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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지 Nov 01. 2017

딜레마 앞의 인도: 혁신인가 안정인가? (1/2)

Cashless India에서 Less Cash India로

* 커버 이미지 출처: Demonetization: Modi’s move to destroy political rivals not black money, Times of India, Nov 2016 (링크)


떠오르는 인도의 결제 시장을 경험한 지 이제 8개월 빠듯이 차 가는 시점에, 인도 결제 시장의 현주소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인도 디지털 결제 업계에서 내로라 하는 사람들이 다 모인 Digital Money Conference 2017에서 들은 정보와 후기 위주로 작성했다.


아마존 인디아의 부회장을 비롯한 디지털 결제 시장의 대형 플레이어들(이미지 출처: 미션 스피릿 작가 알렉사 - 브런치 바로가기)




인도 결제 시장의 급격한 변화

혼란은 사다리였다. 소수한테만



구체적인 이야기를 적기 전에 인도의 결제 시장에 대한 배경 설명을 몇 가지 해야겠다. 일찍이 알리페이가 꼬맹이 세뱃돈까지 쌈 싸 먹은 옆 나라 중국과 다르게, 인도는 "Cash Is King"이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현금이 넘볼 수 없는 최고의 결제 수단이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는데, 워낙 열악한 인프라와 높은 문맹률, 대중 일반의 기술에 대한 불신이 주효했다. 소유자 추적과 기록이 불가능한 현금이 판치는 환경은 당연하게도 검은돈과 탈세의 번식을 낳았고, 인도는 전 세계적으로 탈세로 악명을 떨치게 된다. (인도가 지난 25년 간 GDP가 4.5배 성장했음에도 GDP 대비 세금 비율은 거의 일정했다는 기사 - 링크 ) 인도 정부는 작년 10월 소득을 신고하면 기존의 탈세 혐의에 대한 면제를 제공하려 했는데, 이로부터 4조 5천억 원의 추가 세수 증가를 기대할 수 있었다니, 이쯤 되면 말 다한 셈이다 (링크).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디 정부는 2016년 11월, 초강력 정책을 단행하는데, 그건 바로 500루피와 1,000루피짜리 지폐의 발행을 중단하는 것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5천 원 권과 1만 원 권의 발행을 그냥 어느 날을 기점을 중단하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대부분 카드 결제로 넘어간 상태이기 때문에 와 닿지 않을 텐데, 500과 1,000루피짜리 지폐가 당시 인도 내 결제 금액의 86%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무서울 정도로 막무가내의 결정이다. 


이것이 바로 Demonitization(통용 금지, 폐화 정책)이라고 불리는 극단적인 정책이었다. 10월 28일과 12월 9일 사이 현금 유통이 92조 루피(한화 약 160조 원)나 줄어들었고, 이는 유통 중인 현금의 54%에 달했다(Weekly Statistical Supplement, Reserve Bank of India, 2016년 12월, 링크). 최소 33명이 이 정책의 여파로 목숨을 잃었는데, 대개는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ATM 바깥에서 지나치게 오래 기다리다 열사병으로 사망했다. 부모가 병원비를 지불할 현금이 없어 아이가 응급실에서 죽어간 가슴 아픈 경우도 있었다. (The Very Real Impact of India's Demonitization, Adam Smith Institute, 2017년 3월 16일, 링크) 이외에도 아내에게 숨겨둔 비상금을 빼앗으려는 남편들의 가정폭력이 치솟는 등 지난 11월부터 다시 ATM에서 새 지폐 인출이 가능해진 올해 2월 사이에 인도의 상황은 극도로 혼란했다.


언뜻 보기에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ATM 바깥에 끝없이 서있다.

(이미지 출처: Demonetisation: Queues outside banks shorten, 40 per cent ATMs dispensing new notes, The Indian Express, 2016년 11월 22일, 링크)


워낙 논란이 많은 이 정책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여기서는 이 정책이 인도 결제 시장에 어떤 파장을 불러왔는지를 보고자 한다. 모디 정부가 시장에서 현금을 긁어내며 대체 수단으로 내세웠던 기치는 'Cashless India'였다. 현금결제에서 디지털 결제로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인도는 원래 금융 규제가 굉장히 엄격한 국가였으나 Demonitization을 실시하며 규제를 상당 부분 완화했고, 다양한 디지털 결제 수단의 결제/잔고 한도를 2배로 높이는 등 개혁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었다. 이는 인도 내 디지털 결제 기업들에게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혼란은 사다리야(Chaos is a ladder)." 


