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가 없을 때, 내가 느낀 것.

순간 한 조각(20/30)

by Shysbook

여유가 갈수록 사라져만 가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 여느 때보다도 혹독한 겨울이다.한파가 내리는 것도, 거리에 폭설이 내리는 것도 아닌데 코로나와 얼어붙은 경기로 나의 마음은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허둥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유가 없었고, 나는 지친 마음을 달래러 무작정 바닷가로 향했다. 바다를 보면서 파도멍을 때렸다. 파라솔 나무등에 기대어 한없이 철썩거리는 파도를 바라보니 불안했던 마음도 밀물에 따라 휩쓸려 사라지는 듯했다.

문득 왜 내 마음이 이토록 여유가 없었나를 차근차근 나름의 해결방법을 떠올리며 적었다.


1.무엇이든 차근차근히


여유가 없으니 쉬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다. 무언가를 애써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불안이 자꾸만 마음을 해집고 들어온다. 안그래도 좁디 좁은 퇴근길 9호선 지하철처럼 나의 마음 평수는 넓어지려해도 넓어질 수 없을 정도로 숨이 막히고 답답하다.


무엇이 그토록 나를 답답하게 하는 것일까. 나이는 먹어가고,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무언가를 시도했지만 너무 늦은 건 아닐까라는 조바심이 스탭을 자꾸 엉키게 한다. 마음을 먹었으면 지금이라도 해야 오히려 늦지 않는데, 지금 하면 먼저 했던 사람들보다 퀄리티가 떨어질 것만 같았다. 설령 할 줄은 알아도 퀄리티는 떨어져 괜히 안 만든 것만도 못한 거 아닐까라는 평가에 대한 두려움도 어쩌면 이 조바심을 키우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


만약 이런 상태가 자꾸 조마조마해진다면 일단 쉬면서 회복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불안한 마음에 뭐라도 하려고 자꾸하다보면 쉽게 지치기 때문이다.


각자의 방식에 맞게 쉬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쉬는 것도 조금씩 친숙해지고, 일도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히 하다보면 의욕이 생길 때 일을 하다보면 분명 어떤 결과를 달성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2.상대의 마음은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부모님 또한 연로하셨다. 이젠 내가 독립을 하건 알아서 찬찬히 삶을 잘 꾸려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자신의 삶을 잘 준비해 보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추운 겨울 바람처럼 정신이 다시 맑아졌다. 하지만 남의 마음을 헤아릴 순 있어도, 그분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한다거나 그들의 눈치에 걱정 때문에 내 마음까지 무너뜨릴 이유는 없다는 걸 안다. 지금 내 눈 앞에 놓인, 커다란 눈덩이처럼 불어난 걱정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녹아 없어질 것들이라 생각한다. 현실은 얼어붙고 차가워도 결국엔 녹을 것을 믿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3.결국 내가 운명을 짊어지고 가야하는 것

태클도 무수히 많이 들어올 것이다. 이걸 하면 남들이 보기엔 '쟨 자리도 못잡아서 아직도 저런거나 하고 있냐'면서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르겠다. 내 또래 애들 중에서는 벌써 대기업, 공기업, 자기 사업 알아서 척척해 나가면서 부모님 부끄럽지 않게 용돈도 주면서 잘 살고 있는 애들도 거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그들의 삶이지 내 삶은 아니다. 다만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은 어느정도 감안은 해야할 터. 나 다운 삶을 택했으면 그에 따른 책임중 일부라고 생각하며 애써 살아낼 따름이다.


4. 장점에 집중하는 것.


바다를 보다가 남은 시간에 서점에 들어갔다. 이상하리만큼이나 마음이 편했다. 서점 내에 진열된 책을 한 권 무심코 집어든다. 책 표지 하단에 책을 출간한 출판사가 눈에 들어온다.


본인의 생각, 철학, 지식 등. 각자 경험한 것들을 보이는 물성으로 만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할 수 있는 용기(그릇과 encourage의 이중의미를 담았다.)가 되어주는 것이 출판사가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시대가 변하면서 책보다 유튜브나 팟캐스트같이 접근성이 편리한 매체가 더 나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 많은 정보 홍수 속에서도 책은 삶의 길잡이가 되어준다. 활자를 읽는 내내 뇌를 건드리고 마음을 건드린다. 정보를 잊어버리지 않고 스쳐 지나갈 영상보다 오랫동안 기억에 각인시킨다. 책이 갖고 있는 힘은 여전히 유효하기에 비록 출판 업황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책을 만들고 작가들은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고 있는 게 아닐까.


"사람들은 만진 것 1% 듣기 2% 본 것 5% 맛 15% 냄새 35%를 기억한다."


얼마 전 감각 브랜드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한 인터뷰어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서점이나 동네 책방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끊기긴 했지만, 책이라는 아날로그 물성을 직접 느끼고 책이 갖고 있는 물성 그 자체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서점이다.


아울러 책띠를 두르고 포장을 하는 사람의 손길, 종이 봉투에 책을 담아 카운터에서 손님 손으로 전달하는 손길, 그리고 물류창고에서 받은 책을 입고하고 손으로 매대에 진열하는 사람의 '손' 을 거친 감각에 우리의 마음은 열리기 마련. 아울러 같은 공간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그 자체만으로 동질감을 느낄 뿐더러 책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 느슨한 연대는 오프라인 서점을 모두 폐점하지 않는 한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다 글이 이렇게까지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책은 사람을 위한 일이자 사람들을 위한 마음을 곳곳에 담은 곳이 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곳에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애틋하게 드는 이유는 뭘까, 책이 가진 충분한 장점이 여전히 희미하게나마 남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그 매력에 반하고 또 익숙해진다.


설령 서점이 아니더라도 책에 관한 일이라면 계속 하고 싶고 관심을 이어가고 싶다. 출판사라면 출판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갈 것이고, 서점에서 일을 한다면 책을 사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갈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곳에서 면접을 본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진 모르겠으나, 잘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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