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등산은 남의 다리로 해야 제맛!]
첫째 날 정확히는 '도착' 후 둘째 날이다. 일요일에 입국하고 버스로 2시간 30분 정도 비포장도로-울란바토르 근교로 나가면 바로 비포장 도로가 펼쳐진다-를 달려 도착해서 게르를 현대식으로 꾸민 Tumen Khaan Tourist Camp 가서 하룻밤을 묵었다.
첫 번째 숙소에 도착 다음 날 오전 8시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먹고 말을 타기 위한 준비를 하였다. 자고로 성인취미는 장비발이다. 하지만 초보인 나는 장비의 종류도 모르거니와 승마의 진정한(?) 재미-첫째날은 그냥 '동경'의 대상이긴만 했다-는 모르는 상태에서 덜컥 장비를 구입하지 않았다. 미리 여행사에서 안내해 준 것과 같이 리바이스 두꺼운 청바지, 팔 토시, 모자, 평평한 운동화를 준비해 갔다. 이런 승마 쌩초보에게 현지 가이드는 (처음 보는 물건인)챕(chap, 종아리 보호대)을 나누어 주었다.
챕을 종아리에 차고 한쪽으로 모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집합 장소에 모이니 앞으로 4일 동안 말들이 매여 있었다. 차례차례 마구(재갈, 고삐, 안장 등등)를 채우고 실력에 따라 말을 배정받았다. 말의 지능은 매우 높은 편이라 성격이 제각각이라고 한다. 초보자는 순한 말을 배정한다고 한다. 특히 말은 매우 예민한 동물이라 사람이 올라탔을 때 등자 밟는 힘, 고삐 잡는 방법, 체내 호르몬 냄새를 감지하여 등에 탄게 '초보'인지 '고수'인지 귀신같이 알아내어 기싸움을 한다고 한다.......나 역시 귀신같이 간파 당해 '말(馬)'이 '말(言)'을 잘 안 들었다.
여기서 잠깐! 보통 말의 움직임은 4단계로 나뉜다. 평보 -> 속보 -> 구보 ->습보. 오른쪽으로 갈수록 속력이 커지며 대략 비교 하면 평보<<속보<<<<구보<<<<<<<<<습보 정도 될 것이다.
평보는 천천히 걷는 단계이다. 네발로 뚜벅뚜벅! 사람도 말도 몸에 무리도 안 가고 천천히 느긋하게 걷는다고 보면 된다.
속보부터는 이야기가 좀 달라지는데 그냥 눈으로 보기에는 말이 경쾌하게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보를 하는 말등에 있으면 경쾌한 걸음이 진동이 되어 사람몸을 위로 들어 올린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통~! 통~! 통~! 통~!'의 박자로 튀어 오르는데 그 충격은 매우 크다. 그래서 기수는 박자에 맞추어 앉았다 일어났다를 해야 하는데 만약 요령이 없어 모든 충격을 받아낸다면 기수의 둔근의 상태는............
구보는 흔히 알고 있는 '다그닥~! 다그닥~!'의 단계이다. 속보에서 구보로 바뀔 때 말의 앞다리-뒷 다리는 눈에 안 보여서 자세히는 모르겠다-의 움직임이 확 달라진다. 속보는 빠른 걸음으로 앞다리가 교차로 움직이지만 구보로 바뀌면 양쪽 앞다리가 함께 움직인다. 게다가 기수에게 전해지는 진폭의 크기와 빈도 힘이 속보와는 비교불가일 정도로 달라진다. 하지만! 속보보다 기수는 덜 힘든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이번 여행에서 경험하지 못 한 습보는 말이 전력 질주하는 단계이며 빠른 말은 약 시속 70km까지 빠르게 달린다고 하며 마치 '구름 위를 밟는 듯 한'느낌이 난다고 한다.
