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일상을 가르는 결정적 한 방
1일 차, 2018년 2월 17일
① 애견 호텔
② 인천 국제공항
③ 비행기
④ 호놀룰루 공항
⑤ 알라모 렌터카
⑥ 코트야드 바이 매리어트 오아후 노스 쇼어
⑦ 푸드랜드
⑧ 롱스 드럭
⑨ 숙소에서 첫날밤
① 애견 호텔
여행은 설렘으로 출발한다. 일상이 설레는 사람은 여행을 가지 않아도 좋다. 예컨대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일상이 ‘설렘’ 그 자체일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신혼 ― 여행은 형용모순의 가능성이 있다)
하와이 여행 1일 차, 날아갈 듯 상쾌했다. 아내는 비행 출발 시각을 고려한 동선을 짰지만 나는 반대했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 여행은 시작됐다. 1분 1초가 아깝다. 무조건 진격이다.
모든 짐을 차에 실었다. 두고 가는 물건이 없는지 한 번 더 확인했다. 꽃개와 케이지까지 실은 차는 꽉 찼지만 상관없었다.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애견 호텔에 도착했다.
꽃개를 두고 오는데 속이 다 후련했다. 녀석의 쉬야를 위해 새벽에 일어날 필요도 없다. 그것만으로 알차고 특별한 여행이다. 오해를 살 수 있는 표현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이런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가족을 사랑합니까?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사랑은 연인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사랑입니까?
꽃개는 ‘애견’의 개념보다 ‘식구’라는 개념에 편입된 지 오래고 이해관계가 ‘우리’ 인간과 현저히 다르다는 점에서 ‘동거인’의 개념으로 갈아탄 지 오래다. 꽃개는 개라기보다 ‘개의 형태’를 한 동거인에 가깝다. 우리는 같이 산다. 늙어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아갈 따름이다. 이 명제는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좋든 싫든 함께 간다는 의미다. 아내도 다음에 또 개를 키울 때 ‘꽃개’를 키울 거냐고 물으면 고개를 젓는다. 아내의 애견 라이프는 소형견이었다.
꽃개야, 당분간 안녕이다. 열흘 동안은 절대 보는 일 없도록 하자.
아내는 꽃개를 살뜰히 챙겼다. 봉지에 쓴 글씨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아내는
한 봉지에 한 끼씩 다시 포장했다.
애견 호텔에서 나온 우리는 라마다 호텔로 차를 몰았다. 아내와 아들과 짐을 내려준 뒤 나 혼자 아파트로 돌아갔다. 걸어갈 수 있는 곳에 공항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가족이 반납한 아웃도어 점퍼와 차 키를 집에 두고 나오면서 한 번 더 점검했다. 작년 여행 때처럼 카페라떼를 두고 가는 일도 없이 완벽했다.
겨울이었다. 짐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얇게 입었지만 안 추웠다. 아내가 전화해 아들이 늦게 오는 아빠를 걱정한다고 알렸다. 횡단보도 신호등에 맞춰 뛰었다. 공항버스가 정차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내가 손짓해 나도 손짓했다. 버스엔 우리만 탔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전까지 더 탔지만 승객은 십여 명이 안 됐다. 버스는 쾌적했다. 항상 출발은 좋다. 떠나는 건 의외로 기분 좋은 일이다.
② 인천 국제공항
1 청사에서 내렸다.(대한항공은 2 청사, 진에어는 1 청사) 가방을 하나씩 끌고 갔다. 진에어 줄은 길었다. 항상 길다. 짧은 진에어 줄은 경험한 적 없다. 직원한테 물으니 1시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내가 줄을 서고 아내는 와이파이 에그를 빌리러 갔다. 아들이 나한테 스마트폰을 주고 아내를 따라갔다.(내 3G 핸드폰은 집에 있다)
줄이 빠르게 줄었다. 뒷사람이 카트를 밀고 다녀 찔러대는 것도 없었다. 개선된 코리아 웨이브에서 라인 보드(줄타기)를 즐기는데 줄이 너무 빨리 줄었다. 아내한테 전화해 빨리 와야겠다고 하자 에그 빌리는 데가 멀다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인천 국제공항은 너무 크다. 큰 게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아내와 아들은 아슬아슬하게 나타났다. 한숨 돌린 아내가 가방에서 예약 내용이 인쇄된 서류를 꺼내 보여줬다. 빨리 온 덕에 뒤가 벽인 좌석을 배정받았다.
