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샘 Jun 26. 2016

꽃이 핀 남자

그 남자의 몸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초식남의 환타지.

본 작품은 박성원 작가님의 위 작품을 보고 받은 영감을 소설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남진 #1    


21세기 들어 남자들을 부르는 호칭 앞에는 단어 하나가 붙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꽃’이었다. 꽃미남, 꽃소년, 꽃중년. 남자들은 그 단어에 부응하듯 하나씩 꽃이 들어간 물건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플라워 아이템, 거리 위의 꽃이 되다]    

포털의 패션 관련 기사에는 그에 대한 언급이 끊이지 않았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평범한 외모의 소년, 청년, 아저씨까지 꽃과 관련된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었다. 바지 정중앙에 다소 도발적으로 그려진 커다란 꽃무늬 페인팅도, 오히려 유행이라며 매주 소개하고 있었으니까.    

“이게 뭐야?”    

나로 말하자면, 유행에 휩쓸리는 타입은 아니었다. 과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 라는 것이 나의 신조였다. 여느 때처럼 꽃 모양의 심플한 코르사주 하나만을 고르려던 내가 발견한 것은 꽃이었다. 진짜, 꽃. 작은 탁구공만 한 크기에, 양귀비 같이 매혹적인 자태를 한 꽃 한 송이가 성기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기사를 열심히 봤더니 눈에 뭐가 쓰였나, 나는 고개를 흔들고 다시 그곳을 보았다. 실수라도 꽃을 꽂아놓거나 떨어뜨릴 장소가 아니었지만, 우선 꽃을 한 번 툭, 털어보았다. 꽃은 탄성을 가진 물체처럼 내 손길에 반응하여 잠시 수그러들었다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     

‘무슨 미친 짓을 한 거지.’    

내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생각, ‘내 필름!’. 예전부터 나는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도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필름이 끊긴 상태일 때가 가끔 있었다. 혹시 어제 또 이상한 짓을 하고 필름 끊겼나?    

나는 재빨리 어제의 기억을 상기했다. 퇴근길에 중환자실에 계시는 외숙모 병문안을 갔다 와서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샀고, (정확히 한 캔이다.) 그 앞 파라솔에서 마셨다. 학원이 끝났는지 중고생들이 건물에서 우르르 몰려나와 컵라면을 먹기 시작했으므로 나는 자리를 옮겼다. 주택가에서 남자 혼자 맥주캔을 들고 다니며 먹는 것은 별로 보기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얼마 남지 않은 맥주를 길거리 담벼락 후미진 곳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그 담벼락 위에 정신없이 얽힌 덩굴에 핀, 꽃을 보았다. 얼핏 지금 내 성기에 핀 꽃과 비슷한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어둠 속의 기억이라 명확하지는 않다. 그리고 집에 왔다. 내 기억은 그게 다다. 혹시, 그 꽃을 꺾어 팬티 속에 넣는 미친 짓을 했던가?     

나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꽃을 살피기 시작했다. 수북한 털을 헤치고 내가 발견한 것은 꽃의 줄기가 나의 살 속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 돼. 나는 손톱 거스러미를 뜯어내기 전, 손으로 만져보며 떼어내기 용이하게 하기 위한 사전 작업을 하듯 뿌리와 줄기 사이 경계에 얕게 형성되어 투명하게 속이 보이는 살들을 살살 밀어내 보았다.    

“악!”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짜릿한 진동 같은 통증에 나는 순간적으로 자리에 주저앉으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미친, 꽃 바이러스야?”    

꽃이 인간을 뿌리 삼아 자랄 수 있다니 무슨 영화에나 나올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런 영화에서는 이런 기생 식물은 인간의 정기를 다 흡수해서 인간을 싹 말려 죽이고는 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통증을 예상하면서도 줄기를 힘껏 잡아당겼다. 그리고 또 똑같이, 아니 훨씬 큰 고통을 느끼며 비명을 내질렀다.    

“이거 함부로 뜯으면 나도 죽는 것 아냐?”    

내 하얀 말티즈, 가루가 늦어지는 산책을 재촉하려 방문을 코로 밀고 들어오다 나신의 나를 발견하고 멍멍 짖어댔다. 거울 앞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나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비슷한 색의 셔츠가 스무 벌은 걸린 나의 옷장과 깔끔하게 정리된 침대를 마구 돌아다니며 이곳저곳 킁킁 냄새를 맡았다. 그 녀석의 종착점은 나였다. 아마 가루도 ‘특이점’을 인식한 듯 내 성기 쪽으로 계속 점프를 하며 좀 더 가까이 냄새를 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너라도 해결해 봐. 이 사태를.”    

내가 말하며 침대에 앉아 가루를 무릎 위에 놓아주자 가루는 본격적으로 냄새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내가 느끼기에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지만, 인간 후각의 수십 배나 된다는 개의 후각에는 아무래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녀석은 한참이나 냄새를 맡더니, 평소의 몇 배나 격렬하게 나에게 애정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온몸을 비비고, 혀로 핥고, 작은 소리를 내며 배를 보이고. 내가 그 노력이 가상해 쓱 한 번 쓰다듬어주자 눈이 풀렸다. 나와의 평소 유대관계를 생각해도 너무 강렬한 반응이었다.    

“뭐야 이 꽃…….”    

너무 격렬한 열정을 쏟았는지 산책을 가기도 전에 녀석은 기진맥진해 있었다. 나는 반듯하게 다려진 흰 티와 팬티, 면바지를 챙겨 입고 녀석을 거실에 있는 강아지 집으로 옮겼다. 혹시나 최신 유행하는 바이러스의 한 종류일지도 모른다. 물론 듣도 보도 못했지만. 나는 스마트폰을 잡았다. 몸에서 꽃이 자란다니, 아니 이게 흔히 있는 일인가. 하지만 검색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불상에서 자란다는 우담바라니 시적으로 가슴에서 꽃이 핀다느니 하는 쓸데없는 소리만 잔뜩 쓰여 있고, 비슷한 증상은 찾을 수도 없었다.     

우선, 사건 현장을 좀 탐구해보는 게 먼저겠어. 이런 바이러스는 주로 공기감염이었지, 영화에서는. 나는 미세먼지를 대비해 사놓은 마스크까지 끼고 대문 밖을 나섰다. 어제 그 담벼락 집을 찾아 우선 같은 꽃인지 확인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어두웠고, 딱히 그 집을 눈여겨본 것이 아니었기에 동네를 두 바퀴나 돌았지만 그런 집은 찾지도 못했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애초에 꽃이 핀 집이 너무 많다는 게 첫 번째 문제였다. 여자한테 꽃 선물할 때 말고는 꽃이라는 식물에 신경 쓰는 남자는 사실 많지 않을 것이다. 꽃 모양이 패션 아이템과 프린트로 핫하다고 해도 그게 무슨 꽃인지 알고 사는 남자가 있을까? 사실 그건 색 조합과 형태의 문제지 ‘인식’의 문제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무튼 비슷해 보이는 꽃은 온 동네에 널려 있는데 하나같이 내 꽃과는 뭔가 달랐다. 이게 바이러스화 되면서 좀 변형이 된 건가? 아니, 내가 잘못짚은 건가? 혹시 중환자실에서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감염돼서 온건 아닐까?     

비뇨기과에 가야 하나,라고 나는 생각했다. 안 그래도 얼마 전 회사 건강 검진에서, 정자 운동성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 저항감인지 뭔지 비뇨기과는 방문하기 싫었는데 말이다. 바이러스건 뭐건 사실 병원에 간다는 것은 현실의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답이다. 빠른 조치가 중요하겠지. 당장 내일 조퇴를 쓰고 병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김남진 님 들어오세요.”    

좀 지나치다 싶게 하이톤의 여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남자 간호사가 흔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비뇨기과까지 여 간호사가 있다는 것은 좀 불쾌했다.  

나는 자동으로 불투명 강도가 조절되는 최신식 유리문을 지나 진료실로 들어갔다. <비뇨기과 전문의 신도윤> 최신식 병원 시설만큼 이름도 세련되었다,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젊은 의사가 데스크에 앉아 있었다.    

“무슨 증상으로 오셨습니까?”    

특이하게도 의사는 심플한 형태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여간 멋쟁이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꽃 이야기를 꺼내면 또라이나 병신 취급을 받겠구나,라고 생각한 나는 정자 운동성 이야기부터 꺼냈다.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 정자 운동성이 낮다고 나와서요…….”

“정밀 검사가 필요한 수준이라고 하던가요?”

“아니 뭐 딱히 그런 이야기는…….”

“미혼이신가요, 기혼이신가요?”

“미혼입니다.”

“혹시 결혼 계획이 있으신지요?”

“아니요.”    

여자와 데이트해 본 게 언제 적이지? 돈, 시간, 열정까지 필요한 여자라는 존재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 것은 성욕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한 삼십 대 초반쯤이었을 것이다. 그전까지는 나에게도 여자는 중요했다. 하지만 연애를 하고, 섹스를 하는 데는 시간, 열정 그리고 돈까지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취미로 즐기던 콘솔 게임과 뮤지컬, 그리고 여행과 쇼핑을 즐기는 데는 연애 특유의 소모적인 감정싸움, 눈치작전이 필요 없었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미련이랄까, 강박이랄까를 떨쳐내고 나자 삶은 더욱 만족스러워졌다. 그 후로 내 삶에 ‘동료’ 이상의 여자가 끼어든 적은 없었다.    

“정 불안하시면 한 번 더 검사를 해보도록 하죠.”    

의사가 말했다. 음, 별로 걱정되지는 않는데. 어차피 결혼이랑 나랑은 거의 무관하다고 봐도 될 정도의 상황인데라고 생각했지만 입 밖에 내지는 않고 그저 침만 꿀꺽 삼켰다. 꽃 이야기는 도대체 언제 하지,라고 생각하며. 그 사이 정간호사, 하며 의사는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는 나를 모니터가 있는 조그만 방으로 안내하고 간단한 요령을 설명했다.    

“고맙습니다.”

“친절한 분이시네요. 대부분 눈 맞추기도 민망해하시던데.”    

정간호사가 대답했다. 제복 페티시를 가장 자극한다는 간호사 복장, 게다가 가슴도 엉덩이도 컸지만 영 감흥이 없었다. 그저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한 느낌. 그런 내 특유의 담백한 태도에 여자들은 호감을 보이고는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호감도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저 미소를 조금 지어 보이는 것으로 그녀가 보여준 호의에 화답했다.    

후.    

꽃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하긴 이걸 처리한답시고 여기까지 왔는데 갑자기 뿅 하고 사라져 있다면 그것도 기가 막힌 일이긴 하겠지만, 어쨌든 꽃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여전히 붉고 여전히 싱싱해서 탄성이 느껴질 정도로. 꽃은 차치하고 우선 정액을 뽑아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열심히 손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할 때마다 흔들거리는 꽃잎이 거슬렸다. 집에서 안정되게 해도 모자랄 판에 생전 와 본 적 없는 낯선 장소에서 하려니 잘 되지는 않았다. 한참 손 운동을 하다가 욕이 나왔다. 욕망이라는 게 아예 생기지를 않는 것이다. 아예 이런 적은 거의 없었는데.     

“죄송합니다. 잠깐 담배 좀…….”    

테라스로 나와 끊는다고 결심한 이후 자제심의 ‘상징’으로만 넣어두었던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빨았다. 술자리를 제외하고 담배를 핀 것은 몇 달 만인지. 결심을 깬 것이 억울해서 헤아려 보려고 했지만 기억도 희미했다. 담배를 피운다고 해결되는 건 없었지만 속은 한결 편해졌다.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가 다시 일을 시작했고 한참 만에 겨우 쥐어 짜내듯 성공했다.     

“검사 결과는 삼일 뒤에 나옵니다.”

다시 대면한 의사가 말했다.    

“아, 네.”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셨는데 혹시 발기 부전 같은 증상도 있으신가요?”

나는 순간적인 수치심에 이를 꽉 물었지만 곧 본질적인 고민이 들었다. 아, 꽃 이야기를 해야 하나. 어쩌지.     

“최근에, 문제가 좀 생긴 것 같습니다.”

결국 나는 실토했다.    

“특별한 사건이라도 있었는지요?”

