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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Feb 02. 2022

시인을 이름으로 살고 있다.

벌써 삼십 년째

지금으로 부터 삼십 년 전 봄날 엄마를 나를 낳았고, 

엄마와 함께 나를 만들었던 아빠는 나에게 '시인'이라는 이름과 '시인'이라는 제목의 시를 선물했다. 


시인 


돌담뜰 양지 나라 

강아지 똥밭엔 민들레 몇줄기 들떠웃고 

도랑가 버들강아지 솜털엔 

생각이 설익은 봄이 막 묻어난다. 


풋도토리 같은 아가를 낳고 

이름을 '시인'이라 붙였다. 

아가야 너는 이미... 부드럽고 

평화롭게 잠든 너의 얼굴은 

고단한 나를 위로하는 훌륭한 시어이다. 


난 요량도 없이 이젠 많이 닳고 굳어져 

아가 같은 웃음도 언어도 몸짓도 

잃어버린 지금... 연한

아가에게서 흠씬 향토내음을 맡는다. 


비록 한세상 시한줄기 그리지 못한다해도 

삶은 이미 네게 시로 남는다 아가야. 


1992. 3. 24


빨래 잘마르는 봄날 아빠가


내 나이 서른 하나, 이제 도토리 정도는 된 것 같은데, 

시로 남는 삶은 산다는 건 어떤 걸까. 

내 삶은 과연 내게 어떤 시를 남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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