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 베토벤 소나타 공연 후기
인생의 중요한 챕터 중 하나를 넘기고 있던 작년 6월, 엄청난 힐링과 감동을 선물해 주었던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가 다시 한국을 찾았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와 함께. 기쁘게도 그 마지막 날인 오늘, 베토벤 소나타 30, 31, 32번을 들을 수 있었다.
늘 하고싶지만 평일 공연엔 못 했던 거, 공연장 일찍 도착해서 차 마시며 프로그램북 보기. 오늘은 음악당 로비에서 페퍼민트 차와 함께 이 글을 읽으면서 다가올 공연을 기다렸다.
https://tv.arte.co.kr/music/theme/1522
7일에 걸친 베토벤 소나타 전곡 대장정의 마지막 날. 인터미션 없이 세 곡 연달아 연주하는 날이었고, 마니아들이 올 것 같다는 기대만큼 객석의 매너가 평소보다 좋은 듯했다. C블록 중간의 정면에 보이는 피아니스트와 그에게 맞춰진 조명에 집중하며 설레는 사이 공연이 시작됐다.
Ludwig van Beethoven
Piano Sonata No.30 in E Major, Op. 109
Piano Sonata No.31 in A♭ major, Op. 110
Piano Sonata No.32 in C Minor, Op. 111
Encore
Franz Schubert - Impromptu Op. 90, No 4
베토벤 소나타 30번. 76세 노장의 손은 놀라울 정도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연주를 만들어 낸다. 베토벤의 현신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분인데, 이 곡이 나왔던 1800년대 초로 돌아가서 어느 저택의 볕이 잘 드는 방 안에서 연주하는 중년의 아저씨와 그 주변을 둘러싼 호기심 가득한 얼굴의 꼬마 아이들이 떠올랐다. 베토벤인지 부흐빈더인지 상상 속 그 시대인지 아니면 지금의 저 핀조명 옆에 나의 의식이 다른 관객들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있는 건지. 구분할 새도 없이 그 밝은 느낌에 빠져들었다. (밝은 소나타라고 하면 모차르트가 떠오르는데 그런 밝음은 아니다.)
공연장에서 취학인지 미취학인지 그 어려운 관문을 뚫고 들어왔지만 가만히 앉아있지 못해 주변 어른들의 애를 태우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쉽게 상상이 안 가지만, 이런 연주를 바로 앞에서 듣는다면 아이들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기쁘게 감상하지 않을까. 혹은 아이들이 옆에서 신이 나서 춤을 추면 더 멋진 연주가 되지 않을까.
부흐빈더는 평소에 분명 웃음이 인자한 아저씨일 거야. 좋은 연주자니까 예민하고 섬세하겠지만 아이들에겐 따뜻하게 웃어줄지도 몰라,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곱고 따뜻하고 품성이 인자한 연주가 나오겠어. 이런 생각으로 연주를 따라갔다. 숲속 디즈니의 어느 공주 곁에 둘러앉은 나비, 노루, 토끼, 다람쥐 등이 생각난 순간 내면에 들려오는 목소리, 상상하는 장면이 너무 식상해! 서정적인 연주와 독주에 주목된 조명에서 으레 떠오르곤 하는 이 장면은 절레절레 내적 고갯짓으로 털어버렸다.
소나타 31번의 연주는 더 좋았고 더 익숙했지만, 아쉽게도 오늘의 리뷰는 바로 요주의 32번 연주로 넘어가야 한다. 연주는 좋아도 최근 누적된 야근 피로에 잡아먹히려던 그 순간 시작된 소나타 32번. 이게 독주가 맞나요. 분명 오케스트라가 들리는데. 1악장에서 거대한 현들이 몰아치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바이올린 줄 하나하나가 풀잎이 된 듯 키만큼 자라난 풀잎이 무성한 들판으로 장면이 바뀌었다. 해가 질 듯, 무슨 일이 생기려는 듯 어스름한 장면. 바람 세차게 부는 들판을 한 소녀가 뛰어 내려온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 숨 쉴 틈도 없이 경사진 아래로 달려 내려간다. 소녀인지 사슴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총을 든 사람이나 포식자는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는 거지? 누구에게 쫓기는 거지? 있는 힘껏 들판 아래로 내달리는 소녀를 초조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이윽고 갑자기 전환된 연주. (이때가 아마 2악장이었나 보다) 들판을 다 내려온 건지, 물가에 다다른 건지, 안전한 곳에 온 건지 전혀 구분되지 않는다. 그때 문을 열고 어디론가 들어가는 소녀. 고요하고 어두운, 아무도 없는 대저택인가? 아니면 갑자기 등장한 소녀가 주목받게 되는 무도회장인가? 연주가 어느 장면으로 끌고 간 건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워, 짧은 상상력으로는 떠오르지 않는 곳 중에 있겠거니 알아내려고 애써본다. 알 수 없는 곳으로 의식을 끌고 가는 연주. 여긴 어딘지 우왕좌왕하는 사이 소녀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앤 해서웨이가 들여다봐서는 안 될 메릴 스트립의 사생활이 있는 위층으로 향하듯, 불안하면서도 끌리는 느낌. 분명 어둡고 긴장되는 느낌인데 마치 웨지힐을 신고 오르는 계단처럼 의외로 편안하단 생각이 든 찰나, 이를 기점으로 장면이 바뀐다.
