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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혜 Aug 19. 2022

장밋빛비강진과 불청객 (2)

  회사에서 ‘지나친 관심’ 파트를 담당하는 사람은 S 과장이었다. 그의 별명은 ‘인턴킬러’였다. 인턴이 들어오면 어김없이 그의 짝사랑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회사는 대학교와 산학연계 인턴십 과정이 체결되어 인턴이 주기적으로 왔다. S는 새내기 인턴이 업무에 헤맬 때를 노렸다가 사소한 도움을 주었다. 그 이후 자연스럽게 ‘젊은 사람들의 술자리’에 초대했다. 그 모임은 과장이 만든 소모임이었다. 삼십대 후반인 S를 제외하고 모두가 이십대였다. 엄밀히 따지면 ‘인턴킬러 1명과 젊은 사람들의 모임’ 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혼자 썸타고 북치고 장구쳤다. 안주를 앞 접시에 가져다 주며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몇 주 뒤 일방적인 고백을 했다. 그 고백은 당연히 거절당했다. 그는 상처받은 얼굴을 여기저기 어필하고 다녔다. 난감해지는 건 대부분 거절한 쪽이었다. 인턴의 남은 계약기간을 어색하게 보내고 떠났다. 그리고 또 새로운 인턴이 오면 짝사랑은 다시 시작되었다. S의 별명을 알려준 대리님에 의하면 그렇게 비슷한 패턴의 4번정도 반복 되었다고 했다.  


  그 당시에 친한 동기가 다른 팀 선배와 사내연애를 시작했다. 어느 날 동기 커플이 초대한 저녁자리에 갔다. 그 자리에 S도 함께 있었다. 둘의 비밀연애가 들키지 않게 S가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는 모양이었다. 이미 그들은 오빠 동생하며 가까워져 있었다. 1차를 간단히 끝내고 2차는 근처 노래방으로 갔다. 그런데 장소를 옮긴 후부터 이상하게도 2:2 커플 구도가 되어갔다. 선배는 자꾸 S의 좋은 점을 나에게 어필했다. 그럴때마다 그는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흘깃 바라보았다. 거무튀튀한 얼굴에 홍조가 올라와 있었다. 속에서 ‘으’ 하고 탄식이 나왔다. 저 인턴킬러의 이번 짝사랑 상대가 설마 나일까? 나는 잠시 바람을 쐰다는 핑계를 대며 밖으로 나왔다. 아니겠지, 내가 너무 자의식 과잉일지도 몰라. 그의 짝사랑 상대는 ‘이십 대 초반’이고 ‘대학생 인턴’이여야 했지만 나는 그 조건을 살짝 비켜나있었다. 나는 가방을 챙겨 나올 요량으로 다시 지하로 내려갔다. 우리가 있던 6번방 앞에 S가 혼자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과장님 왜 이러고 계세요? 저 잠시만 지나갈게요”


슬쩍 지나가려던 나를 그의 팔이 속도감 있게 가로막았다. 과장은 키가 많이 작았다. 내가 낮은 구두를 신으면 정수리가 어슷하게 내려다보였다. 힘차게 뻗은 팔은 안타깝게도 반대편 벽에 손 끝만 겨우 닿아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눈을 천천히 한번 깜빡였다. 으, 이게 말로만 듣던 그 ‘카베돈’이라는 건가.’ 남성이 사랑 고백을 위해 여성을 벽에다 내몰고 한 손을 기댄 채 속삭이는 행동을 카베돈이라고 불렀다. 당시에 일본의 순정만화나 오글거리는 드라마에서 시작되어 밈으로 떠돌던 고백 방법 중 하나였다. 벽으로 억지로 밀어붙이는 시대착오적 고백 방법은 희화화 되어 각종 개그 프로그램에서 패러디 되고 있었다. 이 밈에 대해 설명하는 어떤 언론 기사에서는 ‘어설프게 시도했다가 조인트 까인 뒤 따귀를 맞을 수 있으니 자제하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나는 애처롭게 벽에 닿아있는 과장의 짧은 팔을 보며 어이가 없는 동시에 헛웃음이 났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널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 알지? 내가 말이야 그러니까 너를 말이야, 지혜야.”


