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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 May 11. 2022

[에세이] 불확실성의 원리

불확실한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잖아요? 


보다 확실한 것을 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듯하다. 확실한 건 안정감을 주니까, 영원해 보이니까.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가지지 못한 것을 끊임없이 갈망하는지 모른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 때문일까? 이 세상은 단 하나의 정답으로 규정지으려는 것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 글에서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이 지적했듯 확실한 것을 선호하는 인간에 의해 보다 명확한 정답이 있는 학문인 수학과 과학 위주로 발달한 이 사회의 문제점을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의 주장대로 정답이 없는 것이 훨씬 많은 이 사회에서 모든 것을 수치화하려는 인간의 시도가 야기한 수많은 문제점에 동의하는 바이지만 그보다 나는 불확실성이 주는 유쾌한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불확실성의 원리는 하이젠베르크에 의해 도출된 양자역학의 근간을 이루는 이론으로, 전자를 비롯한 미시적인 세계에서는 그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본질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원리이다. 이 이론을 내가 전부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의에 위안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아주 가깝게 들여다 보면, 태초부터 모든 것은 불확실성을 띤다는 이야기니까. 즉, 불완전한 나라는 존재가 잘못되었지 않았고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사실을 보다 확실하게 과학적으로 증명받는 기분이 든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나는 종종 확실한 것을 갈망해왔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는 다소 이상적인 타입이기에 마음이 가는대로 좋아하는 일을 쫓아 프리랜서가 되었다. 하지만 구조주의에 의해 확실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확실하도록 강요받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고 그때마다 몹시 괴로워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추상화를 그리려던 화가가 정밀화를 요구받는 것과 같았달까? 어쩔 수 없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정밀화를 밤새 그려보지만 화가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그는 마침내 결국 더욱 추상적인 형태를 그려내고 말 것이다. 하지만 한켠으로는 정밀화를 잘 그릴 줄 알아야 그 너머 어딘가에 있는 추상화 또한 잘 그려낼 것임을 알기에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기도 하다. 결국 나는 지금 세밀화를 그리는 추상화가가 되어 있으니까. 

요즘 이상과 현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다행인 것은 나에게 현실적인 부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꽤나 현실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주변을 당황시키기도 하니까.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상에 조금 더 끌린다. 나에게 이상은 불확실한 무엇이다. 아직 도달하지 못한 세계, 하지만 분명히 그 존재가 느껴지는, 그래서 더욱 도달하고 싶은 세계, 언젠가는 현실이 될 수 있는 것. 그래서 불확실함은 지금의 나에게는 불완전하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결국 이상과 현실이 분리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임을 알기에, 나의 이상이 현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려는 시도임을 알기에, 그러니까 이상적인 내가 결코 잘못되지 않았다는 위안으로 현실을 딛고 살아가고자 한다. 지금은 그래도 되는 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나의 이상적인 시도가 한 차례 사그라들 때즘 나는 지금보다는 더 어른이 되어 현실 세계를 살아가고 있겠지. 그때의 나도 한때 누구보다도 새로운 세계를 꿈꾸던 이상적인 아이였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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