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 moon society Aug 28. 2016

이문동의 두 얼굴

무서움.

이문동에 거주하거나 방문한 경험이 있는 외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문동의 이미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5명 중 4명이 이문동에서 ‘무서움’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우리는 이  ‘무서움’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했다. 이 무서움은 공간에서 느끼는 심리적 공포이다. 사람들이 이문동을 공포의 공간으로 느끼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다. 이 곳에서 과거 살인사건이 일어났었다는 점, 재개발 지구로 지정된 지 오래이지만 아무 진전이 없는 비교적 낙후된 동네인 점, 과거 고문이 행해지던 안기부가 있던 공간이라는 점, 풍수적으로 터가 안 좋다는 점 등등. 이 공포를 느낀 적이 있는 사람들 중 59.3%는 구체적인 이유로 ‘골목이 많아서’를 꼽았다. 심층 인터뷰를 통해 무서움을 느꼈던 골목과 관련되는 실체적 장소 세 곳을 마킹했다.



1. 외대 앞 역 옆길



외대 앞 역 근처는 다른 역 근처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보통은 역사가 지하에 위치해 일반적으로 철길에 접근할 수 없다. 역이 지상에 있는 경우에도 철길이 다른 건축물들로 막혀있어 접근하기 힘들다. 하지만 외대 앞 역은 지상으로 드러난 철길을 도보로 지나갈 수 있으며 철길 바로 옆으로 나있는 골목길을 따라 걸을 수도 있다. 철길은 이문동을 ‘역 앞’과 ‘역 뒤’ 로 나누는 기준이 된다. 이 골목길은 ‘역 앞’의 이문동 주택가의 끝자락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이 길에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다. 그 한적함과 허전함에서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무서움을 느낀다.


열차 소리도 이 곳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낮의 열차 소리는 북적북적한 사람들의 소리나 다른 일상의 소리에 묻힌다. 하지만 밤의 열차 소리는 허전한 이 골목을 채우는 거의 유일한 소리이다. 절대적 데시벨은 낮과 밤이 같지만 무서운 분위기와 어우러진 밤의 소리는 좀 더 크게 느껴지며 골목의 스산함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2. 후문 골목



후문은 흔히들 대학로로 떠올리는 신촌처럼 외대, 경희대, 한예종 세 개의 대학교가 서로 인접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학생들을 위한 주거 공간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이렇게 촘촘한 건물들은 자연스럽게 많은 골목을 만든다. 하지만 큰길 위주로만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어 골목간의 밝기 차이가 심각하고 빛이 닿지 않는 골목에는 사각지대가 만들어진다. 어둠 속의 빛은 보행자로 하여금 안심할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존재인데 어두운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무서움을 느끼고 지나다니기를 주저하고 있다. 그나마 몇 개 있는 가로등은 대부분 광량이 약하고 희미한 주황색 불빛을 내뿜고 있어 이곳을 더욱 음산하게 하고 더욱 불안감을 일으킨다.


3. 외대에서 회기로 걸어가는 길



 외대와 회기를 잇는 길은 이문동에서 볼 수 있는 길 중 가장 대로이다. 회기와 외대 사이의 '경계'라는 특성 때문에 낮에는 차와 사람들의 왕래가 많고 정돈도 잘 되어 있다. 하지만 이 거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자로 난 대로 사이사이에 숨겨진 수많은 골목들을 발견할 수 있다. 대로 특성상 주택가가 없고 상점들이 많은데 양 옆의 골목들은 비교적 한적하다. 이렇게 숨어있는 골목들 때문인지 이 길은 밤이 되면 낮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밤이 되면 상점들이 문을 닫고 거리에는 간간히 차들만 지나갈 뿐 길은 적막에 잠긴다. 대로의 조용함과 듬성듬성 설치된 가로등은 밤에 혼자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무서움을 느끼게 한다.