티켓을 끊고 가방을 넘긴 우리는 공항 끄트머리에 있는 버거킹에 갔다. 화장실에 다녀와 테이블을 닦는데 아내 줄이 그대로다. 앞에 있는 젊은이들이 주문을 한 시간 동안 했다. 한 노인은 직원한테 영수증을 흔들어 보이며 왜 안 주냐고 따졌다. 유심히 살핀 직원이 버거킹 영수증은 맞지만 '저희 가게' 영수증이 아니라고 하자 슬그머니 사라졌다. 얌전히 대기 중인 아내를 밀치고 그 짓을 했다는 말에 욕이 나왔다. 그 사이 아내 뒤에 줄을 선 중년 부부는 시트콤을 찍었다고.
여자 : (친근한 목소리로) 자긴 뭐 먹을 거야?
남자 : (더듬는 말투로) 트리플 꽈트로 머쉬…….
여자 : (짜증 대폭발) 아, 몰라, 자기가 시켜. 난 붉은 대게.
시민에서 테러범으로 격하되는 출국심사장을 부드럽게 빠져나가는데 마지막 여권 심사에서 한 남자가 걸렸다. 직원은 보안도 안 부르고 남자와 뭔가 했다. 무엇을 확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내는 직원이 중국어를 검색하는 걸 목격했다. 여권 심사를 통과 못할 정도로 문제가 있다면 보안을 불러 따로 처리하면 될 텐데 그냥 물고 늘어지는 분위기였다. 나는 붉은 대게가 되어 왜 이렇게 지체되는 거냐고 따졌다. 내가 항의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니겠지만 그제야 남자가 통과됐다.
나는 (여)직원에게 여권을 내밀며 저 남자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었다. 직원은 더듬더듬 늘어놓았다. 단체 여행 온 중국인인데…… 본인도 어찌 된 영문인지 잘 모르겠다는 말투. 남자는 심사장 바로 앞에서 여행 온 일행과 느긋하게 서 있었다.
커피 매장에서는 중국인 할머니가 커피 6잔 중 3잔이 잘못됐으니 다시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직원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중국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다른 중국인 할머니는 화장실 청소하러 들어가는 한국인 할아버지한테 뜨거운 물을 달라고 중국어로 요구했다. 코리아 웨이브가 단지 거칠게 출렁인다면 차이나 웨이브는 똥 찌꺼기가 떠다닌다. 봄을 점령한 죽음의 먼지처럼 내키지 않는 게 파고든다.
면세점 탐험에 나섰다.
사람들은 흔히 면세점이 싸다고 여기지만 그건 재벌이 장악한 면세점이 정직하게 영업할 때 이야기다. 롯데 백화점과 롯데 면세점에 진열된 상품의 가격이 ‘백화점 가격’으로 동일하게 매겨졌다면 롯데 면세점 상품이 ‘면세’된 만큼 싸다. 하지만 백화점 가격과 동일하게 매겨진 게 사실일까? 그럴 거라는 ‘가정’이 아니라? 작년에 아들이 구매한 헤드폰이 있어 가격 비교를 해봤다. 면세점 상품이 더 비싸게 매겨져 있었다. 기레기만 개돼지 선동하는 게 아니다. 가격이야말로 개돼지로 선동된 값이다. 가격에 낀 거품만큼 우리는 사람에서 가축으로 기운다.
아내는 미샤에서 즐거운 쇼핑을 했다.
