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나를 찾다
1. 40살, 낯선 변화의 시작
마흔 살. 회사에서는 '사회 초년생'이라는 풋풋한 꼬리표 대신, 어느덧 '꼰대'라는 단어가 익숙해질 법한 나이가 되었다. 몸은 또 어떤가. 노화의 직격탄이라도 맞은 듯 여기저기서 피로와 통증을 호소했다. 그런데 가장 낯선 건 따로 있었다. 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아직 너무나 어린 두 딸들. 그 작은 손들이 내 삶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듯했다.
결혼, 시험관…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회사와의 줄다리기. 나는 결혼 후 아이를 갖기 위해 수없이 시험관 시술을 반복했다. 매번 찾아오는 조급함은 이내 서늘한 불안감으로 변해갔다. '나이도 들고, 아이도 안 생기는데, 혹시 회사마저 없어져 버리면 어쩌지?' 그 두려움에 나는 필사적으로 회사의 끈을 부여잡고 있었다. 꾸역꾸역, 정말 꾸역꾸역 다녔다.
2. 복직, 그리고 나를 집어삼킨 '현타'의 파도
출산할 때마다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던 그때였다. 또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 복직은 유독 달랐다. 매일같이 '현타'의 파도가 나를 집어삼켰다.
"직장에서 나는 누구인가?"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직장에서 나의 계발과 정체성, 성취감은 잊고 살아야 하는 걸까?' 아이들에게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최우선으로 가르치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내세웠던 가치들을 직장에서는 단 한 조각도 발휘할 수 없는 엄마였다. 아이들과 내 모습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사실이 매일 나를 갉아먹었다. 그 괴리감은 나를 깊은 동굴 속으로 밀어 넣었다. 회사에서는 최소한의 발언만 하고, 시키는 일만 기계처럼 해냈다.
"왜 아이디어가 없냐", "새로운 건 없냐" 그럴 때면 어김없이 이런 질책들이 쏟아졌다. '이럴 땐 이런 거고 저럴 땐 저런 거지. 돈 주니까 그냥 적당히 하는 사람. 나대지도 않고, 그렇다고 일 못 하지도 않고, 꼴보기 싫게 잘하지도 않는 사람. 나는 그저 계속 이렇게 눈치밥만 먹고 살아야 하는 걸까?'
10년차가 넘도록 눈치를 보고 있는데, 요즘 MZ세대들은 달랐다. (물론 MZ도 MZ 나름이지만!) 다만, 강요에 의해 움직이던 시대는 확실히 끝났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나 때는 노래방 회식 가면 탬버린도 흔들어 줘야 했고, 하라면 해야 했는데…' 이젠 나도 '라떼는'을 외치는 꼰대가 되어버린 걸까. 씁쓸함이 밀려왔다.
3. 멈춰선 나를 일으킨 한 문장: "아, 지금이구나!"
아이는 곧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다. 나의 성장은 멈춰 쇠퇴하고 있는데, 아이에게는 '성장'을 끊임없이 권해야 하는 엄마라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이건 아니잖아.'
그때였다. 머릿속을 맴돌던 한 문장이 나를 강하게 붙잡았다.
"아, 지금이구나!"
마흔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동안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왔던 시간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이상 인스타그램 인증용 '미라클 모닝'이나 '갓생 살기'가 아닌 나를 위한 진짜 성장을 하고 싶은 강한 욕망이 들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불꽃이 타올랐다.
육아휴직이라는 달콤한 찬스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의 벽도 느껴졌다. '휴직하면 월급이 줄어드는데… 월급 없는 삶 속에서 40살의 성장을 찾아보겠다는 이 결심이, 혹시 철없는 생각은 아닐까? 부모로서 그래도 되는 걸까?' 수많은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4. 휴직은 쉬웠지만,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
휴직을 입 밖으로 내기까지 무려 6개월을 고민했다. 수없이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그런데 막상 휴직은 너무나도 쉬웠다. 직장은 내가 없어도, 놀랍도록 잘 돌아가는 곳이었다. 그 허탈함과 동시에 느껴지는 해방감은 뭐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휴직 후, 저는 과연 어떤 삶을 마주했을까요? 다음 글에서 그 솔직한 여정을 풀어놓으려 합니다. 혹시 당신도 멈춰선 자신을 발견했다면, 이 이야기가 작은 용기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