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희씨 Oct 17. 2016

혈연의 진귀함

한 배에서 나온 완전히 다른 인간, 그것이 나의 형제이다.

 동생이 집에 왔다. 최근에 자주 온다. 본인이 직접 말한 적은 없으나 주로 동생이 집에 오는 때는 그 마음이 불안하거나 허전할 때인 듯싶다. 20대의 그 언젠가처럼 동생은 이제 시시콜콜 나에게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하지 않기에 지레짐작할 뿐이다. 집에 와서 정신없이 퍼져 잠든 동생을 보며, 가끔 그의 삶의 무게가 느껴져 안쓰럽게 생각될 때가 있다. 


 동생은 나와 굉장히 다른 기질을 가졌다. 한때는 그 다름의 시작이 우리가 잠시 떨어져 지낸 고등학교 때부터라고 생각했는데, 주변 친척들의 이야기를 수집한 결과, 그것은 타고난 그의 기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한 성격차이 때문에 그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또한 그런 차이점 때문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내 삶의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다. 


 20대 중반부터 시작된 취업 전쟁에서 내가 괴로울 때, 동생은 모범적인 코스를 밟아 취직했다. 그리고 약 1년간, 나의 경제적 뒷바라지를 자처해주었다. 나이가 들고 평소처럼 일상을 살다가 이유 없이 가끔 그때의 일들을 회상하게 되는데, 동생의 노력이 느껴져서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난 내 앞가림을 하기에 급급한 날들이었고 철저히 받기만 했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 시간을 고맙게 생각하면서도 다시는 돌아가기 싫은 최악의 시간인데, 동생은 당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에너지를 주려고 노력했지만 동생의 그러한 방법이 나에게 잘 맞았다기보다는, 동생이 날 위해서 이렇게 노력하는 게 너무 싫어서 어떻게든 내 길을 찾으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에게 그렇겠지만 이제 서로 다른 세상에 사는 시간이 쌓이다 보니 만날 때마다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생활패턴에서부터 시작해서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랄까 해석이랄까. 그러한 동생의 관점이 도움이 되기도 하고 이해가 안 되는 것들도 있지만 가족끼리 대화를 하다가 옛날이야기를 하면 또 동생만큼 마음이 통하는 대화 상대가 없다. 


 옛날이야기. 다 지난 이야기. 사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과거'가 있다는 것이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면 순식간에 대화 상대에게 말로 설명하기 힘든 '정'을 느낀다. 그때의 시간, 공간, 촉감, 감정.. 그 모든 것이 동생과 공유되어있고, 척하면 척 알아듣는 우리의 대화 속에 정말 오랜 시간을 우리가 함께 해왔구나 하는 생각에 뭉클함마저 든다. 


 동생의 가치관에 차이를 느끼고 놀랄 때도 있지만 든든하다고 느낄 때도 많은데 역시나 가족에게 좋고 나쁜 큰 일들이 있을 때이다. 가족끼리 있을땐 '저건 나이 들어도 어릴때랑 똑같네'라고 생각할 정도로 아이 같은 면도 보이지만 친가나 외가 쪽의 장례, 친척들과 함께 하는 여행, 아빠의 면을 세워주는 아버지 지인들과의 만남 등에서 동생을 놀라우리만큼 딱 '사회인'이다. 모르긴 해도 남자인 아빠에게 동생은 내가 키운 수컷 새끼로서의 든든함을 여러 차례 안겨주지 않았을까 한다. 특히 할머니 장례식에서는 나 역시 동생에게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 했던 것 같다.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을 어른들과 함께 해결해나가는 녀석을 보면서 이 놈과 형제라는 것이 참으로 든든했었다. 


 남이었다면 삶의 동반자가 되기 어려웠을 각자 다른 성격, 다른 가치관으로,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형제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조건 없는 정을 나누고 있다. 부모 외에 나와 가장 오랫동안 삶을 함께 나누는 존재는 형제일 것이고, 부모 외에 나의 행복을 가장 바라는 존재도 형제일 것이다. 죽을 때까지 함께할 소중한 혈연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


 

   

작가의 이전글 추석 송편 전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