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먹을 것이냐, 만들어 먹을 것이냐
결혼하고 첫 명절은 긴장하기 마련이다. 결혼식날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연신 고개를 숙였기에, 남편이 '우리 결혼식에 오셨으니 기억나죠?'라며 친절히 소개한다 해도, 새댁에게는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는 부담스러운 모임이다. 게다가 그런 모임에서 부엌을 들락거리며 빠릿빠릿 눈치를 봐야 한다. 숙모라고 고개 숙이는 초등학생 조카도 이처럼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첫 명절엔 말 그대로 완전히 뻗어버렸다. 일은 사실 별 거 없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연속이다 보니 내내 긴장해있었던 탓에 뻗어버린 듯싶다. 큰 형님과 내가 나이 차이가 많다 보니 큰어머니께서도 '아고 귀여운 것~ 니가 뭘 아나'하는 마음이셨을까? 첫 명절엔 '앉아있어, 니는 할 거 없어'를 반복하시며 만류하셨다. 그리하여 두 번째 명절인 추석에 나는'이 정도면 할 수 있겠어'라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희망차게 큰 댁으로 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 큰어머니께서 들고 나오신 쌀가루 포대는 나로 하여금 TV에서나 보던 '주부 명절 증후군'을 갖도록 만들었다.
우리 시댁은 작은댁이다. 따라서 명절은 이제까지 큰 댁에서 주관해왔다. 남편 위로 중년의 사촌 형들이 계시고(나에게 아주버님) 아주버님의 엄마이신 큰 어머님이 계신다. 연세는 거의 우리 할머니 뻘이신데, 첫 명절엔 정신없어 몰랐던 심상치 않은 큰어머니의 권력의 아우라가... 두 번째 명절에서야 느껴졌다.
처음에 큰어머니께서 송편을 만든다고 하실 때는 농담인 줄 알았다. 아니면 그냥 간단히 먹을만한 적은 양인 줄로 기대했다. 요즘 송편 만들어먹는 집이 어디 있나. 물론 나도 어린 시절 송편을 만들어봤다. 할머니 살아계실 적에 초등학교 4학년 즈음이었던가. 그때가 아마 마지막 송편 만들기의 추억이었던 듯싶다. 눈사람 모양, 자동차 모양으로 송편을 만들고, 찌면서 송편이 터져서 웃고... 했던 재미난 추억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건 몇십 년 전 일이다. 무엇보다 시어머니와 큰 형님께서도 송편 만들기를 반대하셨다.
"아이고, 형님~
요즘 송편 만들어먹는 집이 어딨어요?
야들도 다 직장 다니고 힘든데
고마 사 먹읍시다."
멋진 우리 시어머니, 그리고 연달은 큰 형님의 어택.
"어머니~
이 동네에 송편 빚는 집
우리 집 밖에 없어요!
요즘은
전도 주문해서 먹는다는데~"
하지만 철통 같은 큰어머니의 쉴드.
"일 년에 한 번 있는 걸 가지고 뭐~ 힘들다고. 그라믄 안돼~ 엉?"
막내인 내가 무슨 힘이 있으랴. (털썩...) 옛 추억 떠올리며 한 번 빚어보자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창고에 더 많은 쌀가루와 앙꼬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오전 일찍부터 시작했으니 점심 먹을 때쯤이면 끝나겠지 했던 음식 만들기는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서야 마무리가 됐다. 어깨와 허리가 너무 아프고 고단함이 밀려왔다. 결혼 전, 음식 만드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남편은, 일의 중차대함을 모르고 있다가 그날 저녁, 나의 스트레스를 한 바가지 뒤집어쓰게 되었다.
이렇게 맞은 올 추석. 설마 올해는 아니겠지. 두려운 반 희망 반의 마음으로 향한 큰 댁에서 나는 또 한 번의 쌀가루 포대를 목격하고야 말았다. 사실 내가 희망을 가졌던 것은 작년에 큰 형님과 시어머니의 거듭된 요청으로 큰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마. 알았다.
그라믄 내년에는 사묵자."