“아, 그게.”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내 눈에 의사 가운 안에 화려하게 받쳐 입은 꽃 모양 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꽃 모양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하하, 몇 년 전부터 대유행이니까요. 의사라고 센스를 포기할 수는 없죠.”

“실례지만 브랜드가?”

“시** 옴므 신상입니다. 사실 저도 여쭤보고 싶었는데, 그 코사지는 어디 제품인가요?”

“아, 이번에 론칭한 브랜드인데 엘**라고 합니다.”

“그렇군요.”

“근데, 의사 선생님. 이 꽃이 말입니다. 제, 그곳에…….”

내가 말을 흐리자 의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게 염증의 한 종류인지도 모르겠는데 그곳이 좀…….”

“아, 알겠습니다. 자세히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잠시 이쪽으로.”

의사는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진료실 한쪽에 위치한 침대로 나를 안내하더니 바지를 벗고 환부를 보이라고 말했다.     

“이게…….”    

의사는 말을 잇지 못하고 내 성기를 관찰했다.    

“이 꽃은 색과 모양이 독특하군요.”    

‘여기에 꽃이 있다니!’라는 반응도 아니고, ‘이건 도대체 뭡니까?’라는 반응도 아닌, 이 꽃은 색과 모양이 독특하다는 발언이라니. 역시, 의사라 이런 사례를 본 적 있는 것이 틀림없다. 갑자기 의사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샘솟는 것을 느꼈다.    

“의학적으로 보고 된 사례는 모르겠지만…….”    

저도, 라며 모자를 벗은 의사의 머리 위에는 하얗고 가녀린 꽃이 한 송이 피어 있었다. 정수리를 슬쩍 비껴 난 가장자리. 워낙 꽃미남에 가까운 스타일의 얼굴이라 그런지 마치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듯 꽃과 의사는 위화감이 없었다.    

“아니, 그게 장식이 아니고 정말 머리에 난 꽃입니까?”    

내 성기의 꽃이 그러한 것처럼, 그의 머리 위의 꽃도 너무 비현실적이어서인지 아무리 봐도 일부로 꽂아놓은 장식처럼 보였다.    

“네, 벌써 좀 되었습니다.”

“혹시 비슷한 사례를 가진 환자를 접한 적이 있으신지요?”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이게 있으면 의학적으로나 위생적으로나 문제가 있나요? 선생님은 어떠셨습니까? 생활하는데 지장은 없으신가요? 모자는 왜 쓰고 계신 거였나요?”

질문이 폭발적으로 쏟아지자 의사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했다.    

“저도 같은 증상인 분은 처음 봐서 조금 있다 퇴근 후 이야기를 조금 나누고 싶은데요. 혹시 괜찮으십니까?”

“좋습니다.”

“그럼 6시쯤 퇴근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도윤 #1    

-대출금에 대한 상환액 1,000만 원의 기한이 오늘까지입니다.    

아침부터 핸드폰을 울리는 ‘거지새끼야 내 돈 언제 갚을래’ 문자에 폰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생겼지만 간신히 참았다. 신문에 가끔 나오는 ‘빚에 쪼들리는 의사’, ‘’ 파산하는 의사들‘ 이런 기사 주인공 새끼들은 도대체 어떤 병신 머저리들인가 했더니, 그게 바로 내가 될 줄은 상상이나 했을까? 결혼만 잘 진행되었어도 지금 이 짝은 안 났을 텐데. 어찌 되었던 한 푼이라도 더 벌려면 좋든 싫든 출근을 해야 한다.      

거울 앞에서 모자를 쓰던 나는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다 이 꽃 때문이다. 내 신세가 이렇게 된 건. 한껏 우아하게 핀 꽃을 거울로 비춰보다가 모자로 푹 가려버리고는 출근길에 나섰다. 아, 돈은 어떻게 하지. 돈 생각을 하니 또 머리가 지끈거렸다.    

환자라도 모여들기를 기대했건만 병원은 여전히 한산했다. 개원한 지 얼마 안 된 병원이라 입소문도 나기 전일 테지. 나는 스스로 자위하며 정간호사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앉았다. 컴퓨터를 켜고 주식 시황을 봤다. 투자한 종목들을 하나같이 비슷비슷한 곳에서 깔짝대며 올랐다 내렸다를 번복하고 있거나 원금 보전도 못할 만큼 폭락했다. 경제가 어렵다더니 시장 상황도 엉망이군. 어떤 종목을 사야 돈을 벌까, 하며 종목을 살펴보는데 환자가 왔다는 메시지가 떴다.    

“어서 오세요. 무슨 증상으로 오셨습니까?”    

환자가 나를 살피는 눈길이 느껴졌다. 남자에게 성기와 관련된 이야기는 예민하고 치명적인 결점이라 상대방이 믿을만한 사람인지 본능적으로 살피려는 습성이 있다. 환자는 머뭇거리더니 정자 운동성 이야기를 꺼냈고 나는 검사실로 그를 보냈다.     

“돈도 안 되는 환자가 계속 오네.”

빨리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꽤나 시간이 걸려서 내 앞에 나타난 환자는 시간이 걸린 이유를 묻자 발끈하는가 싶더니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결과를 보여주었다.     

꽃.    

두 번째 꽃.    

아, 내가 얼마나 이것을 기다렸던가.    

그의 성기에서 핀 꽃 한 송이를 보자 꿈인지 생시인지 정신이 안 들 정도로 머리가 아득해졌다. 다시 이것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지라 더더욱. 하, 이놈을 어떻게 꼬시지? 짧은 감탄을 마치고 나는 머리를 굴렸다. 완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굴까? 아니다, 그럼 놈은 더 나은 진료를 받기 위해서 다른 병원으로 가거나 대학병원으로 튈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 우선 내 꽃을 보여주면서 경계를 풀고 ‘같은 증상을 가진 자’로서의 동질감을 형성하는 게 낫겠다. 판단을 마친 나는 그에게 내 꽃을 보여주었다.       

“이게 있으면 의학적으로나 위생적으로나 문제가 있나요? 선생님은 어떠셨습니까? 생활하는데 지장은 없으신가요? 모자는 왜 쓰고 계신 거였나요?”

그의 질문이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저도 같은 증상인 분은 처음 봐서 조금 있다 퇴근 후 이야기를 조금 나누고 싶은데요. 혹시 괜찮으십니까?”

“좋습니다.”

“그럼 6시쯤 퇴근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시간 끌기. 그에게 어떤 행동을 취할지 생각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그를 보내고 오늘은 사정이 있어 병원 문을 좀 빨리 닫는 것이 좋겠다며 정간호사를 퇴근시켰다. 나는 컴퓨터의 비밀 폴더를 열고 생각에 잠겼다.    

첫 번째 꽃.     

환자의 환부에서 그것을 보았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말로 형언할 수 없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질병, 혹은 축복.    

혹시나 새로운 형태의 종양이거나 바이러스인 줄 알고 바짝 긴장해 환자는 당장 입원 조치되었다. 아직 2년 차 레지던트인 내가 그의 주 담당이 되었는데 간단한 검사 결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무정자증 이외에 몸의 이상은 없는 상태였다.     

“선생님, 별 이상도 없다면서 왜 퇴원은 안 시켜주나요?”

“그게…… 혹시 잠복기라는 게 있을 수도 있다며 좀 더 지켜보자는 의견이 있어서요. 워낙 특이 증상이다 보니. CT나 MRI도 좀 더 자세한 분석도 필요하다고 보고요.”

내 첫 번째 꽃 환자. 그의 이름은 ‘서도승’이었는데 30대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돌처럼 곱상하고 어찌 보면 비리비리하게 생긴 외모에 키가 160 초반대로 작았다. 외모가 받쳐준대도 무정자증에(물론 이건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워낙 키가 작아 인기는 별로 없을 것 같았는데, 늘 병원 여기저기서 간호사들이나 다른 환자들 또는 의사들까지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인기가 꽤나 좋으시군요.”

“아, 아닙니다. 병원이 워낙 무료한 곳이다 보니 그런 가 봐요.”

정량적인 평가는 돼도 정성적인 관찰이 잘 안 되는 곳이 병원이라는 곳의 특징이다. 인간을 기계로 보고 수량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검사 도구들은 널리고 깔렸지만 정작 그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는 절대로 표현될 수 없는 곳.    

‘그런 것까지 생각하려면 정신과에나 가!’

라고 선배들에게 핀잔을 들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의 행동을 보자 문득 그는 이런 검사가 아닌 관찰이 필요한 환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들어오기 전까지도 이렇게 인기가 좋으셨습니까?”

“아,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하고 잘 이야기를 못하는 편이었죠. 특히 여자들이랑은.”

“그랬나요?”

“뭐 서른도 훨씬 넘은 나이지만, 아무래도 남중-남고-공대-군대 출신인 건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아, 그러셨군요.”

“그리고 제가 연구직이라 사람들을 많이 만날 기회가 거의 없어서…….”

“환경 탓도 있군요.”

“그래도 이렇게 두루두루 인기가 많아 보긴 처음이긴 합니다.”

“워낙에 인물이 좋으시니, 당연한 거죠.”

“에이, 전 키가 작아서요. 선생님 같은 분이야 말로 인물 좋다는 얘기가 절로 나오시죠.”

어쨌든 나는 그 대화 이후 그의 행동을 좀 더 면밀하게 관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와의 대화를 종합해 보자면 환경의 영향을 차치하고서라도 이상할 만큼의 인기는 꽃이 핀 시점과 긴밀한 관련이 있었다.     

일주일 동안 그의 행동을 몰래 감시하며 틈틈이 작성한 메모는 다음과 같았다.    

사람들을 항상 그가 어떤 행동을 하기 전 먼저 접근한다.

남, 녀 모두에게 두루두루 인기가 많지만 여자의 비율이 8:2 정도로 월등하게 높다.    

과연 이 모든 일이 꽃과 관련이 있을까?    

“검사 결과를 여러 번 검토한 결과 종양 변형의 일종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담당교수의 분석 결과는 생각 외였다. 신경은 연결 전이지만 꽃의 뿌리로 보이는 조직이 신체 조직과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상종양’이라는 판정을 내린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죠?”

“간단한 절제술을 실시합니다. 사진을 보시면 꽃의 뿌리로 보이는 곳은 신체 조직과 연결이 되어 있지만…….”

나는 설명받은 대로 결과를 그에게 전했다. 우선 뿌리로 연결된 곳을 건드리면 상당한 신체 조직의 손상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으므로 조직이 줄기와 꽃으로 이어지기 전 그것을 절제해야 한다는 게 교수의 의견이었다. 혹시나 신경이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었으므로 간단한 마취 후 꽃 절제술을 실시했다. 그래 봤자 끝이 날카로운 메스로 줄기 끝을 쓱 잘라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피도 나지 않았고 그렇다고 식물의 진액이 나오지도 않았다. 꽃은 연구를 위해 연구시설로 옮겼지만 싱거울 정도로 결과는 간단히 나왔다. ‘일반 꽃의 조직과 99.9프로 동일’     

“간단한 해프닝으로 퇴원하시게 되었네요.”

“하하, 그러게요. 진짜 꽃이라니 저도 신기합니다.”    

“뿌리 쪽 조직이 아직 살아 있으니까 정기적으로 내원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 주, 그는 다시 똑같은 모양과 크기의 꽃이 피어난 채로 내원했다. 나는 똑같이 마취를 하고, 꽃의 줄기를 잘라냈다. 휴지통으로 버리려던 꽃을 주워 주머니에 넣은 것은 약간의 호기심 때문이었는데, 그 호기심 하나가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꿨다.    

꽃을 넣고 복도에 나가자마자 한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신도윤 선생님?”

“네, 그렇습니다만.”

“아, 저 모르세요?”

“누구신지?”

“아, 죄송. 저는 여기 의사 선생님이시면 다 저를 아시는 줄 알았어요. 우리 아빠를 아실 텐데. 제가 이렇게 철이 없어요.”    

다소 당돌하기까지 한 그녀는 병원장 딸, 이소은이었다. 꼬시기가 죽이기보다 더 힘들다는 엄청난 프라이드의 소유자. 잘생겼다 빽 좋다는 의사들이 그녀의 배경을 탐내고 우수수 대시했지만 대화 한마디 나누기도 전에 칼같이 무시당했다는 무슨 도시 전설 같은 썰을 줄줄이 끌고 다니는 악명 높은 그녀.    

