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육아 입문
철원으로 이사 갈 때는 출근하기 전에 아이를 봐줄 집부터 찾았다.
마치 친할머니처럼 세 살짜리 정원이와 갓 100일이 지난 지후를 봐줄 분을 구했다.
처음엔 낯을 가렸지만 정원이도 큰엄마 큰엄마 하면서 잘 따랐다.
부모가 직접 키우고 있지만, 정작 대부분의 생활을 같이 하고 있지 않는 우리 가족...
그 안에서 느낄 허전함을 어른은 말로 표현이라도 하지...
세 살짜리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어린이집에 갈 때 투정 부리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린이집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선택한 어린이집도
출입구에서 아이와 한참 눈물 섞인 헤어짐을 하고 나면 어린이집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부모가 있을 때만 아이가 투정을 부린다고 한다.
막상 헤어지고 나면 아이가 잘 논다고 하는 선생님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원이는 6개월을 어린이집에 다녔다.
그러던 중, 어린이집 학예발표회가 있었다.
아이가 평소 즐겨 부르던 노래가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고,
정원이가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무대에 올라 율동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는 우리 부부는 경악했다.
어느 순간부터 정원이가 그 노래를 왜 그렇게 싫어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고,
인형들을 쭉 늘어 세우고는 비뚤게 앉아있다고 혼을 내던 정원이의 모습도 떠올랐다.
두 시간 넘게 계속되는 행사에 부모들은 연신 사진을 찍고 박수를 치고 있었다.
원장의 맺음말과 함께 그 많은 아이들이 인사를 하고 상장을 받는 내내...
정원이는 무대 위에서 울고 있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내려올 수가 없었다.
무대 뒤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싸늘한 바닥 위에 돗자리 위 차가운 김밥이 널브러져 있었다.
급하게 아이를 데려와서 꼭 안아주고는 새로운 어린이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철원지역에서 최초로 공동육아를 지향하는 어린이집.
그곳은 아주 허름한 건물에 북향으로 해가 잘 들지도 않았다.
좁디좁은 단층 건물에 싸늘해 보이기까지 한 외관에 놀이터조차 없는 곳이었다.
원장 선생님은 서울에서 오랜 시간 공부하신 분이라고 들었다.
스타렉스에 아이들을 태워서 등 하원 시키는 원장님의 모습은 좀 도도해 보였다.
큰엄마가 전에 봐주던 아이들도 이 어린이집에 다녔다고 한다.
들어보니 문화 소외지역의 부모를 교육시키겠다는 철학을 가지고 어린이집을 개원한 분이라고 했다.
별다른 프로그램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등원하면 함께 등산을 하고 자연에서 뛰어논다고 했다.
대여섯 명의 적은 인원이지만 믿을 만한 먹거리로 간식을 주고 점심밥을 챙겨주었다.
이따금 아이들과 함께 대중목욕탕도 가고, 주말엔 부모와 함께 서울로 나들이도 갔다.
그렇게 원장 선생님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 하나만 믿고 어린이집을 선택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난 후,
우리 부부는 원장 선생님과의 대화로 큰 충격에 빠졌다.
아이의 정서불안 증상의 원인은 일반 어린이집의 무관심과 잘못된 교육방식에도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부부의 불화 때문이라고 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저 선생님이 우리 부부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감히 우리 부부를 제멋대로 평가하지?
우리 부부는 결혼 이후 4년 동안 싸운 적도 없고, 아주 모범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는데...
도대체 선생님은 우리 부부의 무엇을 보고 이렇게 말하는 거지?
괘씸하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더 들어보기로 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는 그 부부가 행복하다 말다를 결정할 수는 없어요.
일상의 생활 속에서 부부가 어떤 상처를 받고 어떻게 서로에 대해 줄다리기를 하는지에 따라
그 사이 첨예한 갈등이 생기고 이는 곧 뇌파와 정서를 통해 아이에게 전달되지요.
아이는 이런 불안을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정서적 결핍을 호소하게 된답니다.
내가 볼 때 정원이네는 부부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갈등을 해결하면 아이는 저절로 나아질 것입니다”
이 무슨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인가!!
우리 부부에게 미묘한 갈등이 느껴지고 줄다리기가 있다니!!
도무지 수긍하기가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렇게 어린이집 원장님과 우리 부부의 상담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