이어서 VR을 체험했다. 시야가 가상 화면으로 제한된 상황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려갈 때는 쫄깃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맞춘 스키 활강 장면이 나올 때는 맘 편히 즐겼다. 나는 아내한테 위를 보라고 했다. 하늘에서 기둥이 쏟아졌다. 헐리웃 영화처럼 그래픽이 사실적으로 보강되면 꽤나 강력한 체험 상품이 될 것 같다. ‘아바타’ 개봉 당시 앞으로는 3D가 대세라는 선동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VR이 가능성 있어 보인다. 다만 영상을 현실감 있게 돕는 흔들리고 튕기고 진동하는 의자가 대중화될지는 모르겠다.
이런 자세로 처박혀 있어도 설렌다.
③ 비행기
저녁 7시 35분, 비행기에 올랐다. 천둥소리를 내며 트랙을 달린 건 8시 10분 즈음. 하와이에 도착한 건 현지 시각으로 아침 8시 10분경이었다. 대략 7시간을 하늘 위에서 보냈다.
두 번째 장거리 비행은 처음보다 쉬웠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아들과 영화를 보고 아내와 캔디 크러시 사가를 했다. 잠은 좀처럼 안 왔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새벽 1시밖에 안 돼 당연했다. 뒤에 화장실이 있어 가끔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옆자리 여자가 남자 직원을 붙들어 살금살금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켰다. 몇 군데 자리가 비었잖아요. 우리 애가 불편하다고 하면 그리로 옮길게요. 비행기가 대기를 뚫고 날아가는 소리는 여전히 불편했다. 난기류를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회견을 하다 허허 웃는 장면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 생각은 복잡해졌다. 내가 떠난 뒤에 남겨진 것들이…….
마카다미아 봉지를 안 찢어줬다고 비행기를 돌리는 테러리스트는 없었다. 라면이 뜨겁다고 지랄하는 변태도 없었다. 사람들은 온순히 열정적으로 ‘승객’의 몫을 다했다. 한 배를 탄다는 건 하나의 상식을 견지한다는 것과 같다. 그거야말로 다 같이 공평하게 누리는 평온함 아닐까. 서로가 서로에게 나눠주는 선물 같은 것 말이다.
배가 고프면 이런 식사도 맛있게 한 톨 남김없이 해치울 수 있다.
음료수로 줄 거 물로 주는 게 얼마나 아끼는 건지 모르겠으나 먹었다. 맛있게 해치웠다.
아들은 힘들어했다.
하지만 아침은 어김없이 밝았다. 우리는 과거로 날아갔다.
④ 호놀룰루 국제공항
문이 뒤에 있어 빨리 내렸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버스를 타고 입국심사장으로 이동했다. 직원의 안내가 있는 호놀룰루 국제공항이 인천 국제공항보다 친절하게 다가온다.
먼저 온 백인들과 같이 섰다. 이들도 아침 일찍 떨어진 모양이었다. 셀프로 수속을 밟는 기기에 거의 다 와서 줄이 갈렸다. 내가 선택한 줄은 느렸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춘 뒤 청사를 나올 때까지 30분쯤 걸렸나? 이 정도면 입국 심사가 빠른 편이다. 괌에서 경험한 2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욕이 나올 정도다.
⑤ 알라모 렌터카
알라모 렌터카 버스 타는 데를 찾다 첫 번째 갈등을 맞았다. 이리로 가는 게 맞다, 저리로 가는 게 맞다. 의외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듯 보였다.
공항청사를 빠져나와 도로 하나를 건너 다리 밑 인도에서 알라모라는 이름이 적힌 파란 버스를 탔다. 코리아 웨이브가 여기까지 출렁였다. 공항에서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렌터카를 빌릴 땐 번잡함을 감수해야 한다. 작년에는 여행 중에 렌터카를 빌려 경험하지 않은 파도였다.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과 같이 버스에 올랐다. 아이를 둘 데리고 온 부부한테 자리를 양보했다. 하지만 이들은 친절을 은혜로 갚지 않았다.(뭘 받겠다고 양보한 것도 아니지만) 버스에서 내린 뒤 이들과 함께 차를 빌리기 위한 절차를 밟았다.