“아, 못 알아 뵈었네요. 사과의 의미로 커피라도 한 잔 하실래요?”

생각해보면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분명 그렇게 말했고 그녀는 너무 쉽다 싶을 정도로 오케이를 했다.    

“선생님, 저 고민이 하나 있는데 들어주실 수 있으세요? 아, 다른 사람한테는 비밀로 하는 걸로 하고.”

커피 한 모금이 목으로 넘어가기 무섭게 소윤은 본론을 꺼냈다. 도대체 나 같은 평범한 레지한테 상담할 고민이 뭐지?    

“무슨 고민인데요?”

“의사 선생님이니까, 몸과 관련된 고민이죠.”

“하하, 저 같은 말단 레지한테 상담하셔도 시원하게 답 못 해 드립니다. 그리고 전 비뇨기과라 더 잘 모를 텐데요.”

“다리가 아파요.”

뭐 대단한 고민이라도 털어놓을 줄 알았는데 그녀가 말한 것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증상.

“어쩌다가, 혹시 넘어지셨나요?”

“네.”

“어디, 한 번 봅시다.”

무릎이 약간 붉은 것이 멍으로 발전할 것 같은 기색이 보였지만 심각한 증상은 전혀 아니었기에 나는 그대로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근데, 왜 다른 사람한테는 비밀입니까?”

“사실 그냥 말 걸 구실이 필요했어요.”

“저한테요? 왜죠?”

“그냥, 흥미로운 사람인 것 같아서.”

“네, 흥미로운 사람이죠. 제가.”

말도 안 되는 자신감으로 드립을 날렸는데 그녀가 빵 터졌다.    

“그럼 증명해봐요.”    

그 뒤로 약 1시간 동안, 나는 콜이 오는 것도 무시한 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눴다. 별 이야기를 안 해도 그녀는 잘 웃었고, 소문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심지어 우리가 이야기하는 동안 카페에 다른 사람들도 흥미가 생겼는지 주변 사람들이 몇 명 끼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했는데 다들 낯선 사람임에도 얘기가 잘 통하고 재미있었다.     

“이렇게 많은 낯선 사람이랑 재미있게 이야기해 본건 처음이에요.”

그녀가 일어서며 말했다.    

“다음번에 병원 오면 또 아는 척할게요.”

연락처를 받고 싶었지만 욕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물론 그녀의 마지막 말도 인사치레 일 수도 있고 해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그냥 보냈다. 선배들의 말에 휩쓸려 그녀에 대한 색안경을 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대화를 나눠본 결과 그녀는 그저 자존심이 조금 강한 소녀에 지나지 않았다. 어쨌든 그녀와의 대화로 관찰 사실 중 일부는, 아니 전부가 꽃의 영향일지도 모른다는 강한 확신이 생겼다. 나는 조금 더 이 꽃의 효능을 실험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남진 #2    

나는 하라는 대로 카페에 앉아 신도윤을 기다렸다. 6시가 언제 되나 했는데 머릿속이 복잡하다 보니 시간이 어느새 훌쩍 지나있었다. ‘처음 본 같은 증상인 사람’이라는 말이 그 의사에 대한 신뢰감을 와장창 무너뜨림과 동시에 굳건히 하는 이중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어느새 의사가 내 앞자리 의자를 빼고 앉았다.     

“아, 선생님.”

“편하게 도윤이라고 부르세요. 동갑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증상인지…….”

내가 말을 꺼내자 도윤은 그저 빙긋 웃었다.    

“직접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뭘요?”

나는 본능적인 보호 본능으로 내 성기 부분을 바라보았다.    

“하하, 제가 제 직업을 잠시 잊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했군요.”

도윤이 웃었다. 나는 머쓱해하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사실 같은 곳에 핀 꽃이 아니고, 모양도 달라서 저도 100%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렸다시피, 저도 저 말고 이런 분을 처음 봤고요.”

“그럼 뭘 직접 보라는 소립니까?”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도윤이 눈을 찡긋하며 어떤 신호를 보냈다.

“아, 벌써 오시네요.”    

“두 분 뭐하세요?”

카페에 앉아 있던 여자 한 명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사는 얘기 하고 있습니다. 같이 하실래요?”

도윤은 거침없이 여자에게 합석을 제안했다. 술집도 아닌 카페인데, 먼저 여자가 남자 둘이 있는 테이블에 말을 걸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금방 재미있고 흥미로워졌다. 그녀는 도윤뿐만 아니라 나와의 대화에도 적극적이었다. 아니, 나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고 하는 편이 적당한 말이겠다.    

“잠시 듣고 있었는데, 재미있어 보여서요.”

또 다른 여성이 접근했다. 자연스럽게 넷이 되어 이야기가 이어졌다.     

“비뇨기과에 오시는 분들 중 좀 특이한 증상으로 오시는 분 안계세요?”

여자 하나가 물었다. 도윤은 다양한 증상을 가진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놓았다. 나는 혹시 내 이야기를 할까 봐 불안했지만, 한편으로는 남의 이야기인양 내 이야기를 풀어놓았을 때, 여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도윤은 여러 사례들을 살살 풀다가, 약간 비현실적이여 보이는 사례들로 주제를 옮긴 뒤, 마치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 인 듯 꽃 이야기를 살짝 흘려 넣었다.    

“꽃이요? 정말요?”

여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정말인지 궁금하다부터, 어떤 모양이냐, 무슨 향기가 나느냐라는 기본적인 질문. 그리고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나왔다.    

“그분, 소개받고 싶어요. 진짜로요.”

“아니, 왜요?”

“그냥, 매력적이랄까?”

“저도요!”

여자들이 스스로 테이블로 걸어오는 것도 놀라웠는데, 꽃이 피는 남자에 대한 이 폭발적인 반응이라니. 나는 점점 더 이 꽃의 정체에 대해 의심만 생겼다.    

“어떠셨나요?”

여자들과 헤어진 뒤, 카페를 나와 도윤이 물었다.    

“좀, 놀랐달까.”

“뭐가요?”

“선생님은 원래 이렇게 가만히만 앉아계셔도 여자들이 꽃에 나비 꼬이듯이 몰려드나요?”

“그 표현 좋네요. ‘꽃에 나비 꼬이듯이’.”

“네?”

“지금 이게 나 혼자 만의 힘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하지 않습니까? 뭐 아무 배경 없이 본다 해도 여자들이 혹할만한 외모에, 말솜씨까지도 좋으시니…….”“아닙니다. 꽃의 힘입니다. 오늘은 더 배가 된 것 같군요. 같이 있다 보니.”

“무슨 소리시죠, 그게?”

“사람 많은 곳에 앉아 있기 힘드실 지경이 될 겁니다. 곧.”

“그게 이 꽃의 영향인가요?”

“꽃이 피기 전에도 이런 일이 있으셨나요?”

“아니요. 전혀.”

“그렇다면 경험론적으로 꽃이 피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는 거라고 결론 내릴 수 있죠.”

“그, 그런가요.”

“우선 좀 즐겨 보십시오. 한 다음 주쯤에 만나 경험을 더 들어봅시다. 아무래도 저는 머리에 꽃이 피었고, 남진 씨는 성기에 피었다는 차이가 있으니까. 뭔가 다른 점이 발견되겠죠.”    

도윤의 말처럼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심지어 직장에서도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여자들은 늘 먼저 접근해 왔고,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풍요 속에 빈곤이라고 했던가. 도통 이성적으로 끌리는 여자를 찾기 힘들었다. ‘인기 있는 남자’가 아닌 ‘인기 있는 여자’가 된 느낌이랄까. 그 결정적인 증거는 ‘질투’를 받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인기 있는 남자가 되면 응당 감내해야 할 것이 ‘다른 여자들의 질투’라던가 ‘다른 남자들의 질투’다. 하지만 누구도 나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보이는 이가 없었다.     

“어떠셨나요?”

도윤이 물었다. 나는 그에게 일주일간 느낀 점을 털어놓았다.    

“저도 처음엔 사람들이 모여드니까 마냥 좋은 줄 알았죠.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나도 사회생활이라는 게 있는 사람인데 낯선 사람들에게 마냥 시간을 할애할 수도 없는 일이고, 또 그런 호의를 거절하기도 어려운 일이고. 애매해지더라고요. 고객 유치라도 되면 모를까, 비뇨기과인데 꼬이는 건 여자들 뿐이고.”

도윤이 웃으며 말했다.    

“아, 사실 저도 직업상 사람들이랑 교류가 썩 필요한 직업이 아니라 약간 불편함을 느끼긴 했습니다.”

여자들이랑 대화를 나누는 것은 즐거웠지만 그 한계는 며칠 만에 왔다,라고 내가 말하자 도윤이 흠,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자를 수 있습니다.”

“네?”

“꽃말입니다.”

“이게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자세히 보면 살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선생님.”

“사실 이 꽃의 정체는 …….”

도윤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자신의 머리에 어느 날 갑자기 꽃이 피어났고, 대학병원에서 이상종양의 일종으로 진단을 받아 정기적으로 잘라내고 있었다는 이야기.    

“그럼 지금 그 꽃은요?”

“사실 전 잘라내지 않은지 좀 되었습니다.”

“왜죠?”

“특이 체질로 인한 부작용 때문이죠.”

“특이 체질?”

“켈로이드입니다.”

켈로이드란 상처 또는 흉터가 생긴 부분이 다시 재생되면서 섬유종이 과다 증식하여 생기는 덩어리로, 상처가 났을 때 그 부분이 아물면서 부풀어 오르는 형태로 모양이 형성된다. 도윤은 설명 뒤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들춰 꽃줄기와 살의 연결 부분을 눈으로 확인시켜주었다. 머리카락과 같이 가는 실로 된 줄기의 표면이 보였다. 머리카락 몇십만 가닥을 모은 듯, 줄기는 두껍고 튼튼했다. 그리고 도윤이 말한 ‘살덩어리’가 줄기를 타고 붉은 용암처럼 작게 부풀어 있었다.    

“근데 이거 이상종양이라면서요?”

“못 자르는 대신 일주일에 한 번씩 검사하고 있습니다. 혹시 악성으로 발전할 수도 있어서.”

“그럼 저도 혹시 위험하지 않을까요?”

“검사부터 한 번 해 봅시다.”

도윤의 병원으로 가 알 수 없는 검사를 이것저것 실시했다. 몇 가지 기계를 동원해 사진을 찍고, 분석을 하는 일에 몇 시간이 걸렸지만 같은 병이라 그런지 더 신경 써 주는 것이 느껴졌다.      

“자, 사진을 보면서 설명하겠습니다.”

신경이 아직 뿌리의 일부만 잠식하고 있는 극히 ‘초기 단계’로 이 정도면 마취를 하지 않고도 줄기만 자르면 될 것 같다고, 도윤은 말했다.     

“그리고 정자 운동성 결과 말입니다. 꽃을 자르고 다시 한번 측정해보도록 하지요.”

그는 내가 무정자증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말해주기 앞서 ‘꽃과 관련된 증상인지 모른다’라고 단서를 단 다음, 재검사를 권했다. 너무 많은 사실들이 한꺼번에 몰아쳐 정신이 없었지만 어쨌든 무사히 여러 검사들과 꽃 자르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후, 이상 종양이라니.”

역시 바이러스나 그런 나쁜 것들의 일종으로 짐작했던 내 첫 짐작이 맞았다. 어차피 여자한테는 별닥 관심도 없고, 어쩌다 이렇게 내 증상과 딱 맞는 의사를 만나 빨리 처리할 수 있던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계속 이어집니다.                                                                        



도윤 #2    

책상 위 유리병에 꽂힌 붉은 꽃을 보며 나는 미친 듯이 웃고 싶은 욕망을 억눌렀다. 이제 남은 빚의 액수 정도는 우습게 넘길 수 있는 돈을 손에 쥘 수 있다. 사실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는 돈이 있는 게 이 자본주의 사회 아닌가? 이 꽃은 어쩌면 이 자본주의를 네 힘 닫는 데까지 실컷 이용해 보라는 신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서도승.