 또,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골목뿐만 아니라 큰 길가에도 늘어서 있는 모텔들을 마주칠 수 있다. 낮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칠 수 있지만, 밤이 되면 특유의 색을 내며 빛나는 간판들이 켜지고 그에 대비되는 어둑한 골목들이 스산한 느낌을 준다. 이 골목과 도로를 밝히는 거의 유일한 빛은 형형색색의 모텔 조명이다. 이는 늦은 밤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수상함과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골목의 이면


경희대, 외대, 한예종 세 개의 대학이 인접해 있는 대학로이자 주민들의 주거 공간인 무서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문동. 왜 우리는 유난히 '이문동'의 골목길에서 무서움을 느꼈을까? 처음 집과 고향이 아닌 곳으로 떠나온 사람들이 느끼는 ‘낯섦’이 이문동을 유난히 무서운 곳으로 느껴지게끔 만드는 게 아닐까? 우리는 이 ‘낯섦’을 뒤집어 보는 데 집중했다.


한적한 낯선 골목은 무서움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하지만 낯섦을 걷어 낸 후의 한적함은 고요함이다. 이러한 고요함의 공간은 생각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색의 발길을 끄는 곳이 될 수도 있다. 또, 복잡한 곳을 피해 애완동물과 산책하고 싶은 사람들, 사람들 눈을 피해 데이트하고 싶은 연인들에게는 최고의 산책길이 될 수 있다. 적막을 깨는 지하철 소리 또한 공간의 유일한 음악으로써 감성을 자극하는 소리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적막하던 공간에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여보면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사는 소리가 들려온다. 무서웠던 골목길은 누군가에게는 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이문동은 많은 대학생들이 모인 만큼 청춘 연인들이 많다. 이들은 그들만의 시간, 그리고 공간이 필요하다. 캠퍼스 안은 친구들 선후배들의 시선이 너무 많다. 단둘만이 공유하고 추억을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찾는다. 사각지대가 많이 형성되어 있는 경희대 후문 골목은 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연인들의 훌륭한 데이트 코스가 될 수 있다. 또한 밝지 않은 주황색 불빛은 연인들에게 따뜻하고 포근한 불빛의 느낌을 줄 수 있다.

 왜 많은 사람들은 모텔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까? 아마도 일상생활과 모텔 간의 접점을 찾지 못한 '낯섦'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낯섦과 어색함을 지우고 모텔을 바라본다면 모텔은 '잘 수 있는 공간' 그 자체가 된다. 이러한 모텔은 이문동에 거주하진 않지만 늦게까지 머무르는 사람들, 쉴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반가운 존재가 될 수 있다. 듬성듬성한 가로등과, 한적 해지는 밤의 길가도 이 모텔을 이용하는 손님들에게 편안한 쉴 곳 또는 사랑의 공간을 제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친근함


이문동의 문화지도를 마킹할 때 조금은 다른 시선에서 다가가 보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낯설다. 이 처음의 낯섦은 ‘알 수 없음’의 모호함에서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문동은 학교가 있고 사람이 모이는 곳이고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다. 그리고 사람이 사는 이 모든 골목에는 그마다의 사연이 있고 스토리가 있다. 이방인에겐 무서움의 공간이 될 수도 있지만 주거민에게는 삶의 공간이다. 앞서 언급했던 이문동의 이미지에 관한 설문에서 비교적 이문동에서 오래 거주한 참여자들은 이문동의 이미지를 친근함이라고 답했다. 낯섦이 걷어진 공간은 친근함으로 채워진다. 낯섦은 잠깐이지만, 친근함은 오래도록 지속된다. 무서움과 친근함. 이것이 이문동의 이면.




ⓒ 이채은 조신웅 정한나 허선경


문화지도에서 더 많은 장소를 찾아보세요.


이문동 문화지도 : http://alertsky3.wixsite.com/imun

작가의 이전글 이문동 뉴커머를 위한 따뜻한 만두 맛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