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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혜 Sep 23. 2022

목련아파트

  매달 50만 원씩 나가는 월세는 큰 부담이었다. 적은 월급에서 월세를 떼고, 공과금을 내고, 보험료가 빠져나가고, 생활비를 남겨두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 중소기업 대출제도를 알게 되었다. 예상보다 큰 금액을 받을 수 있었다. 고정비용을 최대한 줄이자는 목표로 집을 알아보았다. 자취 후 두 번의 원룸을 거치며 나름의 기준이 생겼다. 해가 잘 들 것, 습하지 않을 것, 그리고 위험하지 않은 곳. 살면서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었다. 게다가 가능한 보증금의 금액은 한도가 있었다. 나는 부동산 중개 플랫폼들에 검색조건에 보증금과 월세를 입력한 뒤 수시로 들어갔다. 맘에 드는 매물이 스크랩에 차곡차곡 쌓였다.     


  주말이 되자 엄마 경화가 내가 사는 도시로 왔다. 함께 이사 갈 집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어린 딸이 중개업자에게 휘둘리거나 꼼꼼히 매물의 흠을 체크하지 못할까 봐 염려도 되었을 것이다. 이럴 때 아니면 딸의 집에 잘 오지 않기에 그의 방문이 반가웠다.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었다. 내가 미리 연락해둔 매물들을 먼저 돌아다니기로 했다.

  처음 본 매물은 상가 건물이 많은 동네의 한 오피스텔이었다. 컴컴한 복도에 세대가 빼곡히 좌우로 펼쳐져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가격 대비 꽤 넓은 원룸이 나왔다. 하지만 복도만큼이나 집도 어두침침했다. 경화는 중개사가 다른 곳을 보는 사이에 나에게 고개를 저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세 번째 그다음 매물들도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떤 곳은 벽에 손을 대보니 축축한 기운이 올라왔다. 또 다른 곳은 화장실에서 찌든 냄새가 났다. 다른 곳은 으슥한 골목에 술집이 즐비한 곳에 위치했다. 현관에 커다란 바퀴벌레가 죽어있는 곳도 있었다. 경화와 나는 윙크를 하거나 콧잔등을 으쓱이며 번갈아 아니라는 신호를 보냈다. 오후가 훌쩍 지나있었다. 발바닥에 불이 나서 우리는 보이는 카페에 들러 겨우 엉덩이를 붙였다. 나는 타는 속을 시원한 커피로 달래며 말했다.

  “엄마, 이렇게 집이 많은데, 내가 살 집은 왜 없냐.”

  “그러니까. 전세면 그래도 좀 넓은 아파트 같은 게 좋은데. 오, 이거 봐봐,”

  부동산 사이트에서 여전히 눈을 떼지 않던 경화가 휴대폰을 커피잔 앞으로 들이밀었다. 건넨 화면에는 봄 꽃의 이름을 가진 구축 아파트 매물이었다. ‘3000에 30. 방 2개. 현재 외국인 거주 중.’ 순간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20씩 월세를 아끼면 1년에는 240, 2년은 거의 500만 원. 방 2개면 하나는 옷 방으로 쓰고 방 하나는 침실로 독립해서 쓰고. 친구들 오면 게스트 룸으로도 내어주고. 찬란하게 펼쳐진 상상 속에 나는 어느새 15평 아파트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곧장 택시를 타고 아파트가 있는 동네로 갔다.

  2층짜리 아파트 상가 건물에 부동산 사무실이 있었다. 중개사는 경화보다 조금 더 나이가 있어 보였다. 둘은 비슷한 스타일의 짧은 파마머리를 하고 마주 앉았다. 나는 그 옆에 자리 잡고 앉아 캡처한 매물 페이지를 보여주었다. 중개사는 우리 모녀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누가 거주하실 예정이세요?”

  “제 딸이요.”