네가 죽으면서 내가 얼마나 곤란해졌는지.

넌 첫 번째라 실수가 많았어, 너의 죽음을 교훈 삼아 두 번째에는 절대 실수하지 않을게.

나는 내 머리 위의 꽃을 쓰다듬으며 그를 추억했다.    

서도승의 꽃을 일주일 동안 나를 꽤나 행복하게 했다. 일회성에 그칠 줄 알았던 이소은과의 만남은 매일 이루어졌다. 그녀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항상 우연히 복도를 지나는 나를 발견했고, 나를 멈춰 세웠고, 커피 한 잔 산다며 나를 이끌었다. 자존심 강한 여자애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은 며칠 만에 뒤바뀌었다. 아버지의 부와 명성에 숨어 아무것도 제멋대로 할 수 없어, 그저 자신의 맘대로 할 수 있는 만만한 다른 사람에게 그 화풀이를 할 수밖에 없는 상처받은 어린애. 그런 자신이 너무도 싫지만 아무도 자신에게 진심으로 다가오지 않아 더욱 외로운 영혼. 그리고 본능적으로 찾은 그 구원처, 바로 나.    

“일주일 만에 똑같이 자랐어요.”

서도승은 일주일 만에 다시 병원을 방문했다. 꽃의 효능을 확신한 순간부터 꽃을 보존하려고 온갖 짓을 다 했지만 비참할 정도로 말라붙어 시들은 꽃을 보고 절망하고 있던 나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오늘도 제가 잘라드릴게요.”

간단한 시술이기에 교수는 나에게 전권을 맡겼다.    

“아, 항상 감사합니다.”

“뭐 별 일은 없으셨고요?”

“아, 오는 길에 선생님을 안다는 예쁜 여자분이랑 대화를 했는데.”

혹시 소은인가? 하는 생각에 번뜩 경계심이 들었다.    

“향수를 뭐 쓰는지 묻더라고요. 아주 익숙한 향기가 난다면서.”

“하하, 그렇습니까? 뭐 쓰시는데요?”

나는 머리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지만 태연한 척 그에게 질문했다.    

“안 씁니다.”

“아, 그러셨군요.”

인간사가 모두 필연으로만 점쳐진 것이 아니다, 우연일 수도 있어. 나는 나 자신을 스스로 달랬다. 서도승이 다시 꽃을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가자 나는 어쩌면 예상했던 혼란에 빠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소은과의 만남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그녀는 꽃의 미스터리 한 향기에 끌려 나에게 왔을 확률이 높다. 서도승을 귀신같이 찾아내 향수까지 물어봤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일 확률이 높다.    

물론 나라고 그녀에게 아무런 기대를 품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게 되고 혹여나 결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나에게 올 대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이었으니까. 고냐 스탑이냐, 나는 고민에 빠졌다. 공급이 앞으로 계속될지 안될지 모르는 꽃으로 우선 결혼이라는 물릴 수 없는 승부를 보느냐, 아니면 위험한 게임은 일찍 그만두느냐.    

그에 앞서 실험할 것이 있었다. 꽃 없이 하루를 살아보기.    

예상대로였다. 서도승을 만났다면 그녀는 병원 내에 있을 것이 거의 확실했고, 내가 적극적으로 그녀를 찾아 나섰는데도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하루 허탕.    

둘째 날의 실험은 다음과 같았다. 꽃을 들고 있다가 다른 곳에 잠시 두고 오기. 꽃을 들고 있자 정해진 듯 그녀를 만났고, 나는 대화 중에 꽃을 다른 곳에 두고 왔다. 대화는 이상하게 끊기기 시작했고 그녀는 금방 일어서 가버렸다.     

꽃의 힘.    

그것이 확실했다. 그리고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위험한 게임이라. 이 게임이 위험하다면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 번째, 꽃의 공급이 일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서도승이 지금은 이상종양이라는 말에 잔뜩 겁먹고 매주 병원을 꼬박꼬박 오고 있지만 몸에 별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병원에 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두 번째, 앞서 이틀의 실험에서 봤듯 꽃이 배재된 소은과의 관계는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이 두 가지의 변인만 잘 통제한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문제였다.     

게임에 앞서 우선 서도승 문제부터 시간을 갖고 해결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사실 꽃만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면 두 번째는 일도 아닌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서도승이 병원을 매주 방문한 지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그의 입에서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말이 튀어나왔다.     

“선생님, 매주 병원 오는 것도 힘들고 시간도 돈도 너무 많이 드네요. 이거 어떻게 못하나요?”

“안 그래도 걱정하던 참이었습니다. 매주 이렇게 오시는 게 보통 일은 아니실 텐데.”

“뭐 방법이 없나요?”

“몇 달 동안 경과가 깨끗하니까, 이제 집 주변의 개인 병원으로 옮기셔도 될 것 같긴 합니다. 교수님께 여쭤보겠습니다.”     

교수의 대답도 예상대로 오케이. 하지만 나는 그를 개인 병원으로 연결시켜주는 대신 이 기회만 바라보며 오래전에 꾸민 시나리오 그대로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교수님께서 아무래도 워낙에 특이한 케이스니만큼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하시네요.”

“휴, 그런가요.”

“그래서 제가 출장 진료를 봐드리기로 했습니다.”

“네?”

“아무래도 특이 케이스이니만큼 교수님이 그런 결정을 내리신 듯합니다.”

“아, 그런가요?”

“그리고 저희 쪽에서 연구비도 지원해드립니다.”

“연구비요?”

“아, 이번에 특이 사례로 채택돼서 저희 병원에서 이 증상에 대해 임상연구가 들어가게 되었는데, 아직 말씀 안 드렸죠? 부담 가지실 건 없고요. 그 차원에서 저도 출장을 나갈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아 그럼 무료라는 말씀인가요?”

“네, 뭐 적지만 연구비 명목으로 매주 몇 만 원씩 지급도 해 드릴 거고요.”

“횡재했네요, 저.”

“그럼 여기 서명 좀…….”

나는 조작한 서류를 내밀었고 서도승은 나름 꼼꼼히(그래 봤자 거의 이해 못할 전문용어를 잔뜩 나열해 놓았지만) 서류를 살핀 후 사인을 마쳤다.    

“그럼 다음 주부터는 집에서 뵙겠습니다.”    

서도승이 가고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제 꽃 공급은 문제없다. 하, 연구실에만 처박혀 있는 바보 새끼. 그 꽃의 가치를 그렇게 모르다니. 그러나 그를 비웃는 것도 한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선생님, 근데 지급하시기로 한 연구 비말인데요, 정확히 얼마예요?”

다음 주, 서도승의 집에서 꽃을 절제하고 같이 차를 마시는데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 그게.”

“찾아보니 이런 임상실험 사례비가 1박 2일에 50만 원을 받는 곳도 있더라고요.”

아 씨발 인터넷. 전문의가 되지 못한 레지던트의 호주머니에서 1회에 50만 원을 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월급이 200 조금 넘는데 1주일에 한 번 50이면 월급을 총 투자하는 것 아닌가. 한 10만 원 선에서 적당히 해결하려고 했는데 그러다간 이놈이 딴 맘먹게 생겼다. 하, 어떡하지. 우선 나는 입을 털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것은 신약 실험이나 이런 위험성이 높은 연구에서 지급되는 액수고요, 저희는 그만큼은 안 됩니다.”

“아, 그런가요. 제가 좀 주제넘게 굴었죠.”

지난주까지만 해도 이상종양이라는 이유로 서도승은 철저한 을이고 의사인 내가 갑이었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위치가 뒤바뀌다니.    

“어느 정도 조정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우선 이놈이 얼마 정도를 적정선으로 생각하는지 알아야 하겠지. 나는 가볍게 운을 띄웠다.    

“아, 뭐. 제가 욕심 내는 것은 아니고요. 저 같은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제가 거의 최초인 것 같다는 생각도 있고 해서. 50까지는 아니어도 3,40 정도는 받는 게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해본 것뿐입니다.”

역시 아무리 어수룩해 보여도 돈 앞에서는 타협이 없는 게 인간의 욕심이다.    

“아, 사실은 20으로 책정되어 있는데, 어쩌죠? 기대에 못 미치는 금액이라서.”

하, 10도 아까운데. 어쨌든 나는 대충 흥정을 해보았다.     

“사실 다른 병원에서도 한 번 검사를 받아볼까 생각 중입니다.”

“하하, 이런 특이하고 유일무이한 사례는 독점과 선점이 중요하죠. 제가 교수님께 다시 한번 잘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아, 그래 주시면 정말 감사하고요. 저한테 지금까지 베풀어만 주셨는데 이런 말씀드려서 송구스럽네요.”

하, 약은 새끼. 꽃을 갖고 그의 집을 나서며 돈을 어떻게 마련할까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오빠!”    

지난 두 달간 매일매일. 어떤 여자한테도 이렇게 시간과 공을 많이 들여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아직 표면상은 ‘좋은 오빠 동생’이라는 허울을 쓰고 있었지만 그 관계는 언제든지 역전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이제는 병원이 아니라 병원 밖에서도 만났다. 인형같이 예쁘게 꾸민 소은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나는 말을 꺼냈다.    

“너 아는 연예인 있어?”

“에이, 오빠는 날 어떻게 보고.”

“미안. 너처럼 조신한 애한테.”

“하하 그게 뭐야.”

“그래서 없어?”

“음, 질문이 잘못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되는데?”

“아는 연예인 많아?라고 해야 되는 것 아냐?”

“아는 연예인 많아?”

“적당히? 근데, 그건 갑자기 왜? 의사 선생님이 연예인은 어따 갖다 쓰게.”

“아니 개원한 선배가 홍보 모델이 필요하다고 그러네.”

“뭐야, 성형외과?”

“뭐, 비슷한 거?”

“뭐야, 나 통해서 여자 연예인 이쁜 애 한 번 만나보자, 이런 수작 아냐?”

“뭔 소리야. 오빤 너밖에 없다?”

“농담하지 말고.”

“남자 연예인으로 해 달랬어.”

“흐음, 지금 나 떠보는 거지.”

“응?”

“내가 어느 급쯤 되는 애들이랑 친한가, 떠 보는 거 아냐?”

“하이고~ 쪼끄만 게 배배 꼬여가지고는.”

“오빠도 나 같은 환경에서 살아봐. 안 꼬이고 배기나.”

“아 그럼 연예인은 됐고, 혹시 의료기기나 약품 쪽으로 영업하는 괜찮은 사람 없어?”

“어쭈 이 오빠 봐라, 날 자꾸 이용하려고 하네.”

“아니, 선배가 좀 알아봐 달라고 하는데 병원 죽돌이인 내가 뭐 인맥이 있냐 뭐가 있냐. 알지? 외과 쪽 군기 엄청 센 거. 내가 그나마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인맥이 누구겠어?”

“나.”

“잘 알고 있네.”

“영업사원은 모르겠고, 연예인은 소개하여줄게.”

“웬일이야. 이소은?”

“뭐 나라고 항상 심술만 부리는 줄 알아?”    

돈을 벌기 위해선 이 꽃을 어느 놈에게 파는 게 좋을 것인가 수지 타산을 따져봐야 했다. 두 달 정도 되니 소은과의 관계는 외줄 타기에서 두 줄타기 정도의 안정감을 찾았다. 소은과는 일주일에 이삼일 정도의 만남이면 충분했다. 그럼 남은 시간 동안 꽃은 다른 곳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다. 여자에게 인기가 많으면 가장 많은 이득을 남길 수 있는 직업이 뭘까? 남자 연예인 아니면 영업 사원일 것이다.        

“안녕하세요. 원래 이런 계약은 매니저가 전담하는 게 맞는데 소은이가 꼭 제가 직접 봐야 한다고 생떼를 부리길래.”

요즘 가장 잘 나간다는 신인배우 J였다. 실물을 보니 눈이 부실 정도였다.    

“반갑습니다. 개원하는 선배랑 같이 나와야 되는데 선배가 너무 바쁘다고 하셔서 저한테 이 일을 일임하셨네요.”

“아, 네 모델인가요?”

“네, 그냥 이미지 모델이에요. 부담 안 가지셔도 되고요.”

헤어지는 길에 나는 그에게 꽃을 선물했다. 하얀색의 아름다운 나의 꽃.

