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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 Jan 22. 2023

[에세이] 우리 화해하자


[10분 정도 늦을 것 같아, 미안해 곧 갈게]. 내가 알던 A는 전혀 늦는 타입이 아니었다. '이런 모습은 처음인데'라고 생각하면서 괜찮으니까 천천히 오라는 답장을 보냈다. 2년만의 만남이었다. 그동안 사람으로부터 고립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가장 가깝던 친구마저 밀어내고 나만의 시간을 가졌었다. 하지만 인간은 밀실과 광장을 오가는 존재가 아니던가? 나는 결국 세상 밖으로 나왔다.


[신년회 어떨까?] [좋지] 오랜만의 연락에 흔쾌히 응한 A가 혹시라도 안 본 사이 변해 있으면 어떻게 하지 조금 걱정을 하면서도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니까 괜찮을 거라고 위로했다. 마침내 우리는 쌀국수 집에서 만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얼큰한 쌀국수를 마주한 채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대로네?] [그럼 그대로지] [여기 강남역 지점에서 먹었는데 맛있더라] [응, 맛있네]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우리는 조용히 식사를 마쳤다.


[여기 옆에 화양연화라는 카페 있던데 거기로 갈까?] [그래] 어떤 장소라도 상관없었다. 그 안에 담기는 내용이 중요했기에 우리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카페로 향했다. 그런데 순간 화양연화의 영화 내용이 떠올라 여기 말고 다른 곳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행(?)인지 카페에 자리가 마땅치 않아 우리는 그 옆에 다른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어떻게 지냈어?] 친구라는 존재는 참 오묘하다. 때로는 가족처럼 의지하고 때로는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때로는 순식간에 등을 돌려 크게 분노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나의 근황이 순식간에 너의 상황으로 연결되는 겉잡을 수 없는 일들. 그 때문에 고립되는 시간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2년간 있었던 일들을 나누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카페 문이 잠시 열렸고 A는 외투를 입으며 [추워서 입는 거야, 가려는 거 아니고]라며 나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A는 언제나 나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곤 했다. 복잡하고 정리되지 않았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질 수밖에 없는 깊은 내면의 이야기들. 나는 어느 순간 A에게 너무 깊은 이야기는 줄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의 이야기들을 전달했다. 우리는 1년간 치열하게 살았고 소소한 변화를 가졌으며 이전보다는 안정된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것 같았다.


[싸이월드 복구됐잖아, 거기에 너 사진이 유독 많더라] A는 내 사진을 펼쳐 보여주며 은은하게 웃었다. [나도 그것들을 다 기억하고 있어] 우리는 손쉽게 과거와 연결되었다. 학창시절 두 번 정도 크게 싸운 순간에 [내가 미안했어!]라고 외치며 성큼성큼 다가와 나를 와락 껴안던 A. 2년간의 거리를 둔 시간에도 선뜻 나와준 신년회 자리에서, 나는 스쳐가는 수많은 인연 중에서 너만큼은 꼭 지키고 싶다고 생각했어.


[우리 10분 뒤에 일어설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나는 자리를 마무리했다. A는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번의 만남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일지 내심 기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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