  대답을 듣고도 여전히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중개사는 일단 보여드리겠다며 앞장섰다. 따님이 이 혼자 살기에는 좀 그런데.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는 나에게만 들렸다. 평수가 너무 넓어서 그런가 하고 생각하며 뒤를 따라갔다. 곧 내 집이 될지도 모르는 그곳의 현재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최근 다니고 있었던 회화학원의 강사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시민게시판을 지날 때까지만 해도 정감 갔던 주변이 단지 안으로 점점 깊숙이 들어가면서 점점 으스스해졌다. 그렇게 느끼게 된 데 결정적 역할은 한 것은 바로 이곳을 둘러싼 소리였다. 뒤편의 공장 단지에서 기계 소리들이 섞여 들려왔다. 아파트 통로형 복도에 줄을 선 세탁기에서 터덜터덜 작동되는 소리와 물소리가 났다. 퍽퍽 뭔가 두드리는 소리, 개가 세차게 짖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경화의 곁에 바짝 붙었다.

  붉은 타일이 군데군데 깨진 계단을 걸어 3층에 도착했다. 매물의 옆집에도 복도에 세탁기가 꺼내져 있었다. 옛날에 지어져서 현관 밖에만 통돌이 세탁기 설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중개사가 덧붙였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옥색 싱크대가 정면에 보였다. 7년 전에 일부 리모델링을 해서 주방은 쓸 만하다고 했다. 바로 옆에는 거실 겸 큰방이 있었다. 대각선으로 깨진 창문은 임시방편으로 박스 테이프가 붙여있었다. 우측에는 작은 방이 있었다. 한 낮인데도 밤처럼 침침한 방안에 들어가자 중개사가 빠르게 불을 켰다. 벽을 타고 물 자국이 길게 바닥까지 내려와 있었다. 마지막은 화장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복도처럼 긴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측에는 낮은 계단이 세 개 있었고 그 위에 변기가 올려져 있었다. 천정은 한쪽으로 기울어져있었다. 화장실의 제일 안쪽 끝에는 샤워기가 걸려있었는데 키가 작은 나도 오른쪽으로 고개를 제법 꺾어야 자세가 나왔다. 화장실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바깥 복도로 나왔다. 경화와 나는 아무 신호를 보내지 않았지만 서로의 뜻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중개사 역시 우리의 의중을 아는 듯 입을 떼었다.

  “여기도 한때는 돈깨나 버는 사람들이 살고 그랬어요. 상가도, 식당도 주말이면 사람이 잔뜩 몰렸고. 재개발을 기다리는 아파트가 다 그렇죠 뭐. 치안이 좋은 동네는 아니라서 젊은 아가씨 혼자 살기는 어려울 거예요. 물도 자주 새고.”

  마흔이 훌쩍 넘은 아파트는 곧 부서져야 할 운명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여러 단체와 개인의 이익이 상충하며 지난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외벽 페인트가 갈라지고 타일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물이 새어 나가는 곳마다 곰팡이가 생기고 갈라져왔을 것이다. 이 아파트는 공단이 가깝고 월세가 저렴했다. 예산이 빠듯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입주민의 80%가 주변 공단의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중개사와 헤어진 뒤, 우리는 들어온 방향의 반대편으로 무작정 걸었다. 다른 라인의 입구에 재난위험시설 D등급 지정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쭉 걸어나와 2차선 도로에 도착하자 길 건너에 영어 이름을 가진 대단지 아파트가 보였다. 신축 건물들이 한 무리를 이루어 거대한 덩치로 한낮의 해를 그대로 독식하고 있었다. D등급의 아파트는 대단지가 만들어낸 그림자를 덮어쓰고 있었다. 봄의 개화를 기대하기엔 너무나 서늘한 음지에 그 아파트가 있었다.     





  우리는 장소를 옮겨 몇 군데의 집을 더 둘러봤지만 마음에 드는 곳은 나타나지 않았다. 시외버스의 막차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큰길로 나와 택시를 타려다가 경화가 풍경을 보고 작게 탄성을 질렀다. 내가 사는 도시는 가을이면 길마다 은행나무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6차선 대로를 따라 펼쳐진 가로수가 노랗게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우리는 도보로 30분 정도 떨어진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보도블록 위에는 은행 열매가 촘촘하게 떨어져 있었다. 명성에 걸맞게 구릿한 냄새가 진동했다. 경화와 나는 몸의 중심을 잡으며 최대한 피해서 걸으려 노력했다. 그때 경화가 내 등을 슬쩍 밀었다. 하얀 스니커즈가 은행 군단에 지체 없이 떨어졌다.

