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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Jul 09. 2016

바다가 주는 선물, 에트르타

프랑스 오트노르망디주 소도시 에트르타 Étretat


처음으로 친구에게 바다를 보여줘야 한다면
내 선택은 에트르타일 것입니다.

- 알퐁스 카

  

  프랑스의 유명 소설 작가이자 비평가인 알퐁스 카(Alphonse Karr)가 에트르타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말이다. 프랑스 북부 오트노르망디주에 위치한 작은 바닷가 마을인 이곳 에트르타는 마음이 복잡할 때 우리가 바다를 찾는 이유를 충족시켜준다. 한적한 해변에 찰박거리는 파도소리는 시끄러운 도시에 쫓겨 에트르타를 향해 온 이들에게 해답을 줄 것만 같은 넓은 품으로 우리를 반긴다. 5월의 바닷가 바람은 생각보다 매서웠지만 이곳에 서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풍요로워짐을 느낄 수 있다.






  조용한 절벽 위로 올랐다.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에트르타는 제법 거센 바람으로 날 맞이했지만 마음은 한결 수더분하게 만들었다. 화려하지 않음에서 오는 힘이었다.





  에트르타의 팔레즈 다발(Falaise d'Aval)과 다몽(d'Amom)을 조망할 수 있는 절벽 위로 오르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외딴 교회당이다.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Chapelle Notre-Dame de la Garde)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1854년 지어졌다. 당시 에트르타의 주민들은 미셸 신부의 설교 말씀에 따라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하기 위한 예배당을 건축하였고, 1942년 8월 훼손되었던 것을 8년이 지난 뒤 재건했다. 지금은 운영되고 있지 않지만 매년 크리스마스면 문을 열고 마을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는 장이 된다.



팔레즈 다발과 다몽을 바라보는 두 사람



  절벽 위에 오르면 팔레즈 다발과 다몽은 물론 에트르타의 촌락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 이곳 역시 다른 노르망디 지역과 마찬가지로 콜롱바주(Clombage)형식의 집이 흔하다. 알자스 지방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형태로 나무 뼈대를 세우고 나머지 부분을 진흙이나 벽돌로 채워 짓는 집을 말한다.

  높이가 높지 않은 고만고만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에트르타의 작은 마을을 형성했다. 이곳은 알퐁스 카를 비롯해 프랑스의 유명 소설가인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이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다. 모파상은 에펠탑을 보고 싶지 않아 에펠탑 안에서 점심을 먹었다는 일화로 유명한데, 에트르타의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고 나면 그가 왜 파리의 거대한 철탑을 사랑하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팔레즈 다발과 다몽



  팔레즈 다발과 다몽. 모파상은 이를 보고 코끼리가 코를 바다에 박고 있는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국내에서는 이 절벽을 '코끼리 절벽'이라고 흔히 부르지만 프랑스에서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다.





  과거 프랑스의 많은 화가들이 사랑했던 에트르타의 아름다운 절벽, 팔레즈 다발과 다몽이다. 모네를 비롯해 사실주의 화가인 구스타브 쿠르베 역시 <폭풍 후의 에트르타>라는 제목으로 이 절벽을 그렸는데,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가면 감상할 수 있다.

  모네는 말했다. '그것이 내게 벅찬 일일 찌라도 쿠르베가 그림을 훌륭하게 완성하고 나면 나 역시 에트르타의 절벽을 그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방식이 될 것이다.'

  왼편이 쿠르베가 그린 <폭풍 후의 에트르타 La falaise d'Etretat après l'orage>이고, 오른쪽이 모네가 그린 <에트르타 절벽의 일몰 The Cliff, Etretat, Sunset>이다. 어느 것이 더 아름답다 함부로 말할 수는 없으나 그들이 사랑한 에트르타의 절경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를 지키고 있다.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오른다. 차를 타거나 직접 걸어 오르기도 하지만 여행자들을 위한 꼬마 기차를 운영하기 때문에 힘 들이지 않고 절벽 위에 도착할 수 있다.



프랑스의 첫 대서양 비행을 기념하는 첨탑



  절벽 위에는 높이 솟은 첨탑 하나가 있다. 이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당시 비행기 조종사였던 샤를 뉭제세르(Charles Nungesser)와 프랑수아 콜리(François Coli)의 첫 대서양 횡단 비행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그들은 파리-뉴욕 간 새로운 항로 개척을 위해 큰 도전에 임하였으나 1927년 5월 캐나다 상공에서 실종되었다. 이후 미국의 파일럿 린드버그가 미국-유럽 간 비행을 성공했다.

  프랑스는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기념할만했던 그들의 모험심과 도전 정신을 높이 사 이 첨탑을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해 훼손되었지만 1963년 이곳에 새로 만들어졌다.





  푸른 쪽빛 바다와 아찔한 절벽. 티끌 하나 없이 맑은 바다는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매력이 있다.





  절벽 아래로 내려왔다. 마을은 휴양지답게 고요하고 한적했다. 이곳은 화가들 뿐 아니라 소설가들의 사랑을 함께 받았다. 유년 시절을 에트르타에서 보낸 모파상은 물론이고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Victor Hugo),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역시 이곳을 배경으로 글을 썼다. <아르센 뤼팽>으로 유명한 모리스 르블랑(Maurice Marie Émile Leblanc)은 <기암성>의 배경을 에트르타로 삼고 집필하기도 했다.





  이토록 멋진 절경을 자랑하는 에트르타가 프랑스인들에게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건 불과 200여 년 전부터였다. 루이 16세의 아내이자 오스트리아의 공주였던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에게 올려질 굴을 이 에트르타의 바다에서 채취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알퐁스 카에 의해 흔히 알려지게 되었다. 많은 거부들과 정치인들의 별장이 하나 둘 드러서면서 신혼여행지는 물론 관광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팔레즈 다발과 다몽



  절벽을 내려와 팔레즈 다발과 다몽 가까이로 걸어가 봤다. 투명한 바다와 자갈밭은 발을 담가 보기에 좋았다. 파도에 깎여 둥그런 자갈 일색인 이 해안은 몽돌 해안으로 불리는데, 쉼을 얻으러 오는 우리를 모난 곳 없이 받아들이는 에트르타의 모습 그대로이다.





  많은 예술가들은 여전히 이곳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그들은 저마다 화폭 안에 자기만의 에트르타를 그린다. 아마 캔버스 안에는 에트르타의 너른 품과 겸허한 자세와 여유로운 마음이 그려져 있을 것이다.

  알퐁스 카는 이런 말을 남겼다. '어떤 사람들은 장미나무에 가시가 있다고 불평하지만 나는 가시에 장미가 달린 것에 감사한다.'

  사소한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바다를 닮은 광막한 그의 마음씨는 에트르타로부터 배운 현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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