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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희씨 Aug 14. 2016

한여름, 느릿느릿 산책하기

초코와 함께 오후 4시 반에서 7시까지

1. 산책하기 어려운 계절

 태양이 '작열'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계절이다. 평소 추위에 약하고 더위에 강한 체질이라, 여름을 힘들게 보낸 기억이 거의 없는데 이번 여름에는 '덥다 정말 덥다'라는 말이 내 입에서 수차례 튀어나온다. '지금 여기서 나만 덥니?'라는 질문도 몇 번은 했던 듯싶다.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하면 항상 엄마에게 카톡이 네댓 개 와있다. 아침마다 도립공원 산에 올라 일출을 보는 엄마는, 함께 등산하시는 분들과 익살스러운 사진을 찍어 보내신다. 덕분에 종종 '풋'하고 작은 미소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사실 직장인이 매일 새벽, 잠자리를 박차고 운동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대학생 시절, 다이어트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나 역시 매일 새벽 산을 탄 적이 있었다. 어떤 날은 몸이 가벼워 쉽게 일어났지만, 대부분의 날들은 '더 자고 싶어.........'를 애써 뿌리치며 운동화 끈을 동여매었다. 엄마가 산이 좋아서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라기보다는 노후의 '건강'을 위한 '의지'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어떤 이유로든 나와 다를 바 없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엄마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산을 오르는 모습은 ... 솔. 직. 히. 존경할만하다. 그래서 엄마가 보낸 사진들을 보면 '조금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이 쉽게 날아가버리기도 한다.

 엄마처럼 새벽에 나가면 여름 산책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조금 덥기는 하겠지만 산 아래에 있는 곳들은 아침저녁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하지만 내 일의 특성상 '새벽같이' 일어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게 미루다 보니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광합성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조언이 내 마음에 짐이 되기 시작했다.


매일 새벽,
카톡으로 배달되는 일출 사진

오늘 아침, 엄마가 보내준 일출 사진.
또 다른 날, 엄마표 일출사진.



2. 꼭 아침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늘이 있잖아.

 주말 오후, 잡다한 집안일을 끝내 놓고 집에서 빈둥거리다, 마음의 짐과 같던 산책을 도모해보기로 했다. 12시에서 2시 사이만 피하면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았고, 그늘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봤다. 가족은 모두 타지에 일정이 있어 떠난 상태라 초코와 둘이 오붓한 산책을 실행했다. 초코를 위해서도 산책은 꼭 필요했다. 시원한 물, 초코 물통, 배변 봉투, 그리고 추억을 남길 셀카봉을 들고 오후 4시 반쯤 초코와 집을 나섰다.

 

덥다 더워!



시간에 쫓기지 않아 좋았다.


 일단 첫 번째 행선지는 동네 공원이었다. 강아지들에게는 자신의 영역과 가까운 곳을 탐색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일단 집 밖으로 나오면 1차적으로 초코와 걷는 코스가 고정화되어있는 편이다. 늘 배변하는 장소에서 초코도 배변을 해서 그 이후에도 안정적인 산책이 이루어진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한껏 혀를 내밀고 헥헥거리는 모습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중간중간 물을 먹이고 그늘을 찾아 걸으니 초코도 걸을만하다는 표정이었다. 무엇보다 시간에 쫓기지 않아서 좋았다. 초코 산책은 가족이 돌아가면서 하지만, 최근엔 아빠가 거의 전담하게 되셨고 내가 시키는 경우에는 대부분 출근 전 오전 시간인지라 다급한 마음으로 동네 산책을 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러한 시간의 제한이 없으니 마음이 편안했다.

 

옆 동네 생태공원. 강아지 목줄과 배변 치우기는 필수!

 

 두 번째 행선지는 가까운 옆동네 생태공원으로 정했다. 태양을 피할 곳이 적다는 것이 단점이긴 했지만 동네 산책을 마치고 나니 오후 5시가 넘어서 시도해보기로 했다. 중간중간에 앉아서 쉴 수 있는 정자나 그늘이 있어서 괜찮을 것 같았다. 초코가 자주 오던 장소이기도 하고, 동네 산책만으로는 나도 성에 차지를 않았다. (바른 썬크림이 아깝다는..)