  “으악, 엄마!”

  내가 코를 막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경화가 장난스럽게 따라 웃었다. 떨어져 있다가 가끔 이렇게 만날 때면 나는 경화의 아이 같은 모습을 자주 발견했다. 경화가 나를 낳은 나이에 가까워질수록 더 그랬다. 듬직한 나의 엄마이지만 늦둥이 막내딸이기도 한 경화. 우리가 떨어져 산지도 2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경화는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한 시간이 떨어진 Y시에 살고 있었다. 내가 독립하기 전까지 우리는 15년 동안 그곳에서 함께 살았다. 15년 전 경화가 갑자기 Y로 이사를 가자고 했을 때 나는 의아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곳으로 갑자기 옮겨 간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사를 마음먹은 경화는 혼자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Y에 갔다. 대로변에 있는 아무 부동산에 무작정 들어갔다. 형편상 가능한 최대한을 보증금 조건으로 말했다. 중개사는 그 금액으로는 볼 수 있는 매물이 많지 않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세 식구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작은 아파트를 구했다. 낡았지만 해가 잘 들고, 보송보송하고, 안전한 곳이었다. 나는 그때 혼자서 애써 씩씩했을 경화를 떠올렸다. 저 멀리 터미널이 보였다.

  “우리 딸 넓고 환한 집 하나 여유롭게 못 구해주고 맘이 좀 그렇네.”

  경화가 터미널 의자에 앉아 말했다. 하루를 꼬박 들였지만 마땅한 집은 찾지 못해 아쉬운 표정이었다. 나는 많이 걷는 직업을 가진 경화의 무릎을 주말에도 고생시켜 마음이 무거웠다.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지 못해도 물리적인 지원은 해주고 싶었던 경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Y로 이사 갔을 때, 엄마 혼자 집 보러 다닐 때. 그땐 지금 보다 더 힘들었겠다.”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하지 뭐.”

  “그때 같이 못 가서 미안하네.”

  “갑자기 뭔 소리래. 그땐 너도 어렸으니까. 그럼 우리 둘 다 퉁치자.”

  “퉁은 무슨…… 그래, 퉁 치자!”

  경화와 양 손으로 하이파이브를 한 뒤, 이내 버스가 왔다. 버스의 뒷꽁무니가 시야에서 사라진 뒤 해가 지는 길을 따라 걸었다. 짙은 남색 하늘을 배경으로 샛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보색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경화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어서 Y로 이사를 결심했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아름답게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도시는 경화에게는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치열한 전쟁터와 같은 곳이었다. 경화의 투지는 모두 두 딸에게서 나왔다고 했다. 나는 그의 발목에 대롱대롱 매달려있었을 어린 딸들의 얼굴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월세, 관리비, 카드값 같은 숫자 덩어리가 만들어낸 그림자에 가려 볕을 맘껏 누리지 못한 채 40대를 보냈을 경화의 서늘한 하루들이 Y시에 쌓여 있었을 것이다.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자 흩어진 은행 열매가 보였다. 낮에 보았던 낡은 아파트의 풍경이 다시 떠올랐다. 누군가는 방치한 아파트에서 어떤 사람들은 하루의 피곤함을 풀고 있을 것이었다. 그 아파트가 이름을 빌려온 봄 꽃을 모양을 생각했다. 하얗고 큰 꽃봉오리가 만물이 피어나는 계절의 초입에 피어나는 모습.     


  집으로 돌아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리며 부동산 중개 플랫폼을 다시 열었다. 검색 조건을 입력했다. 이사를 향한 여정은 아직 한참 남아있었다.



가을이 되면 종종 그날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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