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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선희 Nov 11. 2019

몸에 난 상처보다 마음에 난 상처가 더 아프다.

얼마 전 서준이가 폐렴으로 응급실에 갔었다. 서준이 또래쯤 보이는 여자 아이가 엄마와 함께 들어왔다. 아이가 배가 아팠다가 괜찮아졌다 하는 증상을 반복하다가 아픈 시간이 길어져 응급실에 왔다고 했다.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늦게 온 여자 아이의 결과가 먼저 나왔다. 의사가 아이의 엄마에게 말했다.

"뱃속에 변이 가득 차 있습니다." 뒷 말은 정확히 못 들었지만 내 추측으로 관장을 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여자 아이의 엄마는 의사의 말을 듣고 민망한 듯 웃음을 참지 못했고 그녀의 웃음소리는 커튼을 넘어 응급실에 퍼져나갔다. 솔직히 나도 의사의 말을 고 '풋' 하고 웃었으니 엄마인 그녀는 꽤나 민망했던 모양이다. 의사의 처치대로 간호사들이 관장 도구들을 가지고 커튼이 둘러쳐진 침대로 갔다. 성인인 나도 관장을 할 생각 하면 인상이 찌푸려지는데 기껏해야 8살 난 여자 아이가 관장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곤욕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이의 저항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간호사는 최대한 아이를 달래며 관장을 시도하는데 엄마는 옆에서 계속 아이를 윽박질렀다.

"참아. 참아. 그게 뭐 그렇게 아프다고 그래? 너 자꾸 이러면 엄마한테 혼난다." 하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내 신경까지 건드려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 간호사에게는 갑자기 순한 목소리로 멋쩍은 듯 웃으며

"어휴. 죄송해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치료에 협조하지 않으니 간호사의 고충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식의 아픈 것보다 간호사를 더 신경 쓰는 듯 보이는 엄마에게 자꾸 신경이 쓰였다.


관장약을 넣고 간호사는 침대에서 떠났다. 시간이 지나 아이는 다급한 목소리로 "화장실 가고 싶어"라고 했다. 관장약을 넣고 바로 화장실에 가면 효과가 없기에 기다려야 하는 건 맞지만 아이의 엄마는 어떠한 설명도 없이 "안돼!"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이는 거의 울부짖으며 얘기하는데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냉정하게 대답했다. 화장실에 가도 되는 시간이 되었는지 눈물이 범벅이 되어 뻘게진 얼굴로 화장실로 달려가는 아이를 보니 괜스레 짠한 마음이 들었다. 아픈 배는 나아서 돌아갈지 모르겠으나 엄마의 말과 행동이 아이에게 마음의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우려가 되었다.


물론 그 아이의 엄마를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몰라서 그랬을 뿐 그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어떤 엄마가 내 자식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아이가 관장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는 마음을 공감하며 "선희야. 치료하는 게 많이 무섭고 걱정되지?", 안정감을 주고 "엄마도 선희가 무섭고 걱정하니까 안 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용기를 내서 치료받게 "그런데 이걸 안 하면 선희가 배가 계속 아플 거야. 엄마가 도와줄게 용기 내보면 어떨까?"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엄마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몸에 난 상처와 마음에 난 상처를 비교한다는 게 억지스러워 보일 수 있겠지만 굳이 그 크기를 비교하자면 나는 몸에 난 상처보다 마음에 난 상처가 더 아프다고 생각한다. 모태 솔로가 아니라면 한 번쯤 이별의 아픔을 겪어 봤을 것이다. 식음을 전폐하고 술에 취해 몸이 상한지도 모르게 혹사시켜가며 마음의 통증을 잊어보려 노력해봤을 것이다.


나 역시 대학 시절 지금의 남편과 연애 시절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고 마음 아파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운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과발표회 꾸미기 체조를 연습했다. 사람으로 4층 탑을 쌓는 작품이 있었는데 꼭대기층에 올라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체구가 작고 가벼웠던 나를 누군가 추천했고 무력했던 나는 딱히 저항하지 않고 그 역할을 맡았다. 연습하는 과정에서 나는 바닥으로 떨어지기 일수였다. 매트가 깔려있긴 했지만 2~3미터 높이에서 떨어졌기에 온 몸이 아팠다. 어떨 때는 내장이 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심하게 떨어질 때는 숨이 잘 안 쉬어질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못하겠다고 하지 않고 떨어질걸 알면서도 오르고 또 올랐다. 내 몸이 부서져라 아픈 순간에는 마음이 아픈 게 살짝 잊히는 것 같았다. 차라리 몸을 희생시켜서라도 마음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의 상처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 더 떠오른다. 내가 7살 때 일이다. 늘 사촌 오빠의 옷을 물려 입어 치마라고는 입어보지 못했던 나는 내 기억의 첫 치마를 입게 되었다. 얼마나 좋았던지 그 치마를 입고 뱅글뱅글 돌고 또 돌았다. 몇 바퀴를 돌았는지 셀 수도 없을 만큼 돌았던 나는 중심을 잃고 고꾸라졌다. 베란다 유리창에 머리를 처박으며 그대로 쓰러졌다. 유리가 깨지며 내 얼굴로 쏟아졌고 가장 먼저 부딪힌 이마가 찢어져 시뻘건 피는 순식간에 내 얼굴을 뒤덮었다. 가족들은 모두 놀라 119에 전화해서 구급차를 불렀지만 애가 타는 엄마는 구급차가 오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나를 업고 병원을 향해 달렸다.


나는 분명히 이마가 찢어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는데 정말 이상하게도 엄마의 등에 업혀가는 게 너무 좋았다. 엄마는 일하러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들어왔다. 가끔씩 안 자고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가 잠시라고 안길라치면 "지금 몇 신데 아직도 안자?" 하며 나를 밀쳐내던 엄마였기에 어린 나는 엄마의 품이 그리웠다. 그런 엄마의 등에 업혀 가고 있으니 이마가 찢어져 피가 나도 아픈줄 모르고 마냥 좋았던 거다. 병원에서 꿰매는데 울지도 않아 의사가 씩씩하다며 칭찬해줬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몸에 난 상처는 겉으로 보이기라도 하니 누가 알아주기도 하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대신 치료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겉으로 보이지도 않고 내가 말하지 않으면 남들이 쉽게 알아주지 못한다. 내 마음의 상처를 열어보이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대신 치료해 줄 수 없다. 마음에 난 상처가 몸에 난 상처보다 아프다. 마음의 상처를 외면하지 말고 몸에 난 상처 못지않게 살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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