그때 나는 속으로 외쳤다. '진짜죠? 진짜죠?' 하지만 큰어머니께는 들리지 않았나 보다. 여전히 쌀포대는 준비되어있었고 큰 형님께서는 특히나 화가 많이 나 보이셨다. 시어머니도 형님도 나도 원하지 않는 송편 만들기이지만 큰어머니께는 일 년에 단 한번, 자녀들에게 먹이는 정이 담긴 음식이었다. 시어머니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제까지 추석에 단 한 번도 송편 만들기를 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한다. 이에 큰 형님은 감정이 고조되시기에 이르렀다.
"작년에도 사 먹는다 하셨잖아요, 어머니~"
"뭘 사 먹어! 왜 사 먹어! 만들면 되는데!"
작은집 막내며느리인 내가 무슨 힘이 있으랴. 눈치만 보고 있다가 결국엔 올해도 송편을 빚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쌀가루 양이 지난해보다 줄었고 남편과 아주버님, 조카가 함께해서 송편도 빨리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한 음식 만들기는 그래서 늦은 오후 즈음에는 마무리될 수 있었다.
내가 크게 무거운 생각 없이 음식을 다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큰 형님 때문이었다. 결혼생활이 족히 20년은 되어 보이는 큰 형님은 시어머니 말대로라면 해마다 이렇게 송편을 거의 혼자 빚어오셨고, 작은 형님의 부재(해외 살이)로 오롯이 혼자 이 일을 감당해오셨다. 집안 일도 이것이 그나마 간략화한 것이라 하니 그간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형님의 직장생활도 쉽지 않아 보이시던데 얼마나 고단하셨을까 하는 생각에 나라도 작은 힘이 되어드리고 싶어 열심히 만들었다.
큰 댁에서 내려올 때 남편이 큰어머니께 내년에 맛있는 송편 사 올 테니 절대 만드시지 말라고 다짐을 받았다. 큰어머니께서는 알겠다고 하셨지만 내년에도 또 송편을 빚을지 모르는 일이다. 큰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큰어머니 입장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당신 입장에서는 평생 해오신 일이고, 말씀 그대로 일 년에 한 번 있는 일인데 무엇이 힘드냐 하실 수 있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며 송편 모양 이상하다, 저게 뭐냐 등의 핀잔으로 웃음 짓게 되기도 한다. 그러한 모습이 보고 싶으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올 추석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인천 공항에 몰린 인파가 여름 성수기에 맞먹는다 하니, 명절 연휴를 휴식으로 즐기려는 경향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연휴를 이렇게 보내게 된 데에는 예전과 생활양식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특히나 워킹맘인 여성들은 평소에는 직장인으로서 치열한 삶을 살다가 명절에는 전통으로 회귀하여 부엌에서 노동을 하고 있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가 떨어진다'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이제 옛말이라고 웃어넘길 수 있듯이, 돈을 벌고 가사를 하는데에 남녀의 구분이 없어진 지 오래다.
나는 아직 추석 해외여행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갈 수 있다면 당연히 가겠지만(^^) 가정에 분란을 일으키면서 나의 안락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일과 가정을 모두 병행해야 하는 여성들을 위해 남편들은 식사 후 상 치우기라던지, 설거지라던지 명절 일에 대한 간소화는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족이 모이는 일이 몇 사람의 희생을 발판으로 한다면 명절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시어머니도 큰 형님도 남편의 말에 찬성했으니 내년엔 직접 만드는 송편은 조금만 하고 가족이 나눠 먹을 송편은 사 먹을 수 있다면 좋겠다. 송편을 조금만 만들면 더 화목한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을까. 양이 지금 보다 더 줄고 남편들과 조카들까지 합세한다면 정말 이제 송편은 금방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올해는 그래도 남자들이 설거지를 했고, 송편도 함께 만들었다. 큰어머니께서 '고추 떨어진다'고 걱정하셨지만 그런 불상사는 없었다. ^_^ㅋㅋㅋ 나와 큰 형님을 안쓰러워하시며 일을 덜어주려 애써주시는 시어머니께 감사하고 마음의 배려를 행동으로 옮기는 남편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