나는 승마 초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예민한 말은 기수의 긴장, 공포와 같은 감정도 그래도 느낀다고 한다. 동물을 좋아하는 나는 두려움 보다 말을 탄다는 '신나는'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초보는 초보! 등자를 밟는 세기, 허벅지의 강도, 고삐를 통해 전해지는 감각으로 문자 그대로 '간파'당했다.
가이드는 말을 타기 전 짧게 말 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말을 보내려면 고삐를 살짝 풀고 츄~! 츄~!라고 신호를 주시면 됩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보낸다'와 입으로 내는 신호 그리고 고삐다.
그렇다. 승마는 말과 사람의 교감을 바탕에 깔고 가는 운동이다. 말을 타고 내 의지로 '가는 게' 아니라 말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보내야'한다. 말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신호를 보내면 기수의 의도를 이해하고 비로소 움직인다. 이미 '초보'로 간파당한-그렇기보다 의사전달을 제대로 못 한-탓에 평보조차 못했다!!!
그저 고개를 푹 처박고 풀을 야무지게 뜯고 있었다. 특히나 내가 탄 말은 먹성이 매우 좋았다. 가는 길 내내 자기 입맛에 맞는-특히 '쑥' 같이 생긴 풀을 무지하게 좋아했다. 나름 먼 거리를 가야 하니 얼른 출발해야 하는데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과 그 위에 탄 초보 환상의 콜라보다.
인터넷에 말에 관한 검색을 하면 말의 보편적인 성격은 매우 겁이 많고 외로움을 많이 탄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동료 옆에 있으려 한다고 한다. 다른 말들이 서서히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니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내가 들판에서 말을 타고 첫걸음을 땐 순간이었다.
맨 위 구글 지도를 보다시피 다음 숙소까지 거리가 꽤 된다. 대략 40~50km 정도 된다. 게다가 주욱 평지도 아니고 산도 올라가야 한다. 첫날 숙소 자체가 산중턱에 있어 얼마 가지 않아 굽은 산길로 터벅터벅 올랐다.
원래 이번 여행의 목적은 오직 '말 타는 거 배우기'였다. 별자리 보기, 몽골 관광지 돌아보기는 전혀 머릿속에 없었다. 그런데 이거 웬걸 느리게 움직이니 눈 위에 펼쳐진 익숙하지 않은 풍경과 먼지 하나 없이 티 없는 '대초원'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 하나 없는 산 오직 작은 풀만이 끝없이 펼쳐진 초원 눈만 돌리면 산이 시야를 가로막고 뿌옇게 먼지긴 서울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온몸을 간지럽히는 산들바람, 원색을 자랑하는 들꽃, 푸른 초원, 티 없이 맑은 하늘을 말 위에 감상하며 여유로운 '걷기'를 했다. 평소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데 '남의 다리'로 하는 등산은 퍽 괜찮은 경험이었다. 아마도 내 시력이 더 좋았다면 시야가 닿는 모든 곳의 풍경이 인상에 남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출발한 지 2시간 정도 흐르고 비교적 평평한 곳에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도시락으로 요기를 때웠다. 나를 태우고 열심히 뚜벅뚜벅 묵묵히 걸음을 옮기던 말도 나무에 메어놓고 휴식시간을 즐겼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다시 말위에 올라 산길을 걸어갔다. 2개의 산을 넘어가니 평원이 나왔다. 이제 달릴 차례였다..........인데 난 뒤쳐졌다. 일행을 따라가기엔 말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서 도대체 속력을 낼 수 없었다. 아무리 신호-라고 해봐야 입으로 '츄~!츄~!'라는 소리를 내는 것-를 주어도 이 녀석은 당최 속력을 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걸을 뿐 이미 시야에는 일행이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승마여행에는 현지 가이드 분만 아니라 마부 4명도 함께 했다. 나야 관광이지 그들은 한창 '근무'중이다. 오늘 하루가 빨리 끝나려면 낙오자 없이 빠른 시간 내에 다음 캠프로 이동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마법(?)을 경험하게 되었다.