(이미지 출처: Wikipedia)

이 혼란의 혜택을 가장 크게 본 기업은 아마 이견의 여지없이 페이티엠(PayTM)이다. 우타르 프라데쉬(Uttar Pradesh) 주의 노이다(Noida) 시에 본사를 둔 페이티엠은 2010년에 모바일 플랜 리차지 사업으로 시작하여 2013년 모바일 월렛으로 사업 지평을 넓혔다. 그리고 2016년 Demonitization 정책이 실시되자 선두 기업으로서 공격적으로 시장을 공략하여 인도 내 오프라인 디지털 결제의 과반 이상을 차지했다. 페이티엠 이외에도 프리차지(Freecharge), 모비퀵(MobiKwik), 올라(Ola), 옥시즌(Oxigen) 등이 오프라인 모바일 결제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페이티엠의 독주를 막지는 못했다. 정책이 발표된 후 한 달 동안 페이티엠의 일일 거래량은 200%, 전체 트래픽은 700%, 모바일 월렛 내 금액은 1000%, 앱 다운로드 수는 300%로 치솟았으며 인도 내 오프라인 디지털 결제의 최강자로 자리를 굳혔다.



페이티엠의 거래 규모 (이미지 출처: After demonetisation, e-wallets strike it rich while India runs out of cash, IndiaToday in Tech, 2016년 11월 23일, 링크)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본격적인 Demonitization 기간이었던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에 이르기까지 PPI(Prepaid Payment Instrument, 선불결제수단을 이르는 말로 모바일 월렛을 포함)를 통해 이루어진 결제 금액이 한 달 기준 기존 약 6천만 건에서 9천만 건으로 성장하는 기적 아닌 기적이 일어난났다. (이미지 출처: Digital transactions peaked at Rs149.5 trillion in March: RBI data, LiveMint, 2017년 4월 6일, 링크 ) 그리고 그 혜택의 대부분은 페이티엠에게 돌아갔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꽃은 지고 정책은 변한다



정부의 의도대로 디지털 결제 시장이 성장한 것은 좋았다. 그렇지만 이런 극단적인 정책을 무한정 지속할 수는 없었다. 인도 정부는 결국 대중의, 정확히는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다 다시 슬금슬금 현금을 내놓기 시작했다 (인도는 올해 7개 주에서 의회 선거를 치르며, 그중 5개가 2-3월에 몰려 있었다). 올해 2월에 다시 ATM에서 새로운 지폐를 뽑을 수 있게 되었으며, 경직된 통화 시장도 천천히 완화되기 시작했다. 수십 년 간 현금 사용에 익숙해져 있었던 인도인들은 관성에 따라 현금 결제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이에 더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많은 수의 모바일 월렛의 보안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면서 관료조직의 보수성이 고개를 들었다.


정책 기치도 Cashless India에서 Less Cash India로 하향 조정되었다.


현금 공급이 늘어나고 디지털 결제에 대한 수요도 줄어드니 당연히 디지털 결제 시장의 축소가 예상되었지만, 그동안 성장하는 인도 결제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이미 많은 플레이어들이 발을 들여놓았고 또 후발주자들도 시장 진입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 입장에서는 굳이 이 많은 사업자들을 배려해 정책을 구상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페이티엠이라는 독보적 사업자가 있어 디지털 인디아를 이끌어나가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도 정부는, 정확히는 인도 중앙은행은 올해 4월 디지털 결제 업계에 폭탄을 던졌다.


인도 중앙은행은 매년 6월 말에 이후 1년 동안 디지털 결제 업계에 적용될 거시적 정책을 내놓는데, 3-4월 즈음에 정책 초안을 내놓는다. 올해 4월 발표된 인도 중앙은행의 Master Directions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내용이 있었다.


1. 앞으로 모바일 월렛 업체는 순자산 2억 5천만 루피 (한화 약 50억 원)를 상시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2. 모바일 월렛 업체는 60일 내 보유한 모든 가입자들의 신원 인증(KYC, Know Your Customer Procedures)을 받아야 하며 앞으로 이 절차를 통과한 신규 가입자들만 받을 수 있다.


첫 번째 정책의 의도는 명확하다. 더 이상 소규모 업체의 시장 진입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 업체들 중 소규모 플레이어를 솎아내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장에서 적은 수의 대형 플레이어들만을 보수적으로 유지/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스타트업들에게는 정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실제로 Digital Money Conference 2017에서 만난 PayMate라는 모바일 월렛 스타트업의 젊은 CEO는 이에 대해 상당히 강경한 항의의 목소리를 내었다. 아래는 그의 말을 내가 최대한 기억나는 대로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인도 정부는 더 이상 혁신을 포기했습니다. 더 이상 작은 차고에서 꿈 많은 젊은이 둘이 세상을 바꿀 기업을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사라졌습니다. 대형 기업들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되었고, 정부가 그걸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그것이 좋아 보일지는 모르나, 더 이상 시장을 혁신할 새로운 동력은 사라질 것이며 인도의 디지털 결제 시장은 정체되고 퇴화할 것입니다.


