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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노의질주 Nov 19. 2020

먹고 싶은 라면 먹고 있나요

   

  추석에 친구와 한강에 갔다. 돗자리에 누워 만화책을 읽고, 루미큐브를 두 판 하고, 강아지와 아기들을 구경하는 완벽한 하루였다. 이 완벽한 하루에 한강 라면이 빠질 수 없지.

   "내가 사 올게."

   편의점에 갔다. 조리기구 앞은 즉석 라면 그릇을 들고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나도 줄에 합류했다. 내 앞에는 세 아이가 신라면처럼 국물이 있는 라면 두 개와 짜파게티 하나를 각각 들고 서 있었다. 친척들끼리 모인듯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까지 함께 먹으려면 라면 세 개와 치킨 한 마리가 적절한 양일지 열심히 토의 중이었다.


   조리기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그중 짜파게티를 들고 있던 아이의 엄마가 다가왔다. 아이들에게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었던거냐며, 그래도 즉석 라면을 먹어보고 싶었는데 잘됐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무얼 들고 기다리는지 궁금했는지 잠시 두리번거렸다. 그리곤 아이에게 말했다.

   "넌 짜파게티 샀어? 남들 먹는 거 먹지 짜파게티를 시켰어. 여기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봐라, 짜파게티 먹는 사람이 어디 있나."

 

   나도 슬쩍 둘러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말이었다. 이것 보라는 듯이 거의 모든 어른들이 빨간 가루가 수북이 얹힌 라면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었다. 화창하지만 차가운 가을 바람을 생각하면 놀라운 풍경은 아니었다. 아이의 엄마는 내 손바닥 위의 정체불명의 빨간 라면도 오래 쳐다보았다.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나의 선택은 오모리 김치찌개 라면이었다.) 아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엄마도 딱히 어떤 대답을 바라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을 테다.


    사실 아이들은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셋은 라면을 나눠 먹을 것이고 국물이 있는 매운 라면과 국물이 없는 짜장 라면을 골고루 시킨 데다가, 국물 있는 라면을 한 개 더 많이 사서 국물이 아쉽지 않게 하는 매우 영리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혹은 이건 어른의 계산법이고 아이는 단순히 짜장 라면이 먹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남들이 먹는 것을 시키지 않아 핀잔을 들어야 하는 아이의 정수리가 슬프게 느껴졌다. 할 수 있다면 아이 대신 나서서 대변을 해주고 싶었다.


   다수의 선택을 따라 선택한다는 것, 다수가 하는 경험을 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불안과 적어도 나만 실패하는 선택은 아닐 거라는 안도감 같은 것들이 합쳐져 만드는 결정이겠지.

   하지만 이건 라면이잖아.

   라면을 받쳐 든 모두에게 소리쳐 묻고 싶었다. 다들 먹고 싶은 라면 먹고 있나요!!?





매거진 42 vol.1에 기고한 글입니다.





매거진 42 vol.1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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