이제 계단을 혼자 오르지 않는다. 아까 절레절레 의식에서 털어버렸던 숲속 친구들이 다시 나타나서는 토끼, 다람쥐, 나비 등이 주변에 하나씩 모여들고, 한 걸음씩 발을 내딛는 자리에 초록빛 풀과 함께 밝은 빛이 비친다. 이제는 설레는 마음으로 같이 계단을 오른다.
이윽고 장면이 다시 들판으로 바뀐다. 경사진 들판, 키만큼 높고 무성한 풀 사이를 아까처럼 달려 내려오는 소녀. 여전히 포식자는 보이지 않는다. 쫓기는 게 아닌가? 다시 보니 소녀가 자신의 의지로 달려 내려가는 듯하다. 잠시 나의 현생이 겹쳐 나타난다. 좋은 결과로 다다를 수 있을까? 쫓기는 게 아니었다는 안도와 응원을 담아, 달리는 소녀를 다시 바라보려는 시점에 연주는 끝이 난다. 그리고 도착지는 좋은 곳이었다는 확신을 심어준다. 엄청난 몰입감 속, 순식간에 끝난 연주 끝에 놀라움과 안도감이 남는다.
관객들의 기립박수 속 마이크를 잡은 부흐빈더. 고맙단 인사와 함께, 한국엔 젊은 관객이 많아 좋다고 이야기한다. 내년에 다시 온다는 인삿말에 모두 탄성.
앵콜은 작년과 같은 슈베르트 즉흥곡 Op. 90, No 4. 아는 곡이라 더 재밌다.. 였는데 이런 곡이었다고? 엄청나게 빠른데 숨차지 않고, 어린 시절 감정을 엄청나게 담아서 건반을 광광거렸던 부분은 주요 선율만 남기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빠르고 조용히 지나간다. 나 감정 과잉이었어? 극F야? (맞음) 하는 와중에도 너무나 매끄럽게 흘러가는 연주. 이음새가 탁월하다. 내가 본 악보는 악보가 아니었구나. 곡을 완전히 재해석해 주시고는 열렬한 환호와 기립박수 속에 멋지게 퇴장. 내년에도 꼭 오셔야 해요.
“공연 어땠어?” 질문에 ‘좋았어!’만 떠오르던, 어안이 벙벙한 공연 직후. “속도가 엄청나더라, 80분은 걸릴 곡을 앵콜까지 해서 75분 만에 끝내다니. 그런데 담백했어.” 얘기를 듣고 나니 비로소 정신이 든다. ‘그치? 들판을 막 달려 내려갔다니까. 엄청 빨랐는데 연주가 부담스럽거나 과하지 않고 자신을 내세우는 것도 없었어. 근데 그 안에 드라마가 있더라니까.’ 오늘 연주에선 속도가 놀라웠는데, 정작 연주 중엔 속도 자체는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연주의 흐름과 몰입감이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주자가 아랑곳하지 않더라니까. 작년에도 그런 느낌을 받았어.’ 산만한 객석 분위기에도 동요하지 않고 그대로 연주를 이어가는데 어느새 엄청난 흡인력으로 사로잡고 있던. “그게 연륜인가 봐”
이후 공연장 바로 앞에 저녁을 먹으러 가서는, 입으로 가져가는 음식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며 감상을 공유했다. 소나타 32번이 슬펐더라는 상대의 이야기. ‘난 어스름하다, 밤이다 정도로는 생각했지만 슬프지 않았어. 왜였을까?’ 그러고도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감정 위주로, 짧은 삶의 경험을 토대로만 연주를 느끼고 기억하는 게 아쉽고, 기록하다 보면 한계도 많이 느껴진다. 마치 말하는 법을 아직 몰라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울음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처럼. 공연 전에 작곡가와 음악, 연주자 공부를 많이 하고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들고 그게 오늘이길 바랐는데 최근에 또 바빠져서 오늘도 아쉬운 채로 공연장에 갔었다. 그런데 오늘은 동료가 있었고 여러 감상과 이어지는 이야기를 잔뜩 나눈 덕분에 몇 배는 더 풍성한 시간이 되었다.
이 아름다운 연주, 장면, 시간, 기분. 또 잊겠지만 언젠가 꺼내보고 싶어서, 피로에 잠겨 저리는 온몸과 정신을 부여잡고 기록해 본다. (나의 기억력은 몹시 짧아서 바로 적지 않으면 반도 남지 않아, 이 피로를 이겨내야만 한다) 지난주 부흐빈더 공연 후기가 Arte TV에 올라왔길래 이걸 다 쓰고 보려고 아껴두었다. 무더운 여름밤 에어컨도 안 켠 채로 타이핑하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났네. 몇 년 뒤에 이날을 떠올리며 글을 열어볼 날이 기대된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분에 넘치게 행복한 삶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