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 가족 모임을 하던 중 참외를 깎아 먹으려고 어머님께서 과도를 가져오셨다. 이번에 새로 구입했다는 과도는 칼끝이 날카롭다 못해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가늘고 뾰족했다. 가족들이 과도에 대해 한 마디씩 언급했고 나는 그 과도로 참외를 깎았다. 과도에 대한 나의 잡념 때문이었을까? 참외를 깎아 접시에 내려놓고 자르는 순간 참외가 미끄러지면서 칼 끝으로 참외를 잡고 있던 손가락을 푹 찔렀다. 살짝 베인 느낌이 아니라 칼이 내 손가락을 푹 찌르는 깊은 통증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다친 손가락을 지압하기 위해 꾹 움켜줬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남편이 놀라 어떻게 되었는지 손가락을 보자고 했다. 지압하고 있던 손을 놓으면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흐를 것 같아 "안돼. 나 많이 다친 것 같아."라고 말하고 손을 떼지 못했다. 상처를 보는 것조차도 너무 두려웠다.
방에 있던 막내 형님께서 오시더니 나를 의자에 앉히고는 "손 떼 봐요."라고 말씀하셨다. 막내 형님이 의사라는 신뢰감 때문이었을까? 남편이 보자고 할 때는 차마 손을 떼지 못하겠더니 막내 형님의 한 마디에 손가락을 움켜쥐고 있던 손을 뗐다. 그리고 상처를 쳐다봤다. 그런데 웬걸 내 상상 속의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물론 살짝 베인 것보다는 깊은 상처였지만 내가 상상했던 상처에 비하면 이건 상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많이 다친 것 같다고 말한 게 괜한 엄살을 부린 것 같아 머쓱했다. 거즈로 피를 닦고 연고를 바르고 밴드로 감싸 상처를 치료했다.
앞의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우리는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그런데 그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않은 채 방치해두면 상처들이 계속 쌓인다. 그렇게 쌓인 상처는 내 안에서 점점 더 곪아가며 타인의 말과 행동에 더욱 크게 상처 받고 나도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처가 쌓여가면 상처를 마주하기가 어렵다. 상처가 너무 크고 아플 거라고 지레 겁을 먹는 것이다. 하지만 손가락의 상처를 직접 봤을 때 상상 속의 모습과는 너무 달랐던 것처럼 마음의 상처 역시 실제로 마주하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상처를 바라보는 게 두렵다고 피하려 하지 말고 상처를 마주하려는 노력을 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상처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상처를 처음 마주했던 그 날을 1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2009년 3월이었다. 대한민국의 3월은 새 학년이 시작하는 달로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설렘과 긴장을 느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달이다. 특히 교사에게 3월은 누구보다 중요하다. '3월의 학급 운영이 1년을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직 경력 4년 차가 되던 해였고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평범하거나 모범적인 학생들과는 관계도 좋고 착한 선생님으로 불리며 인기도 있었지만 소위 '문제아'라고 불리는 학생들과는 하나에서 열까지 부딪히지 않는 게 없었다. 교칙을 지키지 않는 학생들을 지도하면 반항하고, 반항하는 것에 대해 지도하면 무시했다. 때로는 언어폭력을 가하고 심하게는 나를 밀치며 신체 폭력을 가하기도 했다. 화도 내 보고 소리도 쳐보고 체벌도 해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고 오히려 더욱 나빠졌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새 학년이 시작했지만 무력했던 나는 우연히 보게 된 "마음이 통하는 상담연수"라는 문구에 홀린 듯이 참여했다. 연수 장소에 가보니 다들 삼삼오오 짝을 지어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모습이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있으니 어색하고 괜히 온 거 아닌가 하는 후회도 들었다. 연수가 시작되었고 연수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각자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학생들을 사랑하고 학생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데 학생들은 내 마음을 몰라주고 착한 나의 마음을 악용하여 교직 생활이 힘들어 연수에 참여했다고 대답했다. 강사는 그런 상황에 대해 예를 들어보라고 했다. 문득 시험 기간에 아이들에게 시험을 잘 보라고 컴퓨터용 사인펜에 파이팅 메시지를 적어주고 사탕이며 초콜릿이며 챙겨줬지만 고맙다는 말도 없이 받아만 먹고 쓰레기를 바닥에 버리던 괘씸하고 무례한 아이들이 떠올라 얘기를 했다. 내 얘기를 들은 강사는 나에게 무심하게 질문했다.
" 애들이 선생님께 사탕, 초콜릿을 달라고 하던가요?" 생각해보니 애들이 나한테 달라고 한 적은 없었다.
"아니오."라고 대답을 했지만 한편으로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강사는 이어 "제가 만일 학생이라면 그 사탕, 초콜릿 안 먹고 싶을 것 같아요. 달라고 한 적도 없는 거 주고 고맙다는 말 안 했다고 뭐라고 할 거면 차라리 주지를 말지. 이런 생각 들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이 얘기를 듣는데 망치로 머리를 세게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정신이 혼미해져 있는 나에게 강사는 한 방 더 먹였다.
"제가 봤을 때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사랑해서 사탕, 초콜릿을 준 게 아니라 아이들한테 사랑을 받고 싶어서 챙겨 준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고맙다는 말도 없으니 서운하고 화가 난 거 아니겠어요?"라고 하는데 나는 "아니에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랬다. 나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척했지만 사실은 내 상처 난 마음을 아이들의 사랑으로부터 치유하고 있었던 거다. 그동안 나의 상처를 모른 척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까발려진 이상 이제는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그저 내 신세가 처량한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고 연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 시간 외면해 온 나의 상처를 마주했다. 사랑에 굶주려 여기저기 마음에 상처 난지도 모른 채 사랑을 주겠다며 애쓰고 있던 나의 모습. 그 사랑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 때 서운함과 실망감으로 또 새로운 상처를 만들고 있던 나를 마주했다.
상처를 끄집어내면 너무 아파 견딜 수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끄집어 내니 이 상처 또한 나의 일부라는 게 받아들여졌다. 나의 일부인 상처를 돌봐주려 노력했다. 상처 치유, 상담 심리 등의 책들을 수 없이 읽고 개인 상담, 집단 상담, 힐링 드라마, 가족 세우기, 아티스트 웨이, 에너지 힐링 등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렇게 쳐다보는 것도 두렵고 힘들었던 나의 상처들을 마주하고 나니 조금씩 조금씩 치유할 수 있었다.
물론 상처를 마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조금 수월하게 상처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상처를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이다. 만일 전문가를 찾아갈 수 없다면 하얀 종이와 펜을 들고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억지로 상처를 끄집어내려고 할 필요 없다.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나의 상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아티스트 웨이의 저자 줄리아 카메론은 이러한 글쓰기를 '모닝 페이지'라고 칭하며 매일 아침 의식의 흐름을 3쪽 정도 적어가라고 권한다. 모닝 페이지는 잘 쓰고 못 쓰고 가 없다. 그저 어떠한 내용이라도 쓰기만 하면 된다. 쓸 내용이 생각나지 않으면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글쓰기는 어렵다.' 이런 식의 말을 써도 괜찮다. 단, 주의사항은 절대 앞장을 넘겨다보지 않는 것이다. 상처를 마주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나? 그렇다면 나를 도와줄 전문가를 찾아라. 도와줄 전문가가 없다면 지금 당장 종이와 펜을 가져와서 마음의 소리를 적어라. 상처를 마주한다는 것은 곧 상처의 치유가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