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
난생처음 독립을 하였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혼자 살아보는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늘 미루다가 부랴부랴 짐을 챙겨 나왔다. 사실 집을 보러다닌 것은 벌써 몇 년이 되었다. 아파트에서 거의 한평생을 살아왔지만 사실 나는 아파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블럭처럼 칸칸이 쌓아 올린 정형화된 공간. 우리는 그곳에서 같은 삶을 각기 다르게 살아간다. 내 위에 누가 있는지 내 아래에 누가 있는지도 잘 모른 채 옆집이 이사를 가고 이사를 오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그렇게. 과연 집은 내게 어떤 공간이었을까?
집을 알아보면서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나는 공간에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 나는 층고가 높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 나는 자연 속에 파묻혀 살고 싶은 로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 오랜 시간 살아온 동네가 굉장히 살기 좋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의미로 계속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은 사람.
그래서인지 정말 집을 구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심지어 어느 외진 곳에 척하니 지어진 한옥을 혼자 보러가는 날 발견했을 때... 나는 과연 어디에서 살아가야 하나 생각했다. 나는 집값같은 건 모르겠고... 한적한 곳에서 음악을 마음껏 크게 들어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고, 종종 새나 벌레들의 소리와 함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싶고, 요리하다가 냄비를 다 태워먹어 연기가 펄펄 나도 이웃집에서 신고가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을 원했고. 수영을 좋아하는 내가 개인 수영장을 갖고자 하는 것이 그렇게 큰 욕심일까 거듭 생각했다. 수영장이 별 건가? 그냥 크게 웅덩이 파서 깔끔하게 타일을 바르고 물을 고이게 하면 그 뿐인데... 어쩌다 수영장을 소유하는 것이 부가 되었을까? 이런 세상이 과연 맞는 세상인가에 대한 반발심을 키워갔다.
그렇게 집을 알아간다는 건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찾는 과정이었다. 나는 혼자 살고 싶기도 했고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 살고 싶기도 했고 친구들과 여럿이 살고 싶기도 했다. 가족들과 함께 살되 층층이 나뉘어진 공간에서 함께 또 각자 그렇게 살아가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공간은 이 사회에서 지나친 사치였다.
결국 집은 부의 척도, 내가 사는 장소가 나의 또 다른 스펙이 되는 현실. "어디에 사세요?"라는 질문이 조심스러워지는 이유. 사회에서 만난 누군가에게 "저는 경기도 00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답하자 서울로 출퇴근이 힘들테니 되도록 일찍 퇴근하라는 따스한 말을 들은 건, 그때 뿐이었다.
그런 내가 나와 닮은 집, 오직 나만이 누릴 수 있는 공간, 누구의 방해도 없이...를 찾아 헤매이다가 그렇듯 평범한 7평의 오피스텔, 신축이기에 모든 것이 깔끔하지만 또 다른 지극히 보편적인 공간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보편적인 공간이 지금의 나에게는너무나 특별하다. 난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주의이다. 내가 구입한 옷, 소품, 사람들, 길거리, 스쳐가는 바람... 그리고 내가 살게 된 이 집, 1414호. 간판을 보는 순간 '여기구나, 내가 처음으로 혼자 살아볼 집이'라고 느꼈던. 서향이어서 늦은 오후부터 햇살이 들어오고 운이 좋은 날에는 붉은 해가 타오르듯 지는 것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나만의 공간, 나만이 들어설 수 있는 공간.
이곳에서 나는 여느 때보다 아침 일찍 일어나고 죄책감없이 낮잠을 자며 듣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틀어놓고 편한 옷으로 나만을 위한 요리를 한다. 창밖의 투박한 소리로 외로움을 달래고 그간 미루어두었던 모든 일을 하나씩 처리한다. 나에 대해 알아가는 이 모든 시간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도 그 끝도 하루하루 기대되는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