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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 Dec 30. 2022

[에세이] 버리고 버려진 후 남아있는 것들


"성심당 빵이 그렇게 맛있나? 한번도 안 먹어봤는데." 


생각 없이 뱉은 한 마디에 친구는 망설임없이 차를 돌렸다. 우리는 그렇게 성심당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30분 가량이 지나 우리가 성심당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빵을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크리스마스 전날이어서 그런지 유독 사람들은 들떠 보였고 꼭 빵을 사야만 하는 목표를 지닌 것처럼 보였다. 지금 이 시간 빵을 사러 온 사람들은 분명 잘 살고 있는 사람들,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임이 분명했다. 별로 그런 것같진 않은데, 나도 그런 사람들 틈에 있었으니 같은 부류의 사람일지도 모른다. 


연례행사처럼 성심당을 대표하는 빵 한 상자를 구매한 뒤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집게를 들고 빵을 골라 담기 시작했다. 그때 내 마음속에는 엄마의 얼굴이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언제나 양손 가득 사랑하는 딸들을 위해 달콤한 과자, 빵, 디저트 류를 사가지고 오는 다정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달콤한 것, 그중에서도 유독 빵을 좋아했다. 다른 것들을 다 포기해도 홍시와 빵만큼은 종종 엄마 곁에 머물렀다. 나는 그런 엄마와 며칠 전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울부짖으며 싸웠고 엄마를 남겨둔 채 뒤돌아서서 거리를 성큼성큼 걸어 갔었다. 하지만 모녀 간의 싸움도 칼로 물베기인듯 그런 엄마를 떠올리며 빵을 고르고 있었다. 


엄마는 무슨 빵을 좋아할까? 야채가 잔뜩 들어가 야채빵을 집었다. 생크림 빵도 집었다. 그리고 엄마가 아직 한번도 먹어보지 못했을 법한 빵들을 추가로 골랐다. 그 틈에 나를 위한 샌드위치도 하나 집었다. 아빠를 위한 팥빵도 하나 눈치를 보며 탑승했다. 


결재를 마치고 두둑해진 빵 봉투를 보며 이제 막 빵 쇼핑을 마친 내가 조금은 생소했다. 이렇게 빵을 많이 사본 적은 또 처음이었다. 며칠 전에 분노한 만큼 빵을 담아 든 내가 아무래도 성격 이상자 같기도 했다. 엄마를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은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그녀를 향한 연민이었을까? 사실은 본능에 가까웠다. 나는 이성이 아닌 거부할 수 없는 감정이 만든 본능적 이끌림으로 어쩔 수 없이 빵을 담아든 것이다. 


집에 도착해서 김치냉장고에 모든 빵을 넣었다. 엄마는 지금 잠시 병원에 계시니까 내일 들러 모든 빵을 전달할 것이다. 그 전에 오늘 저녁은 빵이다. 아빠에게도 몇 개의 빵을 주고 나도 빵을 먹었다. 그렇게 빵과 함께한 하루가 저물어갔다. 


다음 날, 나는 크리스마스 상자에 담긴 빵을 한번 더 먹기 좋게 포장했다. 가위로 자르고 개별적으로 나누어 담고 병원으로 향했다. 카운터에 엄마 성함을 적어 맡기고 마주치지 않으려 돌아 나왔다. 


엄마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글씨를 보고 내가 왔다갔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엄마와 직접 이야기 나눈 것은 아니고 어떻게 전해 들었다. 엄마는 빵을 맛있게 먹었을까? 무슨 생각으로 먹었을까? 나는 엄마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엄마는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이렇게 다른 우리는 왜 모녀로 만났을까? 외할아버지는 왜 딸들에게 빵을 사다주었고 엄마는 왜 빵을 좋아하게 된 걸까? 싫어하거나 질릴 수도 있었을텐데. 그리고 왜 친구는 나를 그 상황에서 성심당에 데려간 것일까... 


크리스마스였다. 일부러 아무런 약속을 잡지 않았고 아빠와 엄마와 나는 아무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빵으로 연결된... 여전히 엄마에게 분노하고 있었던 그런 이상한 크리스마스. 눈이 내렸던가 추웠던가는 기억이 나지 않는. 다만 어두컴컴한 저녁에 빵 봉투를 들고 엄마에게 향했던 기억만이 남겨질 것이다. 


0과 1이 만나 0.5가 아닌 2로 태어난 내가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2임을 천천히 알아가고 0과 1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의 단점을 포용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 사이 내 단점을 들여다보며 별반 다르지 않네 생각한다. 엄마가 빵이 아닌 다른 걸 좋아했더라면, 그러니까 조금 더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좋아했더라면 우리는 함께 웃으며 저녁을 먹는 크리스마스를 보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없지만 빵 봉투 위 내 삐뚤빼둘한 글씨는 망설임없이 엄마를 적어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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