“계약 성사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선배가 꼭 좀 전달해달라고 하신 꽃입니다.”

“아, 네”

“행운의 꽃이라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남자에게 꽃을 받은 그는 순간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웃으며 꽃을 받았다.    

효과는 생각보다 빠르게 나타났다.     

[신인배우 J, 신규 편성 드라마 파격 캐스팅]

[J군의 일상, 설레지 않나요?]

[신인배우 J, 대세 스타의 공항패션]    

포털에 일주일간 그의 이름으로 올라온 기사는 이전의 10배 수준이었다. 꽃의 힘은 실로 강력했다. 나의 좁은 시야로는 팬들만 끌어 모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방송계에 얼마나 여자가 많은지 간과한 나의 근시안이었다. 팬뿐만 아니라 작가나 PD, 기자까지 그의 편이 된 것이다. 그의 기사를 보다 공항 패션에서 앞 포켓에 빼꼼하니 나온 꽃잎을 발견했다. 역시, 연예계는 눈치야. 그가 이렇게 빨리 알아차릴 것이라고 기대는 안 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J였다.    

“아, 안녕하세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려고요.”

“무슨?”

“제가 이번에 드라마랑 영화에 캐스팅이 돼서, 모델 일은 도저히 할 시간이 없을 것 같네요.”

“아, 어쩔 수 없죠.”

어차피 모델일 자체가 거짓말이었으니 나로서는 전혀 손해 볼 일 없는 말이었다.    

“아니 선약인데 제가 너무 죄송스러워서요. 혹시 개원하신다는 그 선생님, 제가 식사 한 번 대접할 수 있을까요? 아, 도윤 선생님도 함께요.”

“아, 저야 감사하죠.”

“그럼 근사하게 대접하죠. 다음 주 중에 괜찮으신가요?”

다음 주 중이라. J가 스스로 꽃이 있을 때와 없을 때를 적나라하게 비교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네, 그러죠.”    

음식점에 나만 나타나자 J는 눈에 띄게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죄송합니다. 개원 선생님이 갑자기 큰일이 생겨서 저만 나왔네요. 그나저나 축하드립니다. 요즘 러브콜을 그렇게나 많이 받으신다고. 지난번에 계약 쾅쾅하고 금액 정할 걸 그랬네요. 몸값이 부쩍 오르셨을 것 같아요.”

“아, 아닙니다.”

“하하, 식사부터 할까요?”

J는 식사 내내 깨작거리며 무언가를 골똘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아마도 꽃에 대해 생각하느라 머리가 복잡하겠지.     

“선생님.”

그가 마음을 정한 듯 입을 열었다.

“꽃 말입니다. 저한테 주신 그 흰 꽃이요.”

“아, 네. 무슨 문제라도?”

“아, 문제가 아니라. 또 구할 수 있을까 해서요. 아니 선생님 말씀대로, 그 꽃이 있으니 행운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더라고요.”

“하하 그러셨습니까?”

“없으니까 허 하구요.”

“한번 여쭤는 보겠지만, 상당히 고가의 꽃이라고 들었습니다.”

“아, 그런가요?”

“그리고 사실 형이 계약 성사 안 된 것 때문에 조금 심사가 뒤틀린지라.”

“아 그러셨나요? 오늘 꼭 제가 식사를 대접해 드렸어야 하는데.”

“여쭤는 보겠지만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려는 나를 J가 다급하게 불렀다.    

“선생님!”

“네?”

“잠, 잠시만요. 이것 받으세요.”

J가 내민 것은 봉투였다. 아마도 돈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봉투.    

“우선 성의 표시라고 생각해주세요.”

하, 역시 연예계는 눈칫밥이야.    

“감사합니다. 말은 잘 전해드리죠.”

밖으로 나와 돈 봉투를 확인해봤다. 빳빳한 5만 원권 20장이 곱게 들어있었다. 100만 원. 그래. 이 정도면 거래해도 되겠어.     

J와의 은밀한 거래는 성사되었고, 서도승에게는 어렵지 않게 50만 원을 떼어줄 수 있었다. J는 점점 승승장구했다. J의 팬덤이 어마어마해지고 포털이며 TV며 J로 도배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J는 신인배우에서 1년 만에 대스타로 성장했다. 그리고 나와 소은의 관계도 결혼을 약속할 만큼 깊어졌다. 예상 못한 변수가 하나 있었다면 J가 소은의 지인이었다는 것. 소은은 내적으로 J와 나를 상당히 저울질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소은이 눈에 찰 J가 아니게 되었고 J는 너무 바빠 연애는커녕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자연스럽게 소은은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사고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어났다.

“도승 씨, 오늘 방문하는 날입니다. 잊지 않으셨죠?”

“죄송합니다. 제가 급한 외국 출장이 생겼는데 미리 말씀을 안 드렸네요.”

“시간 맞춰드리죠. 지금 집이십니까?”

“죄송한데 어제부터 중국입니다. 일주일 후쯤 귀국 예정이에요.”

중국이라니. 그곳까지 가서 꽃을 자를 수는 없었다. 연구직이라 항상 한국에 콕 처박혀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알겠습니다. 귀국하는 대로 연락 주세요.”    

우선 J와 연락해 이번 주는 꽃의 공급이 어렵다고 말하고, 소은과의 약속을 취소했다. J는 이미 한순간에는 절대 쓰러뜨릴 수 없는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흔쾌히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아니, 어쩌면 꽃의 공급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나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두려워서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저, 들어왔습니다. 아무래도 종양을 이렇게 오래 둔 적이 오래라 좀 불안하네요. 오늘 당장 집으로 오실 수 있습니까? 한 2시간쯤 뒤예요.”

공항에서 도승이 전화를 했다. 

“아, 네. 물론이죠. 조심해서 오세요.”

“하하, 재밌는 것 말씀해드릴까요? J 씨가 저랑 같은 비행기로 입국했습니다. 공항이 팬들로 엄청 붐비네요.”

“요즘 드라마에 나오는 그 J 씨 말입니까?”

둘이 만나다니,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래 봤자 먼발치에서 본걸요.”

‘만난 것’은 아니라니 천만다행이었다. 둘이 만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왜인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 본능이 경고를 보냈다. 나는 병원 밖으로 뛰어나와 차에 시동을 걸었다. 목적지는 공항, 서도승을 빨리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외곽 순환 도로를 타면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포 쪽 개인 병원으로 출장 갈 일이 있어 저도 출발했습니다. 거기서 만나시는 건 어떠시나요?”

“아, 네. 저야 좋죠.”

“자동차 갖고 오시죠?”

“네, 주소 좀 찍어서 보내주세요. 바로 갈게요.”

“네. 운전 조심하시고요.”    

끼익, 쾅.

본능이 괜히 신호를 보낸 것이 아니었다. 갑자기 전화기 너머로 엄청난 충격음이 전해져 왔다.    

“서도승 씨, 서도승 씨?”    

도착한 사고 현장은 참혹했다. 피와 살점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이 보통 규모의 사고가 아닌 듯했다. 이미 그와 가해자는 구급차에 실려 가고 난 뒤였고, 사고 현장은 정리가 되지 않아 어수선했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사고가 발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의 현장이라면 분명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충돌하면서 창 밖으로 튀어나갔을 확률이 높았다. 사건 현장을 살펴보던 나는 아직 견인처리가 되지 않은 차들을 벗어나 좀 더 걷기 시작했다. 사고가 나기 전부터 경고를 보내던 강력한 본능이 나를 어디론가 이끌었다. 나 스스로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계속 걸었다. 그리고 나는 곧, 뿌리가 반쯤 남아 있는 너덜너덜한 꽃을 발견했다.    

“J 씨의 사생팬이 J 씨의 승용차로 착각해 쫒아가다 박았다고 하는군.”

피해자와 가해자 둘 다 사망에 이른 그 사건은 어이없게도, 서도승이 J로 오인받아 생긴 일이었다. 아무도 가해자가 왜 그런 착각을 저질렀는지 알지 못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향기.     

그것이 착각을 일으킨 것이었다.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꽃을 공급받을 수 없다는 데 있었다. 내가 주워온 서도승의 꽃은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지만 아예 재생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최대한 원래 살던 곳과 비슷한 식생, 하지만 기회는 한번뿐이다. 분석을 통해 꽃과 무정자증이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과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낳으려면 절대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털이 있어 보호되며, 안정적으로 자랄 수 있는 곳. 나는 머리의 일부를 깎고 X자로 상처를 낸 다음, 그 안에 꽃 뿌리를 집어넣었다. 피는 머리를 넘어 얼굴까지 줄줄 흐르고 머리 위에는 허연 꽃이 피어있고. 그 광경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야, 나 좀 미쳐가는 건가.    

병원에는 며칠간 휴가를 냈다. 뜬금없는 때의 뜬금없는 휴가라 교수님께 엄청 혼났지만, 이 상태로는 도저히 출근을 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비벼지면 안 되니까 잠도 마음대로 잘 수 없었고, 통증도 상당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나는 생착이 잘 되어야 할 텐데라는 걱정뿐이었다. 무엇을 위해서? 소은과의 결혼을 위해서? J와의 약속? 아님 돈? 불면의 밤과 고통이 겹치며 나의 목적성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모르겠다. 그저 꽃 그 자체. 그게 나에게는 중요했다.    

[J, 연기력 논란에 휩쓸리다]

[J, 배우의 예능 적응기, 낙제점을 받다]    

J에게서 온 전화가 미친 듯이 울렸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소은이 직접 찾아왔지만 나는 문 앞에서 돌려보냈다. 꽃의 생착은 성공했지만 성질은 완전히 달라졌다. 며칠간 모자를 쓰고 돌아다닌 결과 나는 나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첫째 날은 그래도 대여섯 명가량이었는데, 둘째 날은 서넛으로 줄어들고, 셋째 날은 하나 둘. 그리고 계속 그 수를 유지했다.     

게다가 꽃은 ‘이상종양’이라고 판정받았던 제 값을 이제야 증명하려는 듯 왕성한 부피 생장을 하기 시작했다. 줄기는 날로 튼튼해졌으며 살과 결합하려는 강도는 날로 세졌다. 한번 죽을 뻔하다 살아서 그 집착이 강해 진건가? 고작 식물 주제에? 무서움에 꽃을 잘라내 봤지만 마치 면도하는 것과 같이 줄기는 점점 더 굵게 자라났다. 그리고 나는 결코 켈로이드 체질이 아니었음에도 붉은 살들이 자라나 꽃의 밑동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 후 모든 일은 휘몰아치듯 일어났다. 소은은 나에게 이별을 선고했으며 전 남자 친구를 아빠의 병원에서 보기 싫다는 이유로 병원장에게 압력을 넣었다. 나는 병원에서 해고되었고 빚을 내어 개원을 했다.     

J의 경우에는 더 심각했다. 비판적인 기사들은 예고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대세 배우들에게 밀려 빠르게 그 인기가 식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처음부터 내가 중계인의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는 형이 부도를 내고 자취를 감췄다, 그 꽃은 처음부터 순수한 꽃이 아닌 형이 만들어 낸 생물학적 화합품이었으며 부도를 내고 종적을 감춘 병원에서 발견되었는데 치명적인 마약 요소가 배합된 것으로 알려져 모두 소각처리되었다, 라는 나의 그럴듯한 거짓말에 J는 몇 번쯤 더, 그것을 만드는 법을 모르냐며 몇 억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내가 오리발을 내밀자 어렵게 어렵게 단념했다.      

모든 폭풍이 지나가자 나에게는 두 가지가 남았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꽃과 빚.    

그리고 김남진의 붉은 꽃은 나에게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우선, 빚부터 갚아볼까.                    

                                                                               

남진 #3    

잠에서 깬 나는 인터넷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도대체 내 그곳에 난 꽃은 무슨 꽃일까? 동네 온 덩굴을 뒤졌는데도 같은 꽃은 찾지 못했지만, 검색은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검색 끝에 나는 사진을 찍어 놓았으면 비슷한 그림들을 찾아주는 이미지 검색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흠, 아쉽다. 사진을 안 찍어놨네. 일주일 정도 지나자 꽃은 언제 잘렸냐는 듯 다시 자라나 있었다. 나는 사진을 찍은 다음 검색을 해 보았다. 양귀비? 양귀비인가. 수십만 개의 붉고 아름다운 꽃의 사진이 떴지만 어쩐지 내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50까지의 페이지를 샅샅이 훑다가 눈이 피곤해져서 그만뒀다. 페이지 수는 총 378개나 되었다.    