그는 낮게 깐 목소리로 결국 고백이라는 것을 내뱉을 모양이었다. 나는 조인트를 까버릴까 고민하다가 자세를 낮췄다. 순식간에 그의 팔 아래를 빠르게 지나갔다. 노래방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는 동기에게 ‘어우 과장님 많이 취하셨네. 이만 집에 가자’ 하고 외쳤다.


  동기 커플은 대리운전을 불렀다. 나는 택시를 잡았다. 겨우 해방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선배가 택시안으로 과장을 밀어 넣었다.


“어차피 비슷한 방향이니까 둘이 같이 가요. ㅇㅇ동 먼저 들렸다가 ㅁㅁ 아파트로 가주세요. 기사님.”

 

  택시는 빠른 속도로 출발했다. 삽시간에 그와 같은 공간에 다시 남겨지게 된 것이다. 10분만 더 참자고 생각했다. 과장은 어느새 졸고 있었다. 그 와중에 계속 내 어깨에 기댔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의 머리를 몇 번 밀다가 두 손으로 그를 확 밀쳤다. 그의 머리가 쿵 하고 맞은편 창문에 부딪혔다. 볼살이 출렁거릴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그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고, 고개를 자꾸만 내 쪽으로 기울었다. 이쯤 되면 자는 척이 확실해 보였다. 1시간 같던 10분이 지났다. 나는 가방을 챙겨 부리나케 내렸다. 빌라 입구에서 비밀번호를 누르려다가 뒤통수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현관문의 측면을 거울 삼아 뒤돌아보지 않고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찾았다. 아까까지 졸고 있던 과장이 창문을 내리고 멀쩡하게 뜬 눈으로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경영지원 팀이었고, 몇 호에 사는지 상세히 적힌 내 인사카드를 조회 할 수 있었다. 현관 비밀번호는 단순하게 일렬로 #2580#이였다. 택시가 정차된 골목은 좁았다. 그 시선과 나의 뒷통수는 머리카락에 붙은 먼지가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손가락이 굳었다.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내 귀에 가져왔다. 통화하는 척 아무 말이나 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택시가 엔진 소리를 내며 골목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더 이상 그의 짧은 팔이, 인턴킬러라는 별명이 우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속도감 있는 팔이 공동현관문 사이를 가로막아 열고 2층 우리 집 문고리를 잡아 흔들 것 같았다.




  피부과에 다녀온 그날 밤, 나는 대청소를 했다. 겉보기에 방은 충분히 깨끗했지만 이 방 어디엔가 내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바이러스가 숨어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늑한 공간을 향한 찝찝합을 말끔하게 걷어내고 싶었다. 내가 살고 있는 빌라는 좁은 1.5룸이었다. 신발 2개를 꺼내놓으면 꽉 차는 현관을 지나면 작은 부엌이 있었다. 부엌을 지나면 6평정도 되는 방이 나왔다. 화장대, 매트리스, 책장, 테이블이 4면을 꾸역꾸역 차지하고 있었다. 방에는 창문이 없었다. 대신 화장실의 작은 환기창과 미닫이문으로 분리된 세탁실 안쪽에 큰 창문이 있었다. 환기를 위해 두 개의 창문을 최대한 열었다. 큰 창문 넘어 골목의 풍경이 가까이에 보였다.

  매트리스를 밀어내어 바닥을 닦고, 책장에 먼지를 닦았다. 책장의 위치가 불현듯 맘에 들지 않았다. 독립 이후 사 모은 책은 꽤 많았고, 책장의 무게가 상당했다. 그대로는 밀어낼 수 없어 책을 윗 칸부터 꺼내기로 했다. 반 정도 덜어내자 두 손으로 밀어 낼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워졌다. 힘차게 책장을 밀어냈다.   