두 번째 정책을 보면 많은 한국인들이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르겠다. 한국인들에게는 일상의 일부가 되어버린 모바일 신원 인증이 인도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인도 사용자들에 대한 신원인증절차가 갖는 특수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도 시장 자체의 두 가지 특수성을 알아야 한다. 첫째, 인도는 인구와 땅의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이 크다. UN의 통계에 따르면 이미 인도의 인구는 13억 3천만 명에 달하며 이미 중국의 인구를 넘어섰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Expert Doubts China’s Population Number, Saying India May Be No. 1, New York Times, 2017년 5월 24일, 링크). 인도의 국토 면적은 세계 7위로 330만 제곱 킬로미터다. 22만 제곱 킬로미터인 한국을 15개쯤 욱여넣으면 인도가 된다. 이 넓은 땅의 그 많은 인구를 관리하기 위해 인도 정부는 인도판 주민등록번호를 만들었는데, 그 이름은 아다르(Aadhaar)이다.



인도판 주민등록번호인 아다르 넘버. 지문을 등록한 후 부여받으며 인도인들의 모든 신원인증 절차에 사용된다.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링크)



주민등록번호가 있는데도 왜 신원인증절차가 어려울까? 한국의 본인인증절차를 떠올려보면 그 답이 있다. 한국의 모바일 서비스를 이용하며 본인 인증을 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이름과 생년월일, 휴대폰 번호를 입력한 뒤 날아오는 인증번호를 입력하면 된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그 많은 사람들에게 아다르 번호를 전부 발급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인도 정부는 거의 100% 다 발급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6-70%에 그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아다르 번호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휴대폰 번호에 아다르 번호를 등록한 인도인은 채 10%가 안 된다 (아다르가 휴대폰 번호에 연결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신원 인증 없이 구매한 선불 휴대폰 번호와 요금제를 이용한다).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인구가 아다르 번호를 등록하러 갈 시간을 내기도 어려울뿐더러 통신사 대리점이 멀어서 심하면 차로 1시간 반을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번만 자기 아다르 번호를 등록해 놓으면 앞으로 계속 편하게 쓸 수 있을 텐데 싶겠지만, 여기서 인도 시장의 두 번째 특수성이 걸림돌이 된다. 그건 바로 다양한 언어와 높은 문맹률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아는 것과 다르게 인도에서는 영어가 어디에서나 통용되지 않는다. 델리와 뭄바이 등을 비롯한 대도시권에서만 아주 일부의 인구가 영어를 사용하며, 그것도 기존의 영미권 영어에만 익숙하던 한국인은 못 알아듣는 경우가 태반이다. 북인도권 인도인들은 대부분 힌디어를 사용하며 남인도로 갈수록 뗄루구 어, 오리사 어 등 다양한 지역 방언들이 사용된다. 전화 인터뷰를 진행하는 북인도인 직원들이 남인도인이 연결되면 한마디도 소통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언어가 다양하고 복잡하니 하나의 신원인증절차를 전 인도적으로 적용할 수가 없다. 지역별로 로컬라이징 한다고 해도 시골로 갈수록 글을 읽는 사람들의 비율은 현저하게 줄어들어 서류나 모바일 서비스를 통해 신원인증절차를 진행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기존의 신원인증절차는 중개 업체를 통해 직접 사람을 파견하여 지문을 기계로 등록받고 대신 서류를 써주는 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물론 인도의 대도시 지역들은 매우 발전했으며 아다르 번호도 등록하고 다양한 모바일 서비스를 원활하게 이용하는 인구도 많다. 다만 인도는 매우 크고 다양한 나라이며 소득과 문해력, 기술 활용 수준 등이 극단적인 스펙트럼으로 펼쳐져 있기 때문에 하나의 절차를 일괄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은 극도로 어렵다는 것이다.

신원인증은커녕 말도 못 붙일 것 같다. (이미지 출처: 링크)



상황이 이러한데, 기존의 모든 고객들에게 60일 내에 신원인증절차를 통과하도록 강제하고 이후 절차를 통과한 신규 가입자만 받으라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시장의 문을 닫아버리겠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그러한 절차를 대규모로 진행할 리소스를 갖추지 못한 업체들은 쫓겨나기 마련이다. 당연히 업계의 반발은 엄청났다. 중앙은행은 일단 의견을 청취하겠다며 한발 물러난 입장을 취했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부와 업계의 줄다리기가 벌어지는 가운데 6월 말에 발표되었어야 할 중앙은행의 정책은 무기한 연기된 채 시장의 불확실성만 키우고 있다.



갈대보다 변덕스러운 인도 정부의 마음. 우리는 이러한 혼란 속에서 인도 디지털 결제 업계 내 주요 플레이어들이 모두 모인다는 Digital Money Conference 2017에 참석하기 위해 뭄바이로 향했다.


*노잼이지만 이래 봬도 출장 후기입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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