‘나중에 보지 뭐.’

나는 병원으로 향했다.    

“별 일 없었어요?”

도윤이 물었다.

“네, 뭐.”

“어디 한 번 다시 검사도 해 봅시다.”

도윤은 이전 기록과 비교하여 섬세한 비교 작업을 마쳤다.    

“전혀 변화가 없군요. 이전 수치와.”

“다시 잘라주십시오, 그럼.”

“생활에 불편함이 없으시다면 그냥 놔둬도 괜찮습니다.”

“위생상 영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속옷 입을 때 맵시가 안 나기도 하고. 무엇보다 화장실 갈 때 신경 쓰입니다.”

도윤은 아, 그렇겠군요.라고 말하고 꽃을 다시 잘라냈다. 도윤은 일주일 후 다시 보자는 말과 함께 나를 보냈다.    

집으로 가면서 나는 계속 페이지를 넘겼다. 100,101,102…… 그나마 가장 비슷하다고 보이는 꽃을 찾아낸 것은 135페이지에서였다.    

[멸종식물도감]    

산샤마리아    

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자생하는 식물로 해당 지역 원주민들의 성년식에 꼭 이용되었다고 알려진다. 사막이라는 열악한 식생 환경에서 번식하기 위해 특정 꽃과 공생관계를 맺고 있는 벌, 나비, 새, 곤충들을 모두 자신의 꽃가루를 나르는데만 이용할 수 있는 특별한 향기를 풍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정률은 아주 낮아 개체 번식의 한계가 있었으며 무분별한 채취로 인해 19세기 말 멸종하였다.      

특정 꽃과 공생관계를 맺고 있는 벌, 나비, 새, 곤충의 공생 관계를 파괴하고 자신의 꽃가루를 나르는데만 이용할 수 있는 꽃이라. 게다가 수정률은 아주 낮고. 어딘가 나의 꽃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양도 개중 가장 비슷했고. 나는 페이지를 저장한 뒤 생각에 잠겼다. 의사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주는 게 좋을까? 꽃이 이상종 양이나 바이러스가 아닌 실존했던 꽃이라면 잘라내기만 하는 것이 아닌 본질적인 해결 방법이 있을 수 있지도 않을까?    

계속 이어집니다.                                                                                                                                    

도윤 #4    

빚을 갚기 위해서는 판매처가 필요했다. 이번에는 J에게 팔았던 때보다 좀 더 깊이 숨기로 마음먹었다. 이중, 삼중의 보호막을 쳐놓고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발각되지 않을 방법을 쓰기로 한 것이다. 꽃은 한 송이므로 고객은 한 명으로 충분하다. J와의 관계는 최대한 멀어야 하고 남자여야 한다.     

철저한 탐색 끝에 내가 고른 것은 M이었다. 마약으로 인한 전적이 있어 만약의 경우 꽃이 마약 성분으로 배합한 화학물이라는 거짓을 어필하면 깜짝 놀라 도망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타깃. 몇 년 전부터 유망주 명단에는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고, 집안도 부유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결정적인 한방이 없어 고전하고 있는 배우. 접근 방법은 지난번과 동일했다. 대신 내가 아닌 대리인의 손을 거쳐 그에게 직접 꽃을 전달했다. 일주일만 지나도 애가 타서 연락이 오겠지.    

남진에게 계속 꽃을 공급받는 방법에는 약간의 수정이 필요했다. 우선 망할 놈의 임상실험 이야기는 꺼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이상 종양 이야기로 충분히 겁을 주고, 검사 결과를 좀 조작해서 최대한 단물을 뽑아 먹기로 마음먹었다.    

-거래는 잘 마치셨습니까?    

심부름 회사-대리인-SNS로 구조를 다변화 해서 설계했기 때문에 메시지 전달도 복잡하게 이루어졌다. 내 질문에 SNS상으로 대답이 왔다.    

-네, M군에게 꽃은 잘 전달하였고요, 이번 주에 다시 약속이 잡혀 있습니다.

-제가 전달한 시나리오대로 진행해 주시고요, 혹시나 예상외의 답변이나 상황이 발생할 시에는 바로 DM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모든 상황이 같을 수는 없는 법, 다음 주 약속에 M은 본인은 바쁘다며 매니저를 내보냈고, 꽃을 구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비췄다. 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 매니저를 대신 내보낼 수는 없었을 텐데. 신중을 기해 직접 대면할 수 있는 다음 약속을 잡을 것이냐, 아니면 거래를 진행할 것이냐. 나는 신중을 기하기로 했다. 꽃의 거래는 그다음 주로 넘어갔다. 무슨 배짱일까, 그다음 주에도 M은 직접 나오지 않았다. 역시 바쁘다는 이유로 매니저를 대신 보냈다.     

일주일만 갖고 있어도 꽃의 위력은 실감했을 텐데, 분명 애가 달았을 텐데 왜 이렇게 시간을 끄는 거지? 나는 M의 심중을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가 ‘진짜’ 바빠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남진 #5    

-혹시 꽃 안 파실래요?    

내가 문자를 받은 것은 토요일 밤이었다. 상대가 지칭하는 꽃은 아무리 생각해도 성기의 그 ‘꽃’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도윤 외에 도대체 누가 이것을 알고 문자를 보냈단 말인가? 나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한 송이에 200 어때요?    

200! 문자를 무시하려던 내 눈이 번쩍 뜨였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꽃을 200이나 주고 사려는 걸까? 누가? 이 상황을 도윤에게 알려야 하나? 나는 혼란에 빠졌다. 만약 내 성기에 꽃이 피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높은 확률로 도윤과 연결된 사람일 것이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윤을 통하지 않고 나에게 직접 연락을 했다는 것이 이상했다. 꽃이 아니라 이상 종양일 수도 있으니까, 병원에서 깨끗하고 안전한 절차를 거쳐 절제한 다음 가져가는 게 더 나을 텐데. 왜 나하고 직접 연락하려고 하는 거지? 도윤과의 절차를 거치면 커미션이 발생해서인가? 이른바, 직거래가 더 싸다는 원칙 실현? 우선 나는 두려움을 가라앉히고 자판을 천천히 눌렀다.    

-무슨 꽃이요?    

확인.    

-당신 몸에서 피는 붉은 꽃.    

완료.    

생각을 조금 더 해보자. 뭔가 빼뜨린 것 같으니까.    

도윤, 그가 이 일의 키였다. 도윤을 거치면 될 일을 내게 직접 연락했다. 게다가 꽃의 가격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고가를 제시했다. 도윤은 꽃을 자른 후에는 항상 세균 감염의 우려가 있다며 내가 꽃을 가지고 가거나 만지는 하는 일체의 일을 금지시켰다. 근데, 혹시 그런 행동을 한 후 꽃을 챙겨 팔았나? 그렇군, 그거였어. 그놈은 내 꽃을 누군가에게 팔아왔던 것이다. 어떤 용도로 팔았는지는 잘 짐작되지 않지만, 그러면서 돈을 엄청 받았음이 틀림없다. 지금 이 익명의 누군가가 200을 제시했지만 ‘직거래’의 원칙을 생각하면 도윤은 그것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나쁜 놈, 이런 이익사업을 해오고서는 내 앞에서는 입을 싹 닦다니. 그의 병원에 검사비니 뭐니 하는 명목으로 갖다 바친 수많은 나의 돈이 아까워졌다.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하자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신도윤, 처음부터 알량하게 생겨서 맘에 안 들었어.    

잠깐, 잠깐. 신도윤의 머리 위에도 나와 같은 증상이라고 했던 꽃이 피어 있지 않나? 그간 그가 꽃을 팔아왔다면 내 꽃이 아닌 그의 꽃일 확률도 배재할 수 없었다. 역시나 무슨 용도로 사용되기에 그런 비싼 돈을 받았는지는 짐작하기 힘들지만. 어쨌든 신도윤의 그 자신의 꽃을 팔았든 내 꽃을 팔았든 그것을 더 이상 사기 힘들어진 사람이 나에게 연락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사람이 원하는 것은 신도윤의 흰 꽃이 아닌 나의 ‘붉은’ 꽃이라고 정확히 지목했다. 만약 그간 신도윤의 꽃을 사 왔다면, 내 꽃으로 돌아선 이유가 뭐지? 무슨 효능 따위가 다른 건가?    

도윤에게 이 일을 알릴까 말까. 도윤에게 알리면 필시 돈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고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도윤은 나에게 앙갚음을 할 수도 있었다. 우선 도윤을 떠봐야겠다.    

“신도윤 선생님?”

“아, 네. 늦은 밤에 무슨 일로?”

“제가 혹시 몰라 시험 삼아 소독된 칼로 꽃을 잘라봤는데요, 별 이상 없더라고요.”

“아, 그러셨습니까.”

“매주 가는 병원비도 부담되고, 시간도 없어서. 그냥 앞으로는 제가 집에서 처리하려고요. 검사도 매주 받는 건 오버인 것 같고. 아버지가 암 투병하셔서 잘 아는데 검사를 일주일마다 하지는 않으시더라고요. 암도 원래 종양부터 시작되잖아요? 양성으로 판정받아도 검사를 일주일마다 하진 않던데요.”

“하하, 제가 신경 쓴다고 해 드린 게 오히려 불편하셨나 보군요. 죄송하네요.”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는 그냥 제가 집에서 꽃이 적당히 커질 때마다 알아서 관리하고 이상이 생길 때만 내원하는 게 어떨까 해서요.”

“아, 사실 말씀 안 드린 것이 있습니다.”

“뭐요?”

“임상연구에 대해서요.”

“임상연구요?”

“최근에 통과가 되어서요, 아직 말씀 못 드렸습니다.”

“그게 뭔데요?”

“아, 만나서 얘기드리죠. 저한테는 중요한 얘기라서.”

“사실 제가 좀 바빠서 뵐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주말 밤에 자신이 쉬어야 하는데도 다짜고짜 만나자고 하는 도윤이 의심스러웠다. 나는 만남을 피하며 집 밖으로 나왔다. 의료보험만 살펴봐도 집주소가 나오겠지, 만약 찾아오기라도 한다면 피할 수가 없으니 그가 모를 것 같은 곳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럼 제가 집으로 방문해도 될까요?”    

집을 나오기가 무섭게 도윤이 말했다. 역시, 집으로 오려는 수작이었어. 나는 얼른 택시를 잡아탔다.    

“고향집에 일이 좀 생겨서 당분간 서울 집에 없을 것 같은데요.”

“아, 임상연구가 뭐냐면.”    

도윤은 꽃이 피는 사례가 세계 최초에 가깝고, 두 명의 피실험자가 파악된 만큼 여러 연구를 진행할 수 있어 임상 연구의 절차를 밟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돈이 연구비가 지급될 예정이고, 그러려면 집에서 그렇게 자르면 자신이 좀 곤란해진다, 라는 것까지.    

“연구비요? 얼마요?”

“1회 30만 원선에서 책정되어 있습니다.”

겨우 30? 상대는 200을 제시했단 말이다.    

“연구라니, 실험 쥐라도 된 것 같아 찜찜한데요.”

“혹시나 이런 사례가 더 발생할 수도 있으니 꼭 돈이나 기분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고, 의료계와 인류 전체의 이득을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네, 생각 좀 해보고 연락드리죠.”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럼 가능성은 하나 더 늘어났다. 이 연구를 하고 싶은 어떤 기관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도윤의 꽃은 그 자기 자신의 꽃이니까 절대 넘어 올리 없을 거라고 생각해 나에게 연락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 그렇다면 선택은 두 가지다. 의리냐, 돈이냐.     

200.    

나는 속으로 그 금액을 다시 한번 되뇌어 보았다. 내 월급이랑 맞먹는 액수네.    

200.    

-답이 없으시네요. 300은 어떠십니까?    

문자가 다시 왔다. 300?

