 불안했다. '지금 이렇게 멍하니 있어도 될까?'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는 모든 시간이 '낭비'처럼 느껴졌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의 문제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있었다. 나는 결과를 내는 시간만을 의미 있다고 여겼다. 화장실 가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심지어 나를 돌아보는 시간마저도 ‘결과물’과 연결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육아휴직 중에도 아이를 재우고 청소를 해야 '결과물'이 생기니, 그 외의 시간은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라 생각하며 초조해했던 것이다.
결국 나의 시간 부족은 '정답을 찾는 교육'이 만든 이분법적 사고에 갇힌 결과였다.
최근 조벽 교수님의 강연을 보고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한국 교육은 16년 동안 신입사원이 될 인재를 길러내는 데 집중한다고 했다. 정해진 미션을 효율적으로 해결하고, 정답을 찾는 데 익숙한 사람. 그런데 이 능력은 지금 AI가 훨씬, 아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하는 일이라고.
이 이야기는 내 삶의 모든 영역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나에게 시간은 A에서 B라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도구였다. 여행을 가면 ‘새로운 경험’이라는 결과물을 얻어야만 했고, 글을 쓰면 ‘누군가에게 읽힐 멋진 결론’이 있어야 했다. 원하는 결과값이 나오지 않으면 그 과정을 통째로 무시하거나 포기했다. '결과’라는 이정표가 없으니 그 모든 과정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나는 죄책감과 무력감의 늪에 빠졌다.
왜 결과에만 집착할까? 그 질문은 결국 '나는 정답을 찾는 교육만 받아왔기 때문'이라는 답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AI가 정답을 찾는 시대에, 나는 계속해서 무의미한 경쟁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만의 속도와 방향은 잃어버린 채.
한 유튜브 영상에서 김교수님은 효율적인 시간 관리를 위한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내가 그동안 해온 시간 관리가 바로 '무능한 시간 관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 핵심 사안을 핵심적인 시간에 배치하라.
나는 모든 일을 똑같이 중요하게 여겼다. 화장실 가는 시간의 '기회비용'까지 계산하며 사소한 일에 얽매였다. 하지만 유능한 시간 관리는 모든 것을 평행하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일(핵심 사안)을 파악하고, 가장 집중이 잘되는 시간(핵심 시간)에 배치하는 것이다. 무조건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2. 하루에 두 번, 미친 듯이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라.
김교수님은 하루에 1~2시간씩 두 번, 오로지 한 가지 일에 '미친 듯이'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몰입한 후에는 나머지 시간을 편안하게 보내도 괜찮다고 말한다. 이 원칙은 '시간 낭비'에 대한 나의 죄책감을 덜어준다. 핸드폰 릴스를 보며 죄책감에 빠지는 대신, 집중할 때는 확실히 집중하고, 쉴 때는 죄책감 없이 쉬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3. '숲을 보기 위해' 쉬어라.
쉬는 것을 그저 ‘멍때리기’나 ‘시간 낭비’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큰 그림(숲)을 보기 위해 잠시 멈추는 시간으로 정의한다. 쉴 때야말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달려가는지를 돌아볼 수 있다. 이는 내가 그동안 간과했던 '과정'의 의미와도 정확히 일치한다.
나는 항상 '목적지'만 보고 달려왔다. "여행을 가는데 무엇을 타고 갈까?"라는 질문에, "자동차"라는 수단만 생각하고 정작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목적지를 놓친 것처럼.
이제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주려 한다. 삶은 결과를 향해 돌진하는 경주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과정이라고. 아이들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아웃풋만을 바라면 우리는 그들에게 주입식 교육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나 스스로에게 아웃풋만을 요구한다면 나의 삶 또한 융통성 없는 주입식 삶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나를 돌아보고, 나만의 이정표를 만들어가는 소중한 과정'으로 여기자. 어제보다 조금 더 나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작은 즐거움과 통찰을 발견하자. 그렇게 매일 과정을 쌓아가다 보면, 더 이상 시간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풍요롭게 채우는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