한 줄로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어떤 사람은 빨리 됐지만 어떤 사람은 느렸다. 여권 심사장에서 몽니를 부린 중국인처럼. 내가 비켜줬던 부부가 직원을 붙들고 여행 상담을 받았다. 이거 해줘요, 저거 해줘요, 혹시 이것도 해줄 수 있나요?
우리는 기다렸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대로, 미리 준비하고 파악한 대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내주고 우리가 요구하는 것들을 받았다. 5분도 안 걸렸다. 주차장으로 나가자 직원이 내게 뭐라고 길게 말했다. 아들의 해석에 따르면 빌려갈 차를 사진으로 찍어 놓으라는 뜻이었다. 반납할 때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으면 이때 찍어놓은 사진으로 대응하라고. 번거롭지만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인천 국제공항에서부터 함께 한 이들이 대거 빌려간 뒤라 딱히 마음에 드는 차를 고를 여건은 못 됐다. 할 수 없이 고른 알티마를 직원이 일러준 대로 사진 촬영하는 데 아내가 황당한 일을 당했다.
이 차는 하루 만에 교체된다.
상태가 말이 아니었지만 딱히 대안이 없었다.
예의 그 부부가 아내한테 그 차 빌린 거냐고 따지듯 물었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차를 고르는데 방해가 된다는 듯 버럭 성질을 낸 것이다. 우리가 주차장을 빠져나갈 동안에도 그들은 여전히 차를 골랐다.
이래서 괌은 안 된다는 거야.
설렘이 코리아 웨이브에 잠식된다. 여행지에 온 느낌이 안 든다.
아내는 덥다고 짜증냈다. 나는 구글 맵의 첫 명령을 어겼다. 좌회전 지시를 어기고 직진했다. 도로 표지판이 좌회전 금지였다. 내가 옳았다. 나중에 알티마를 교체하러 오면서 구글 맵이 알라모 렌터카의 입구와 출구를 거꾸로 인식하는 걸 확인했다. 사소한 문제가 있었지만 우리는 정도에 올랐다. 구글 맵의 도움으로 숙소까지 잘 찾아갔다. 오히려 닛산 알티마의 에어컨이 더 신경 쓰였다. 최저로 설정했는데 끄면 덥고 켜면 추웠다. 온도를 디지털 숫자로 표기해 조절하는 내 차(아반떼 HD)보다 못한 방식이었다. 작년에 알라모 렌터카에서 빌린 닛산 무라노가 흡족해 같은 회사 차인 알티마를 고른 건데 영 꽝이었다.
⑥ 코트야드 바이 매리어트 오아후 노스 쇼어
코트야드 직원은 어얼리 체크가 안 된다고 했다. 우리도 어깨 떨 준비가 안 됐다. 안 되면 어디서 어떻게 하기로 대충 계획을 세웠다. 7시간 비행과 코리아 웨이브에 치여 뜻대로 될지는 의문이지만.
가방을 프런트에 맡기는 절차를 밟다 주차권을 달라고 했다. 코트야드 바이 매리어트 오아후 노스 쇼어 관련 여행 리뷰를 보면 근처에 주차할 데가 있어 하루 주차비용 10달러를 아낄 수 있다고 하는데 귀찮았다. 주차권을 달라고 하자 직원의 태도가 표변했다. 어얼리 체크가 된다는 말도 없이 룸 키를 건네더니 당황하는 우리를 방으로 안내했다. 오올.
11시 30분, 우리는 숙소에 골인했다. 대략 4시간을 번 셈이다. 꿀 같은 4시간이었다.
탱크처럼 묵직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런 방이 나온다.
침대 스프링 테스트.
아빠, 괜찮아요.
창가에 설치된 이것은 에어컨.
온도 조절 장치는 벽에 달렸다.