의리니 뭐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임상연구는 내 동의도 얻지 않고 도윤 맘대로 진행시킨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뭐 이거 연구를 한다고 해서 인류에게 기여를 해? 웃긴 소리 하지 말라 그래.    

-팔겠습니다.    

익명의 사람은 내가 편한 장소와 시간을 정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혹시나 위험한 일이 일어날 것을 고려해 사람이 많이 다니는 역, 주말 낮 시간에 약속 시간을 잡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이었으므로 맛있는 밥을 쏜다는 핑계로 몸집이 좋은 친구 녀석도 둘이나 섭외했다. 300을 받는다고 하면 그깟 밥이 문제 일쏘냐.      

거래를 하러 나온 사람은 무슨 성형수술을 갓 마치고 나온 사람인처럼 모자와 선글라스와 마스크와 스카프까지 동원해서 얼굴을 칭칭 가린 남자였다. 혹시 납치라도 될까 봐 잔뜩 긴장했던 나는 단신으로 나온 그를 보자 김이 샐 지경이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돈을 먼저 내밀었다. 돈을 확인 한 내가 꽃을 내밀자, 그는 말없이 꽃을 품에 넣은 채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 꽤 키가 큰 남자였다.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왠지 그가 일반인의 비율을 가진 평범한 남자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런 남자가 내 꽃이 왜 필요한 걸까? 그러다 내 생각은 산샤마리아, 라는 꽃의 성질에 미쳤다.    

‘특정 꽃과 공생관계를 맺고 있는 벌, 나비, 새, 곤충의 공생 관계를 파괴하고 자신의 꽃가루를 나르는데만 이용할 수 있는 꽃’

그것은 도윤이 나를 맨 처음 카페로 불러 느낄 수 있게 해줬던 꽃의 힘과도 닮아 있었다.

‘꽃에 나비 꼬이는 것처럼 여자들이 꼬인다.’    

그리고 다음 정의도 생각났다.    

‘그럼에도 수정률이 아주 낮아 개체 번식의 한계가 있었으며’

그것은 내가 꽃을 달고 일주일간 느꼈던 바와 명확히 닮아있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질투의 감정을 품지 않는, 성적인 것과는 한참 벗어난 호감’

그리고 그 가설을 뒷받침하는 무정자증.    

이런 호감과 관심이 돈 300을 주고서라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얼굴을 저렇게 필사적으로 가렸지만 모델 같은 기럭지를 숨길 수 없다면? 그는 연예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배우인지 가수인지는 모르겠지만. 근데, 그 꽃이 내 몸에서 핀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지?     

“연구가 내키지 않으신다고요?”

“아, 네. 선생님.”

“혹시 연구비에 불만이 있으십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기분 상 그렇게 썩 좋지는 않네요.”

“연구비는 올려드릴 수 있어요. 너무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제가 말씀드렸지만 악성종양으로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찰이 중요합니다. 꾸준히 돈도 지급받으시고, 원인도 알아보시고, 예방도 하시고요.”

“그것보다 여쭤볼 게 있는데, 혹시 이 임상 연구 어디에 발표하신 적 있나요? 뭐, 학회라던가 학회지라던가. 저랑 선생님 말고 이 증상에 대해서 아시는 분이 계신지 궁금해서요.”

“아직 환자분 동의 절차도 진행 안 했는데 제가 그런 개인 정보를 함부로 발설하고 다니지는 않죠.”

“네, 이 사실이 알려지는 게 영 찜찜해서요. 그리고 연구라 하면 사진이나 이런 것도 찍어야 할 텐데, 아무래도 성기 부분이다 보니 예민하기도 하고요.”

“그 부분이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사진 촬영이나 이런 작업은 안 할 예정이니까요.”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볼게요.”    

나는 애매한 여지를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다음 주에도 거래할 수 있을까요?

익명의 남자에게서는 다시 문자가 왔다.     

-네, 같은 곳에서 뵐까요?

나는 답신을 보냈다.        

                                                                                                                           

도윤#5    

M이 혼자 나온 것은 그렇게 세 번의 약속을 어기고 나서였다. M만 나오라는 조건을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세 번 만에서야 혼자 나왔다. 돈은 J때보다 훨씬 많이 가져다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진행과정에 있어서의 미심쩍음을 털어낼 수 없었다. 물론 내가 익명성 뒤에 꽁꽁 숨어 있긴 했지만 내 정체를 간파당했을 위험도 배재할 수 없었다. 나름 신중을 기한다고 했는데 타깃 설정을 잘못한 것 같기도 했고 아니면 너무 많은 단계로 일이 이뤄져서 어디에선가 명령 전달의 오류가 생긴 것 같기도 했다.     

“신도윤 선생님?”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진은 스스로 꽃을 자르겠다며, 더 이상 병원에 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대 꺼내지 않으려던 임상연구 패를 다시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잘 먹히지 않았다. 뭐지? 왜 갑자기 또 일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는 거야? M과의 계약을 간신히 성공했단 말이다. 그나마 실마리를 찾은 건 그와의 전화통화에서였다. 또 그 망할 인터넷에 공개된 임상실험비 때문에 기분이 상했나 해서 연구비 상향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의 관심사는 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보다 여쭤볼 게 있는데, 혹시 이 임상 연구 어디에 발표하신 적 있나요? 뭐, 학회라던가 학회지라던가. 저랑 선생님 말고 이 증상에 대해서 아시는 분이 계신지 궁금해서요.”    

너랑 나 말고 이 증상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는지가 왜 중요한데? 물론 그는 성기라서, 민망하고 수치스러워서라는 이유를 댔지만 내 생각에는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누군가 제3의 인물이 있다. 그 인물은 남진이 스스로 꽃을 자르고 병원을 가지 않는다는 결단을 내릴 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남진 스스로도 그 인물의 정체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에게 질문을 한 것이다.    

‘도대체 어떤 새끼가 접근한 거야?’

M한테 접근하는데도 돈을 꽤 썼는데 이번에도 돈 없이는 넘어가기 힘들게 생겼다.     

“거기 심부름센터죠? 미행을 요청하려고 하는데요.”

역시 나의 추측이 정확했다. 제삼자. 미행을 요청한 심부름 업체는 며칠 만에 남진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지하철 역에서 수상한 거래를 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전달했다. 자신 말고는 아무에게도 대리로 시킬 수 없는 중요한 꽃이라는 것을 정확히 아는 남자. 누구보다 꽃을 기다렸을 남자. 용의자 후보 중에 하나와 매치시키자, 아무리 가렸어도 나는 그가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J였다.    

“아오, 이 새낀 어떻게 귀신같이 이걸 알았지? 분명 화합품이라고 말했을 때 철썩 같이 믿는 것 같이 굴더니만……”

이젠 어쩔 수 없다. J와는 직접 대면을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안녕하세요.”

전성기 때보다 자신감은 좀 빠진 듯했지만 여전히 우월한 외모의 J가 조용히 방으로 들어오며 인사를 건넸다.

“J군, 잘 지냈어요?”

“아, 네.”

식사를 좀 하고 난 뒤, 본론으로 들어갔다.    

“꽃이 없어서, 좀 힘들었죠?”

“아, 네. 뭐.”

나는 사진을 내밀었다.

“요즘 꽃 다시 잘 구해서 쓰고 있더라고요, 맞죠? 본인.”

J는 내가 내민 사진을 보자 얼굴빛이 변했다.

“그래서 뭐요? 문제 될 것 있나요?”

“제가 분명 마약성분이 배합된 화학품이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J는 하, 하며 코웃음을 쳤다.

“그런 거짓말을 제가 믿는 걸로 보였나요?”

약점을 잡혀 당황하며 나에게 쩔쩔매는 것이 나의 예상이었는데, J는 전혀 다른 말로 나의 예상을 가볍게 뒤집었다.

“거짓말 아닙니다.”

애송이가 뭘 알겠어, 나는 강경한 태도로 나갔다.

“다 판명난 이런 일로 논쟁하고 싶지 않고요, 절 협박하려거든 알아서 하세요. 어차피 거짓이면서 뭐 그리 당당하신지 참 궁금하네요.”

J의 당당한 태도에 나는 이번에는 꽃에 마약 성분이 배합되어 있다는 분석표(물론 조작한 것)를 내밀었다. J는 눈으로 쓱 살펴보는 척을 하더니 역시나 코웃음을 쳤다.

“돈이 좀 급하신가 보죠?”

J가 말했다.

“이걸로 경찰에 제보하고 그쪽 덮치게 하면, 지금까지 쌓아놓은 이미지 다 무너질 겁니다.”

내가 말하자 J는 답답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거 사람 몸에서 나는 꽃인데 왜 화합품이라고 했어요?”

“네?”

“그거 사람 몸에서 나잖아요. 아, 그 사진에 아주 당사자가 잘 찍혀 있네. 그분 맞죠? 그분 몸에서 나잖아요.”

“뭐야, 어떻게 알았어요?”

“알려주면 나 도와줄 거예요?”

“도와준다고요?”

“당신 때문에 내가 좀 곤경에 처했거든요.”

J는 태세를 변환해 오히려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슨 도움이요?”

“M말이에요, 그 새끼 좀 떼내 줘요.”

“내가 왜 그래야 되죠?”

“뭐, 싫으면 내가 처리하고요. 아니 그쪽을 통하는 게 더 간단할 것 같아서 제안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요. 돈이 급하신 것 같아서, 돈도 좀 챙겨 드리려고 했더니.”

하, 이렇게까지 내 중요한 무기들이 다 쓸모없어진 마당에 J는 나에게 동아줄을 내밀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요. 도울게요. 도대체 어떻게 안 건지 말이나 해줘요.”    

J에게 사생팬의 교통사고 사실이 전해진 것은 그녀가 아직 숨이 붙어 있을 때였다. 물론,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니, 그리고 자신이 당했을지도 모르는 소름 끼치는 일이니 방문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목숨이 위태로우며, 마지막 소원이 자신을 직접 보는 것이라는 이야기에 J는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심지어 J는 그 사생팬의 얼굴도 알고 있었다. 집 근처에서 얼쩡거리거나 팬미팅 장소에 1번으로 서있거나 하는 장면을 몇 번 목격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괴롭게 하긴 했지만 어쨌든 불쌍한 팬이었다. 병원이 소란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J는 꽃을 놓고 병원을 방문했다.     

“오빠? J오빠?”

사생팬은 눈을 심하게 다쳐 사물의 분간이 거의 안 되는 상태였다. 사실상 자신이 직접 방문했어도 마지막으로도 그를 볼 수 없는 상태.    

“네, 그래요. 괜찮은 거예요?”

생각보다 훨씬 참혹한 팬의 상태에 J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J는 말을 건넸다. 감동하여 눈물이라도 흘릴 줄 알았는데, 팬의 말은 뜬금없었다.    

“오빠, 향기가 안 나요.”

“네?”

“그 남자, 그 남자한테는 났었는데.” 

“무슨 말씀이신지?”

“엄마, 지금 나 많이 다쳤다고 다른 사람 불러다 쇼하는 거지! J오빠 아니지?”

눈 앞에 J가 떡하니 서 있는데도 팬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진정해요, 나 맞아요. J."

그가 팬의 손을 잡아주자 팬이 소리를 멈췄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병원을 나오면서도 그는 팬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팬이 사고를 낸 그 남자한테서, 나로 착각할만한 향기가 났단 말이야? 이미 고인이 된 피해자에 대해 J는 수소문했고 그 결과 사체에 아주 특이한 상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기에 식물의 뿌리 같은 조직이 있었다는, 기괴한 이야기. 조금 더 알아보자 그가 성기에 꽃이 났다는 문제로 병원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도 찾아낼 수 있었다. 사람에게서 나는 꽃. 믿을 수 없었지만 진료 기록은 사실이었고 담당 의사에서 나, 신도윤의 이름을 발견한 순간, J는 확신을 가졌다고 했다.     

“가능성은 반반이었죠. 진짜 사람에게서 난 꽃이라 더 이상 못 구하게 됐느냐, 아니면 그걸 배양해서 진짜 화합품을 만들었는데 나한테는 안 주는 거냐.”

그래서 일부로 몇 억까지 제시해봤다고 해도 내가 거절하자, 그것이 ‘사람의 몸’에서 나고 그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못 구한다는 결론을 내고 물러났다고 말했다.    

