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재단 Weekly 연재 - 당신 안의 썸띵 ④
[본격생활예술프로젝트] 예술하자 Let's ART
서울문화재단 Weekly 연재 - 당신 안의 썸띵 ④ 예술가가 될 수 있다 (2017. 9)
2014년 학자, 교수, 시인 등 각기 다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다.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바로 ‘예술’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임에 ‘옥수바람’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주로 ‘생활예술’과 관련된 책을 읽으며 자유로운 토론을 즐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몇 가지 담론을 정립하기에 이른다.
‘생활예술이란 무엇인가?’
옥수바람은 생활예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시민 혹은 주민이 자신이 살고 있는 일상생활 속에서 주체적으로 수행하는 예술적 활동’. 그리고 이렇듯 생활예술을 정의내리는 과정에 있어 ‘생활’의 중요성과 ‘예술’의 의미에 더 깊은 의문을 갖게 된다.
그들은 우선 그 답을 정치 철학자 ‘찰스 테일러’에 이야기에서 찾고자 한다. 찰스 테일러는 근대의 사회적 진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이 ‘일상생활의 긍정’에 있다고 생각했다. 전통 사회에서의 사적인 삶이 사회적 위계질서의 하위구조로 취급되었다면, 개인의 행복과 권리가 강조되는 근대 사회에서 삶의 의미는 보다 인간적인 차원으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평범한 삶 속에서 자아를 실현하고 행복을 구현해내는 것. 이처럼 소소한 일상생활을 중요시하는 인간의 내적 변화가 근대 사회를 만드는 뿌리가 되었다는 의견이다. 이러한 찰스 테일러의 견해에 동의한 그들은 다음 질문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의 긍정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에 옥수바람은 18세기 사회 전반에 나타난 ‘감정을 숭상하는 경향’에 주목한다. 이러한 경향이 뜻하는 것은 ‘일상생활의 긍정’이 ‘감정의 긍정’과 함께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의 긍정을 이끌어낸 것은 다름 아닌 문학, 예술이라는 사실을 쉽게 유추해낸다. 18세기 사람들은 주로 소설 속 주인공의 감정을 함께 느끼며 긍정적인 삶의 요소를 발견했던 것이다.
“예술, 그 중에서도 문학은 이 감정에 대한 숭상이라는
근대적 성향을 전파한 가장 중요한 매체였다.”
-옥수바람, 생활예술 연구회
그들이 살펴본 바에 따르면, 전근대 예술은 소위 ‘예술가’라 불리는 소수의 엘리트들이 독점하는 활동이었다. 하지만 근대 사회에서의 예술은 모든 개인들이 자신의 감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근대의 글쓰기를 ‘민주주의적 글쓰기’라 정의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글쓰기의 민주주의는 소설 속 영웅들의 삶을 전유한다든지, 스스로 작가가 된다든지, 또는 공동 관심사에 대한 토론에 몸소 참여하는 것 등을 통해 각자가 자기 몫을 챙길 수 있는 자유로운 문자 체제이다. 이것은 말의 행위, 이 행위가 형태를 만드는 세계와 이 세계를 채우고 있는 인민들의 역량들 간의 새로운 관계, 새로운 감성의 분할과 관계된다."
-자크 랑시에르, 프랑스 철학자
이렇듯 근대의 글쓰기를 새롭게 정의한 자크 랑시에르의 이야기까지 살펴보게 된 옥수바람은 근대의 예술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낸다.
“이제 근대의 예술은 특정 소수의, 특정한 기예가 아니다.
그것은 말할 수 없는 자와 말할 수 있는 자의 구별,
올바른 재현과 올바르지 않은 재현 사이의 구별을 위협한다.
근대의 민주주의적 예술을 통해 이제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으며,
자신의 감성적 역량을 가지고
공적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다.”
-옥수바람, 생활예술 연구회
옥수바람의 발견처럼 예술은 이제 더 이상 어떤 틀에 갇히지 않는다. 어떠한 구별과 경계 없이 누구에게도 어떤 형태로도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듯 예술에 대한 깊은 사유를 지켜본 우리 역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술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 역시 하나의 예술이었다는 것을. 바로 ‘옥수바람’ 그 자체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