TV는 훌륭했다. TV가 훌륭한 게 아니라 미국 방송국이 쏴주는 영상신호가 훌륭했던 것 같다. 전 방송이 고르게 FHD 영상을 보여줬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최신 TV로 헐리웃 액션 영화를 보면 세트나 연극 무대 같은 이질감이 느껴지는데 하와이 호텔에서 본 TV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저녁은 대개 이렇게 보냈다. 모든 게 새롭지만 여행 때 꼭 낯선 일만 하는 건 아니다.
욕실은 아이보리 톤.
아내가 치밀하게 준비한 생활 용품.
모공을 분화구 수준으로 보여주는 확대경. 홍준표와 장제원이 이걸로 자기를 보면 놀라서 비명을 지르지 않을까
수압은 약했다. 샤워기를 뽑아 쓸 수도 없다.
얼마나 오래된 건물인지 짐작할 수 있는 스위치.
어메니티는 그저 그랬다. 아내는 머리를 감을 때 샴푸가 너무 적다고 했다.
⑦ 푸드랜드
아들은 쉬게 하고 아내와 나는 푸드랜드에 갔다. 3일 치 장을 보러. 잘 봤다. 점심으로 먹을 도시락도 사고. 자본주의의 풍요로움을 느꼈다.(현지인들에겐 이렇게 다양한 상품조차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돌돌 말리는 일상이 되겠지만) 그런데 술이 없다. 하와이 미스터리의 시작.
직원에게 비어가 어디 있냐고 묻자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푸드랜드에서는 술을 팔지 않는다’는 대답이 아니었다. 우리는 비어가 없다는 직원의 대답을 ‘불친절’로 해석했다. 어디 있는지 알려주기 귀찮다 이거지? 그런데 진짜 없었다. 겨우 찾아낸 술이 에일이었다. 에일이 대체 뭐야?
계산대에 가서야 우리는 이 푸드랜드에서는 진짜로 술을 팔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아주 친절한 할머니였다. 그녀는 다짜고짜 아내 핸드폰 번호를 물었다. 알려주자 다짜고짜 푸드랜드 회원에 가입시켰다. 이름과 번호만 있으면 됐다. 그런 뒤 다짜고짜 회원 할인 신공을 발휘해 6.55달러를 아끼게 해줬다) 선셋 비치 인근 푸드랜드에서는 술을 팔았다. 그 기억 때문에 아내는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이들이 연출한 진열에는 아우라가 있다.
물질에의 순수한 열망.
넌 이걸 가질 수 있어.
감각이 마비된다. 벌써 바구니에 담고 있다.
하와이에서는 새우다. 다른 음식을 고를 이유가 없다.
하와이 여행의 장점은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거다. 같은 쌀밥조차 여기서 만나면 특별하다.
숙소로 돌아와 점심을 먹으면서도 우리는 그 점을 토의했다. 어떻게 술을 안 팔 수 있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술은 수면제 대용이었다. 시차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복용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갤럭시탭을 들고 로비로 내려갔다. 구글 번역 앱을 열어 두 가지를 물었다.
인터넷 TV는 무료입니까?
넷플릭스 채널은 있는데 화면이 안 나왔다. 탭을 들여다본 직원은 웃으면서 아니라고 했다.
네가 가입한 아이디로 보는 거야.
술은 어디서 팝니까?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롱스 드럭.
⑧ 롱스 드럭
약국인 줄 알았는데 푸드랜드와 비슷한 대형슈퍼였다.
아내와 아들은 미국 문물을 구경하고 나는 찍었다.
원해? 담아!
하루에 한 병씩 3일 치 수면제.
⑨ 숙소에서 첫날밤
숙소는 시끄러웠다. 어얼리 체크 안 된다고 튕기다 주차권 달라고 하자 대량으로 친절해진 직원은 일부 오션뷰라고 안내했지만 로드뷰였다.
몇 미터 앞에 동부 해안도로가 있었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엔진 소리가 우리와 함께 투숙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여행이니까. 잠이 안 온 건 시끄러워서도 시차 때문도 아니었다. 설레어서, 1분 1초가 아까워서, 의식이 잠들길 거부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