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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ysbook Feb 13. 2023

어느 눌변가의 고백

우리는 종종 이상적 자아와 마주한다고 한다.(우먼카인드 17호 이상적 자아에 대한 기억 중)


나에게 있어 이상적 자아라면, 말을 수려하게 잘하고 경청도 잘 하는 대화와 경청의 밸런스가 알맞은 모습이었다. 즉, 백 마디 말 보다 한 마디 말로 울림을 주고 싶고 잘 듣고 반응하고 기억하는 사람이고 싶은데 현실은 그러지 못하는 눌변가다. 오죽했으면 한 때는 말 잘 하고 싶어서 자기개발서를 읽어도 보고, 유튜브나 예능 프로그램 속 MC의 모습을 레퍼런스 삼아보기도 했다. 스피치 학원이라도 등록해볼까 싶은데 비용이 만만찮았다.


말을 잘 하면 상대방과 관계 맺기도 수월하고 서비스직을 해오면서 말 한 마디로 단골을 만들거나 진상을 만들 수도 있음을 체감하는 중이다. 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깊이 체감하고 있지만 정작 나는 기억력이 짧고 쉽게 잊어버린다. 어제 보았던 영화도,책 속의 구절도, 신문 기사를 읽었어도 말로 내뱉으려고 하는데 입을 여는 순간 기억은 새하얗게 질려버리고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 라는 생각이 머릿 속을 스치곤 한다.


그렇게 나의 말은 힘이 닿지 못하고 고꾸라져버리고서 무력감을 느낀다. 긴 호흡을 가지고 대화를 유려하게 풀어내는 힘이 부족하다 왜 말을 잘 못할까?  왜 말을 잘 못해! 읽은 책을 기억하려고 하면 ‘뭐더라…’ 하고 까먹곤 한다.


말을 하고 싶은데 왜 말이 나오지 않을까. 말을 꺼내어 티키타카 주고받고 대화가 자연스레 흐르는 관계이고 싶은데 어느 한 쪽만 대화를 하게 만드는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때도 있다. 이건 나의 낮은 자신감을 방증하는 것을 의미할까? 자신감이 낮다라고 뭉뚱그리기엔 내가 살면서 겪은 불편함마저 쉽게 퉁 쳐버리는 기분이라 스스로 납득하기 힘들고..


과연 말을 잘 하는 게 뭘까 생각해 보았다. 말로 사람의 마음을 사는 영업사원과 티비 속 MC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상대의 말을 유심히 듣고 중요한 타이밍에 질문을 던져서 대화의 물꼬를 트는, 서로 쿵짝이 착착 맞다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다 관계가 이어지는 이상적인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이미지와 정 반대편이다.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고 적합한 질문을 던지는 타이밍도 놓치기 일쑤였다. 상대방이 내뱉은 이야기에 대한 이해도도 부족했고 그렇다고 말을 위트있게 내뱉지도, 유머러스 하지도 않아 재미도 없다. 어떤 주제에 꽂히면 그 주제에 대해 대답을 해야한다는(즉, 언어 경직도가 높은 편) 강박감이 있다.


말주변이 좋은 편이 아님을 살면서 알곤 상대방과 만나 말을 할 때면 주로 듣는 편이다. 그러나 문제는 들어도 문제다. 머릿 속으로 상대가 어떤 상황인지 그려지는 거 같은데 -대화로 풀어내려면 거쳐야할 사고회로가 많아서 그런가- 막상 입술을 타고 말로 뱉어낸 결과는 아무말 대잔치가 되어버린다. (혹은 유체이탈 화법?)


글을 쓰다보니 결국 말은 사람 관계와 비례하는 편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 삶의 전반을 돌아보지 않으면 안되었다. 인간 관계가 깊지도 않았고, 어릴 적 말로 상처를 심하게 받아서 사람과 다가가는 자신감이 함양될 기회조차 부족했다. 말을 내뱉으면 꼬투리가 잡히거나 괴롭힘 받으니 입을 앙 다물듯 지내온 시간이 길어서였을까 이는 결국 사회성을 높일 기회마저 앗아가버린 듯 했다.


눌변에서 사회성 감소 나아가 인간관계의 서툶이라는 아킬레스건이 되어버린 지금 나는 사람 관계에 있어 낄낄빠빠라든지(낄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눈치’)가 어렵고 (지금은 겨우 하는 편) 돌려서 하는 말에도 맥락을 캐치할 만큼 머리가 좋은 편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눌변인 사람은 세상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없는걸까. 말을 잘 못하면 사람의 마음을 못사는 것일까.


말을 잘 하지 못하면, 세상과 섞이기 어려운 것일까란 부정적인 결론에 다다른다. 결국 내가 사람과 대할 때 경직성을 고쳐야하고 눈치를 캐치하려고 부던히 자기개발하고 기억력을 높여야하는걸까. 물론 그게 중요할 수 있지만 그게 전부여야만 하는걸까. 쓰면서도 고민이 늘어만 간다…


언제까지 듣고만 있어야 할까? 서툰 언어로 그것도 재미있게 풀지도 논리적으로 풀긴 커녕 아무말 대잔치로 귀결해버리는, 정작 상대방의 반응조차 캐치하지 못하고 어색한 흐름을 만들어버리는 나의 눌변을 언제 그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반대로, 말은 잘 하지 못해도 세상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은 있을까? 역사 속 위인이나 현역에서 활발히 운동하는 사람들도 대중 앞에서 말을 잘 하던데..


나도 비건과 기후위기에 대한 심도있는 주제와 생각을 언어화해서 정돈하여 전달하고 싶은데, 나도 오랫동안 사랑받는 모임의 모임장으로 자라고 싶은데, 전화를 굳이 받지 않아도 누군가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굴뚝같은데 라는 솔직한 마음이 봇물처럼 쏟아져만 나온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연약함에 한없이 사로잡혀 답답했던 마음이 이렇게라도 풀지 않으면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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