  그동안 가려져 있던 벽면이 드러났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책장의 네모난 모양 그대로 벽이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언제부터 자리잡았는지 알 수 없는 엄청난 곰팡이 군단이 그 곳에 있었다. 빌라는 필로티 구조로 되어있었다. 우리 집은 2층이었지만 바로 아래층은 주차장이었다. 공중에 떠 있는 1층이나 다름 없었다. 주차장은 어디에서 흘러왔는지 모를 구정물이 언제나 조금씩 고여있었다. 그 습한 기운이 그대로 우리 집으로 넘어온 듯 했다. 습기가 무거운 책장과 벽면의 틈 사이로 축축하게 고였던 것이다. 교묘하게 숨은 채로 곰팡이는 점점 면적을 늘려갔을 것이다. 어떻게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몰랐지. 원래도 방 안에 퍼져있었을 퀴퀴한 냄새가 그제서야 코를 가득 채웠다.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눈을 질끈 감은 채로 까만 벽면을 마른 걸레로 닦았다. 검색 창에 ‘벽면 곰팡이 청소 법’을 검색했다. 바닥을 정리하고 신문지를 깔았다. 청소는 언제 끝날지 모를 정도로 길어지고 있었다.


  그때 현관문이 노크소리에 요란하게 덜컹거렸다. 나는 고무장갑을 낀 채로 현관문에 귀를 대었다.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새벽 두 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이 시간에 누군가가 찾아올 리 없었다.

  “경찰입니다. 댁에 계신가요?”

자신을 경찰이라고 소개하는 젊은 남자의 약간은 격양된 목소리가 현관을 넘어 들렸다.

  “경찰이요? 무슨 일이죠?”

  “201호에서 싸움이 났다고 신고를 하셨는데, 본인 맞나요? 신고내용 확인 부탁 드립니다.”


  현관문은 도어렌즈가 설치되지 않아 바깥을 볼 수 없었다. 나는 문고리를 잡아 열려다가 멈췄다. 그가 경찰인지 아닌지 모를 일이었다. 화장실로 자리를 피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에도 딸의 전화를 놓치지 않고 받은 경화씨는 절대 문을 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나는 다시 현관 앞으로 가 말했다.

  “신고 한적 없습니다. 다시 확인 해보세요.”

  그는 나의 신원을 확인해야 하는 이유를 재차 설명했지만 문을 열지 않았다. 말씨름이 끝난 후 현관 앞이 잠잠해졌다. 열려있는 창문으로 골목을 내다보고 싶었지만 가까운 거리라 눈이 마주칠 수도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낯선 남자가 나를 쏘아보고 있을 것 같아 두려웠다. 휴대폰을 꺼내 112 버튼을 눌렀다. 가까운 지구대로 연결되었다. 나는 집 주소를 알려주며 경찰이 출동한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통화너머 경찰은 신고 접수도 출동이력도 없다고 답했다. 나는 경찰을 사칭한 남자가 몇 분 전 까지 현관 앞에 있었다고 말했다. 다시 찾아올지 모르니 어떤 조치를 취해달라고 부탁했다. 경찰은 침입이 있었는지, 피해가 있었는지 물었다. 직접적인 피해는 없다는 답변을 듣자 현재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대신 주변 순찰을 강화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현관문으로 향했다. 걸쇠를 채우고, 잠금 장치를 다 걸었다. 세탁실의 창문을 닫고 잠갔다.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C도시는 연고 없는 곳이었다. 당장 부를만한 동료도 친구도 없었다. 나는 내가 만취해야 즐거운 D 팀장도, 풀린 눈으로 추근덕거리는 S 과장도, 새벽에 문을 두드린 경찰 사칭범도 넌더리가 났다. 그들은 내가 알아채지 못한 사이이 일상을 시커멓게 더럽히고 있었다. 방에는 여전히 곰팡이의 악취와 제거제의 역한 냄새가 가득 차 있었다. 미처 환기가 안된 방 안의 균들이 눈, 코로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을 것이었다. 온 몸이 간지러웠다. 장밋빛 두드러기들이 상체를 다 뒤엎어 버릴 것 같았다. 곰팡이 때문인지, 그 동안 억지로 마신 술 때문인지, 입에서 비릿한 쇠맛이 났다. 잠이 오지 않았다. 거울 앞에서 잠옷을 벗고 섰다. 울긋불긋해진 가슴과 배를 바라보았다. 의사는 평생 상처가 남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붉은 반점은 마른 장미처럼 검붉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눈가가 비슷한 장미빛으로 물들었다. 이 방은 더 이상 편안하지도 안전하지도 않았다. 나는 곰팡이를, 곰팡이같은 사람들을 피해 어디로든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2 번째 집 : N 빌라 [1년반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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