승마를 하면 '말을 보낸다'라는 표현을 많이 한다. 초보의 침 튀기는 '츄~!' 보다 마부의 휘파람과 '쵸우~!'-내 귀엔 '쵸우~!'로 들렸다 그것도 단전에서 나온 소리로!-가 말을 빠르게 앞으로 보냈다. 구보까지는 아니고 속보로!!!
속보...승마에서 가장 힘들다는 속보로 평원 내내 달렸다. 나의 엉덩이는 모든 충격을 받기 시작했다. 중심 잡기도 어려워서 앞으로 '로켓발사'가 될 뻔도 하여였지만 예전 아주 예전 잠깐 7호선 장암역 언저리 어딘가에 있던 승마장에서 깔짝 배운 속보 때 박자 맞추는 법-앉았다 일어나기-을 기억하면서 낙오 4인방 중 오랜만에 승마를 하신 분의 동작을 곁눈질 하면서 충격을 완화하기 시작했다. 물론 머릿속 밑바닥에 자리했던 머리의 기억으로 인해 중심은 앞으로 쏠렸고 엉덩이 이외의 부분에 사알짝 충격이 가기도 하였다. 정말 문자 그대로 '살려고' 무수히 많은 자세 변형을 시도한 끝에 가장 편한-다시 말하지만 속보가 가장 힘들다-자세로 최적화에 성공했다.
흔히 우리가 말 울음소리 라고 하면 '이히히힝~!'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참을 낙오하여 나와 나의 말은 무리에서 엄청 떨어졌다. 시야에는 넓게 펼쳐진 풀밭, 양 떼, 야크 떼, 소떼가 전부고 바로 뒤에는 퇴근 욕망에 휩싸인 휘파람 부는 마부만 있을 뿐이었다. 속보로 얼마나 달렸을까? 갑자기 그 어떤 전조 없이 나의 말은 '이히히히히힝~!' 하면서 울었다. 말이 그렇게 크게 울 수 있는 줄 몰랐다. 귀를 대리는 말 울음소리 도둑이 제 발 저린 나는 내 말이 참다 참다 '아~! 이 무거운 시키! 더럽게 힘드네'라고 오해를 하였다. 나중에 물어보니 '친구'와 떨어져 자기 친구 찾을 때 울어재낀다고 한다. 욕한 줄 알았는데 괜한 오해를 해서 미안했다.
한참을 빠른 걸음으로 가다 강을 만났다. 숙소가 강건너에 있어 말을 탄 채 강을 건너야 한다고 한다. 엥? 초보인데 강까지 건넌다고??!?! 몽골의 말은 작다. 칭기즈칸이 유럽을 정벌할 때 몽골의 기병을 본 유럽의 기사들은 정처 없이 떠도는 '야만인'들이 쥐새끼를 타고 왔냐며 껄껄껄 웃었다고 할 정도로 작은 편이다. 앞다리 어깨가 가슴높이 정도로 정말 작다. 게다가 강바닥은 '돌'밭이다. 지리를 잘 아는 마부가 주위 환경을 잘 살피면서 강을 건너기 시작했고 우리는 꼬리를 물면서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보너스로 종아리까지 젖었지만.....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강을 무사히 건넌 우리는 두 번째 숙소에 사고 없이 도착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거의 하루 종일 걸린 (내 마음속에만) 대장정이었다. 숙소는 고요했고 풍경은 여유로웠다. 가만히 있어도 도시에 묻은 때, 번뇌가 사라지는 거 같았다. 물론! 아마도! 일주일이 한계겠지만......
이 글은 시리즈 입니다. 함께 보시면 더 재밌을거에요!
3 첫째 날[등산은 남의 다리로 해야 제맛!]
6.넷째 날 [마부들아 내말을 제발 보내지 말아다오!]
출처
1) 말 움직임 : https://park.kra.co.kr/lessonBusan/RideClass.do
3) 라디오스타 캡처 : https://www.insight.co.kr/news/439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