“그래서, 김남진은 어떻게 찾은 거예요? 그동안 나에게 쭉 미행이라도 붙여놓기라도 하신 건가?”

“그게 이제부터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한 일과 관련 있죠.”    

M에게 미끼로 첫 번째로 전달한 꽃, 그것이 문제였다. M은 꽃을 소지하고 다니지 않았다. M은 대리인과의 미팅이 끝난 후 사무실로 돌아와 그것을 사무실에 꽂아놓고 다음 스케줄을 소화하러 나갔다. 그리하여 꽃의 효과는 M이 아닌 사무실 사람들이 먼저 알게 돼버린 것이다. 물론, 사무실 내에서 알게 된 것이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꽃으로 인해 끌어당겨지는지는 정확히 체감하지 못했을 확률이 높았다. 그래도 ‘신기한 꽃이 있다더라.’라는 조심성 없는 소문이 퍼졌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J가 정보를 얻었다. J는 꽃의 배후를 팠고 그 과정에서 남진을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J에게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이미 꽃은 ‘M의 회사차원에서 관리되어야 할 것’이라는 인식이 퍼졌기에 사실 M이 받은 꽃은 M 본인이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더 높은 선까지 꽃이 올라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급처인 도윤과 남진이 발각되어 위험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더 이상 J는 꽃을 받을 수 없었다. 그전에 얼른 꼬리를 자르고 숨으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꽃은 한 송이밖에 없으니까.    

“좋아요.”    

나는 대답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J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나도 위험할뻔했다. J가 배후를 파헤쳐 내가 그렇게 쉽게 나올 수 있었다면, 2중 3중의 안전장치도 무의미했다.    

“드리던 대로 100씩은 드릴게요. 자리 잡으면. 너무 빨리 인기를 얻으면 그들에게 주목받을 수 있고 위험하다는 거, 선생도 동의하죠?” 

나는 손을 내밀었고 J와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 내가 더 이상 김남진과 직접 만나는 건 위험해요. 난 아무래도 연예인이라, 당신처럼 맘먹고 쫓으면 이런 사진 찍히는 것은 일도 아니니까. 앞으로 김남진은 선생님이 만나줘요. 꽃은 퀵으로 배달받는 게 낫겠어요.”

집에 가는 길에 나는 쓰던 SNS의 계정을 먼저 폭파했다. 대리인과 심부름 회사와의 거래도 끊었다. 남진에게는 전화를 걸어, 적당한 생략과 과장을 섞어 내가 J의 대리인이 될 것이며, 300은 꾸준히 지급하겠다는 언질을 주었다.              



남진#6    

의사가 커미션을 챙기지 않게 조용히 직거래를 하려고 했는데, 의사가 알아버렸다. 당혹감에 전화기를 놓칠뻔했지만 도윤은 그 전과 같은 금액인 300을 제시했고, 에잇 그렇담 나에게 전혀 손해 될 것이 없다고 생각된 나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걱정할 것이 전혀 없는 평화로운 몇 달이 흘렀다.    

“김남진 씨 되십니까?”    

낯선 남자들이 말을 건 것은 그런 평화로운 날들 중 하나였다. 심야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으슥한 골목길에서 그들은 접근해왔다.    

“네, 그렇습니다만.”    

퍽.    

순식간에 명치로 들어온 주먹에 숨을 못 쉬어 컥컥 거리는 동안 그들은 나를 폭행했고 검은 천을 뒤집어 씌우더니 나를 낯선 차로 이끌었다.

“뭐, 뭡니까?”

“가면 다 알게 됩니다.”    

한참만에 나는 복면이 벗겨진 채 으슥한 산골짜기에 있는 건물 의자에 온 몸이 속박된 채 앉혀졌다. 그리고 내 옆에는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든 도윤이 피 섞인 침을 쿨럭거리며 쏟아내고 있었다.

“뭐, 뭡니까?”

“맞기, 싫으면, 그냥, 다 알았다고 해요, 알겠지.”

“네?”

“죽기 싫으면, 알겠어? 그래야 나도 살고 당신도 살아.”    

도윤과 나의 대화를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던 남자 하나가 나에게 다가왔다.

“다 들었지? 자 지금부터는 네, 알겠습니다만 하는 거야.”

“네, 네…….”

나는 겁에 질려 대답했다.

“대답하는 꼬락서니를 봐서는 몇 대 패주고 시작하고 싶지만, 소중한 상품이니까 그런 절차는 생략하도록 하고.”

“네, 네. 감사합니다.”

“본론부터 얘기하면 우리 의원님이 그 꽃을 그렇게 가지고 싶으시다네?”

“아, 그렇습니까.”

“의사 새끼가 한참 패니까 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해서 말인데. 아래 좀 까 볼게. 남자끼리니까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의자에서 발버둥을 치려했지만 발까지 꽁꽁 묶여 있는지라 불가능했다. 움직이려 했지만 줄이 날카롭게 살을 파고드는 감각이 느껴졌다. 그나마 뚫린 입으로 온갖 욕설을 하고 침을 뱉어보기도 했지만 그들의 손길 몇 번에 바지와 속옷은 무참히 찢어져 그 안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뭐하는 짓이야! 도대체!”

“어이 의사, 꽃 없는데?”

아직 꽃을 잘라내고 일주일이 되기 전이라 줄기만 삐죽이 나와 있었다.    

“아, 아직 피기 전이라서 그렇습니다. 그, 자세히 보시면 줄기는 있습니다. 한 하루 이틀만 더 있으면…….”

“하, 이 새끼 헛소리 하는 것 봐라.”

“어, 형님. 진짜 줄기가 있긴 있습니다.”

“제, 제, 머리에서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하루 이틀만 기다려 주시면…….”

“하, 그래. 그럼 그동안 너희들은 감금이다. 도망칠 생각하지 마. 그땐 정말 죽여버릴 테니까.”    

그래서 이틀 말미의 감금이 시작되었다. 도윤에게서 그제야 진실을 전부 다 들을 수 있었다. 나의 꽃을 몰래 M에게 팔려던 이야기, 그리고 J와 만난 이야기까지 모두 다. 이 지경이 된 데는 역시 M의 회사가 개입되어 있었다. 꽃은 누군지 모르는 유력 정치인의 손에 들어갔고, 정치인은 아주 재빨리 꽃의 위력을 파악했다. 그는 M의 회사를 쪼았고 그곳에서 그 근원을 파고들고 파고들어 이미 꼬리를 감추었다고 생각했던 도윤을 몇 달만에 찾아냈다. 도윤은 꽃의 행방에 대해 추궁받았고 처음에는 자신의 머리 위에 난 꽃으로 이 사태를 무마하려고 했으나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안 정치인에게 더 큰 분노만 샀다. 도윤의 몸이 피투성이가 된 데는 그 이유가 컸다. 도윤은 어쩔 수 없이 나에 대한 정보를 털었고, 그게 지금 그와 내가 감금되어 있는 이유였다.    

“그럼 앞으로는 꽃을 그 정치인한테 제공해야 합니까?”

“죽기 싫으면요.”

도윤이 대답했다.

“그럼 J 씨는요?”

“모르겠습니다. 이 정치인이 알아서 처리하지 않을까요?”

“그럼, J 씨에 대한 것도 다 말하려고요?”

“꽃을 안 주면 J도 난리가 날 겁니다.”

“잠깐, 그럼 돈은요?”

“정치인이 그만큼 챙겨주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헛된 기대였다.     

“혹시 꽃을 드리면 돈도 주시나요?”

상대적으로 신체적 위협이 덜한 내가 묻자 우리를 지키고 있던 남자들 중 하나가 전화를 걸었다. 의원에게 묻는 모양이었다. 그 후 나는 대답 대신 손이나 발이 잘린 채 이곳에서 평생 살고 싶냐는 위협을 들었고 그 뒤로 돈 이야기는 입에 올리지도 못했다.     

어쨌든 다행히도 이틀 만에 꽃은 다시 피었다. 이 꽃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꽃이었던가. 나는 그 신비로운 생명에 대해 처음으로 감탄했다. 정치인은 하루 더 우리를 감금하고 꽃의 효능을 실험한 다음, 우리를 풀어주었다. 신고를 하거나 딴 맘을 먹지 못하게 미행을 각자 두 명이나 붙여둔 채로. 돈도 못 받는 데다가 신변의 위협을 계속 느끼며 평생을 살아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감옥 같았다. 나는 이 상황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막강한 정치가인지 모르겠지만 J는 빠르게 몰락해갔다. 꽃이 없는 이유도 크겠지만 그러기엔 수상한 느낌이 나는 사고들이 줄곧 일어났다. 하긴 정치인에게 꽃의 존재를 알고 있는 다른 존재는 달갑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끝내 J는 뺑소니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M과 M의 회사 또한 마찬가지의 수순을 걸었다. 일반적인 몰락이라기엔 너무도 수상한 점이 많았지만 그것은 나의 특수한 상황에서만 느끼는 것이었나 보다. J와 M, 그리고 M의 회사와 관련된 기사에는 이상할 정도의 악플 만이 달렸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리플조차 찾아보기 힘든, 무관심만이 남았다.    

“남진 씨, 잘 지내고 있어요?”

“답답해 죽겠습니다.”

“나도 감금된 거나 다름없는 상태라, 이 상황을 타개하려고 꽃에 대해 연구하다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어쩌면 이 상황을 뒤집을 수도 있는…….”

“뭡니까?”

“산샤마리아라고 알아요?”

“아, 그 꽃. 예전에 제 꽃과 비슷해서 저장해두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우리 꽃은 아마 그 꽃이 변형된 형태인 게 틀림없는 것 같은데. 아마 비슷한 식생을 마련해주면 꽃을 배양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요?”

“내 머리 위에 있는 꽃으로 최대한 사막이랑 비슷한 인공적인 환경을 만들어서 실험해봤죠. 결과는? 성공이에요.”

“제 꽃도 그 실험에 성공하면 이 지긋지긋한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가요?”

“그래요, 의원님한테도 내가 다 말해놨어요. 우리 둘이 만날 수 있어요. 지금 당장 병원으로 와요.”

내 몸이 아닌 다른 곳에서 꽃이 자랄 수 있으면 이 감시에서 해방될 수 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한달음에 도윤의 병원으로 달려갔다.    

“어디 있어요? 그, 배양에 성공한 꽃은?”

“이쪽으로 와요.”

둘이 합쳐서 넷, 우리를 졸졸 따라다니는 남자들이 매우 불편했지만 나는 거북함을 꾹 참으며 도윤에게 말했다.     

도윤이 안내한 방은 건조기가 돌아가고 있어 건조하고 뜨거웠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아름답게 핀 하얀 꽃 두 송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와, 이거 진짠가요?”

“아무렴 진짜죠.”

내가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자 도윤이 팔로 나를 저지했다.    

“잠깐만요.”

“왜요?”

“J 씨가 죽은 건 알고 있죠? M씨도.”

“네, 참 안된 일이죠.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둘이 왜 죽은 것 같아요?”

“사고죠. 뭐,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요.”

“꽃에 대해 알고 있어서 죽은 거예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하긴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 정치인의 입장으로썬 꽃의 존재를 다른 정치인이 알기라도 하면 꽤나 골치 아파지겠죠.”

“그럼 다음 차례는 누구일 것 같아요?”

“글쎄요. 요새 감금당하느라 골치가 아파서 거기까진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    

그리고 갑작스럽게 온 살을 헤집는 듯한 엄청난 통증이 목에서 전해졌다.    

“다음 차례는 나야.”

도윤이 말했다. 나는 손을 들어 목을 만졌다. 목에서는 엄청난 양의 미끌미끌한 것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피였다.    

“이 엉터리 것을 만들어 내느라 고생 좀 했지. 그자를 속이고, 널 유인하기 위해서 말이야.”

도윤은 계속 말을 하며 사정없이 나의 목을 찍었다.     

“네가 없어지면 날 죽일 이유도 없어져.”

흐려지는 정신 속에서도 도윤의 마지막 말은 나의 귀에 박혔다.    

우당탕, 우리를 감시하던 남자들이 그제야 정황을 알아채고 방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는, 꽃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 이번에도 오래 못 버텼네. 이번엔 또 누구를 새 주인으로 해 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