 

생태공원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푸릇푸릇한 모습.

 


한여름의 자연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여름이 더워서 힘들지만 여름이라 좋은 점은 녹색이 사방에 가득하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사계절, 마음만 먹으면 사실, 어디서든 '녹색'을 만날 수 있지만 여름빛을 받은 녹색은 다른 계절의 그것들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뭐라고 분별해 말하기는 어렵지만 더욱 생기가 있고, 강하며, 여름이라는 계절과 어우러져 뿜어내는 독특한 향도 있다. 말 그대로 자연, 자연스럽다.  

 공원을 한 바퀴를 돌고 공원 한가운데 있는 정자에 앉아 오랫동안 쉬었다. 온기라 하기에는 뜨거운, '열기'를 품은 바람이었지만 풀내음을 담고 있어 기분이 좋아졌다. 도시 생활에 파묻혀 잘 귀 기울이지 않는 벌레 소리도 들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의 움직임도 보고, 이 더위에 호수 위 오리 가족이(오리인지 아닌지 정확하지 않지만)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아 그래서 '생태공원'인가 하는 생각도 하며 오직 내 눈에 앞에 보이는 자연 외에는 다른 생각할 것 없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런 게 힐링이지. 쉬는 동안 초코는 힘든 건지, 아니면 내가 좋은 건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중간중간 사진을 찍는 동안에 초코가 힘들어할까 봐 계속 신경 쓰였는데 생각보다 의젓하게 잘 기다려주었다.




 사람 없는 한적한 공원이라 좋았다


 한여름 느릿느릿 산책의 좋았던 두 번째 이유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 사실 이 생태공원은 생태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에는 볼품없는 호수였다. 하지만 주변에 상가도 없고 아파트도 없고 가로등도 없어서 밤이 되면 '별'을 보기에 정말 좋은 곳이었다. 고민이 많던 20대 시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여기 호수까지 와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도시답지 않게 별이 쏟아질 듯 가득 찬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그 이후에 별 보는 재미로 자주 걸어왔었는데 이곳이 '생태공원'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되면서 그러한 즐거움이 사라져 버렸다. 올 때마다 사람이 많은 편이었고 상가 불빛 때문에 밤하늘도 제대로 즐길 수도 없게 되었다. 가을밤 한때는 부딪혀 걸을 수 없는 정도로 사람이 많기도 했다. 한적한 공원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아쉬움이 컸었다.


탁월한 선택! 공원에 '아무도' 없다.

그런데 텅~~ 비어 있는 공원을 보니 '정말 덥긴 더운가 보다'라는 생각도 했지만 뭔지 모를 쾌감이 느껴졌다. 이곳이 나의 개인 정원인양 누빌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유후!)


정기적으로 이런 걸 하나보다.

 

 초저녁에 내가 주로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음악회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이러한 행사를 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오늘 음악회가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예술이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행사는 꾸준히 이루어졌으면 하는 응원을 담아 사진을 찍어보았다.


 

여름답다.


연꽃인가. 실제로는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려서 더욱 아름다웠다.


살랑 살랑.

 

3. 초코, 한여름 산책, 성공적.

 오늘 산책을 통해서 자연 속에서 걷는 것이 사람의 몸에 좋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격렬한 운동을 한 것이 아닌데도 몸이 에너지가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산책을 마치고 나니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의지도 생겼다. 그리고 실제로 '나중에 해야지'하고 미루었던 바닥 청소를 오늘 저녁에 싹 해치웠다..!

 정말 더운 날씨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철의 자연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것 같다. 에어컨 아래 도시생활에 에너지가 소진된 사람, 더운 날씨에 몸을 깨울 '운동'이라는 이름이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면 한여름의 늦은 오후, 느릿느릿 산책을 추천해본다. 간단한 산책만으로도 활력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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