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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노의질주 Feb 11. 2022

Only lovers left alive

<보이지 않는 것에 의미가 있다>를 읽고

    

   오랜 기간 투병생활을 하고있는 김혜남 작가가 자신의 '마지막 책'이라며 낸 <보지 않는 것에 의미가 있다>는 노년기를 맞이하거나 죽음을 앞둔 노인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여럿 소개된다. 모두가 처음 겪는 나이듦과 죽음 앞에 이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각기 다르다. 감상에 그치지 않고 노인이 해야할 역할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제시하는 작가의 문장들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확신에 찬 문장들이었고, 소외되고 벼랑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앞장서는 노인의 이미지였다.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을지 몰라도 노인들은 이 세상의 흐름을 잇고 방향을 제시해주는 중요한 일부분이다. 그러니 세상의 일부가 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노년기의 삶을 여전히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세월이 내가 사랑해온 많은 것을 벗겨내어 가버린 후에도 행복한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는 소위 말하는 ‘자기를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자기 초월이란 거창한 종교적 수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 이외의 남에게도 관심을 가지며, 세상을 향해 시선을 돌릴 줄 아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에서 나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고, 비록 우리가 직접 머물 수 없을지라도 내일의 세계를 위해 우리 자신을 투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자기를 초월하여 세상에 사랑을 주는 존재가 될 때 우리의 노년기는 외롭지 않고 여전히 새로운 창조를 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노년기의 나의 역할에 대해서 벌써부터 고민할 나이는 아니지만, “세상의 일부가 되기를 포기하지 않을 때”라는 말은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나이와 상관 없이도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일부가 되기를 포기”한다. 포기라는 단어가 맞는 표현은 아닐 수도 있겠다. 누군가에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청년의 삶이라도, 누군가에겐 세상에 줄 수 있는 능력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거나 세상에 진절머리가 나서 더는 그 일부가 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을 수 있다.


   비슷한 때에 읽은 하미나 작가의 책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에도 인생에서 그런 시기를 겪었던 사람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어두운 경험과 통계로 이루어진 책  안에서도 사랑을 얘기하는 구절로 마무리한 장에서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아닌 어떤 것에 사랑을 나눠주는 행위, 그것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그 말은 김혜남 작가의 말과도 이어졌다. 봉사활동을 가고, 글을 쓰고, 연구를 하고, 성폭력 피해자들을 돕는 활동을 이어가는 이 책의 인터뷰이들은 본보기이자 증거가 된다.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 사랑이 구원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여전히 사랑을 믿는다. 그런 우리는 사랑을 받을 때가 아니라 줄때,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 구원의 대상이 아닌, 구원의 주체가 될 때만이 사랑은 구원이 된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나뿐이다. 사랑하는 대상이 꼭 인간일 필요는 없다. 동물일 수도 있고, 글쓰기와 같은 행위일 수도 있다. … 사랑 받는 일은 사랑을 주는 이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거나 곁에서 사라지면 멈춰진다. 사랑을 주는 일은, 우리 마음 안에 타인을 향한 사랑이 남아있는 한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영원히 외로워지지 않는다. “


   사랑이 구원이 된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다른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구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니 다행이지 않은가. 사랑을 믿고 사랑을 주는일, 김혜남 작가의 말처럼 "자신을 투자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겐 있다. 그러니 세월이 아닌 그 어떤 것이 “내가 사랑해온 많은 것을 벗겨내어 가버린 후”에도 사랑하고 사랑주는 일을 지속하자. 우리는 영원히 외로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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