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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일간 Aug 26. 2024

수프, 스프, Soup (1)

어린 시절 내 영혼의 양식

수프, 스프 뭐가 되어도 좋다.


뭐가 맞다 하기 어렵겠지만, 이 글에서는 내 마음대로 스프라고 하겠다. 그게 좀 더 정감이 가는 것 같아서.

 



나는 스프를 사랑한다. 정말 같은 표현 잘 안 쓰고 싶지만, 정말 사랑한다.


스프는 시키기 좀 눈치 보인다. 애피타이저로 샐러드는 시켜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스프까지 시키는 것은 좀 과해 보인다. 재료와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드는 메뉴임을 알고 있다. 그래도 식탁에 푸짐한 등고선과 수십 번의 포크질을 만들어주는 샐러드에 비해 밥그릇보다 작은 그릇에 담기는 수프는 가격대비 초라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시킬 때 눈치를 좀 보게 된다. 그래도 용기 내어 가끔 아내에서 ‘하나만 시켜도 될까?’ 참지 못하고 물으면, ‘먹고 싶음 시키셔요.’라고 고맙게도 매번 허락해 준다.


아내가 말한다. ‘좋아하는 음식들도 그렇게 많고, 뭘 먹어도 웬만하면 좋아하면서 유난이다.’라고. 맞다. 내 기준은 후하다. 모두가 맛없다고 하거나 상하지 않으면 먹을만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좀 억울한데, 후하지만 더 맛있는 것들에는 더한 감동을 받는다. 믿어주면 좋겠다.


그런 많은 음식들 중에서도 스프는 미각이 아닌 다른 감각을 건드린다. 특별히 매일 먹고 싶은 것도 아니고 다른 좋아하는 음식도 많지만, 스프를 생각하면 왠지 온기가 느껴진다. 보고 있던 내 시야가, 담겨있는 그릇을 잡았던 내 손이, 그리고 입 안을 거쳐 몸에 퍼져나가던 그 모든 것이 따뜻하다.


나조차도 궁금하다. 그래서 정리해 보았다. 대체 스프가 어떤 기억이었는지.




첫 번째는 시골 경양식 식당의 식사 전 스프이다.


어려서 부모님과 떨어져 외할머니와 시골에서 몇 년간 살았다. 넓은 마당, 함께 뛰놀던 강아지들, 바로 앞 시냇가까지 좋은 기억들이 가득하다. 딱 하나 문제는 할머니의 음식에 7살 아이가 적응해야 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주말에도 일하고 한 달에 하루 쉴 수 있었다. 그날이면 나와 밥 한 끼 함께 먹고자 반나절 넘게 버스를 타셨다.


매번 간 경양식집은 지하에 있었다. 붉은 피아노 건반 커버 느낌이었다. 촛불 비슷한 조명이 벽에 붙어 있었다. 시냇가와 장터 바로 옆 이곳은 만화 속 공간 같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학교의 담임 선생님도, 동네 젊은 삼촌도, 둘 씩 짝을 지어 오는 것을 돌아가며 봤다. 엄마가 인사는 안 해도 된다고 했던 것 같다.


식사는 얇은 접시에 조금 담긴 스프로 시작했다. 이 얼마 안 되는 스프는 또 한 달을 서로 떨어져서도 잘 지내자는 식사의 시작이었다. 후추가 살짝 뿌려진 고소한 스프가 너무 좋았는데, 그 접시는 너무 얇아 금방 기울여 뜨게 되었다. 이어지는 돈가스보다 스프를 좋아했는데, 헤어짐에 가까운 메인보다 조금 멀리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는 어머니의 크림스프다.

  

방학 때면 부모님 집으로 올라와 잠깐 지내다 갔다. 집이 좁아 식사는 두 번째 방에서 했다. 서재라고 하기엔 책 보다 식탁이 더 커 보였다. 식탁은 햇살이 내리쬐는 창문 옆에 있었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아파트는 동네에서 제일 높았고, 굽어지는 길 바로 옆에 있어 경치도 좋았다. 노란색 버스가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휘어진 길 가운데 멈춰 사람을 태우고 어딘가를 갔다.  


어머니는 빵, 잼, 크림 스프로 아침을 주셨다. 맛있었다. 토스터에서 막 뛰쳐나온 빵에 딸기잼을 발라 반으로 접었다. 빨간 봉지에 들은 가루를 끓인 그 크림스프에 그 빵 끝을 찍었다. 세상이 간간하고 달콤했다. 맛이 없을 리 없는 조합인걸 이젠 안다. 하지만 그땐 맛있다 못해 황홀했다. 점심과 저녁은 혼자 먹었다. 두분은 잠들지 않고 버텨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시절 많지 않은 두 분 모두와 함께한 식사에 대한 기억이다. 그 시간이 더 달콤 고소했던 것인지 음식이 그랬던 것인지는 모른다. 행복한 찰나였고, 그 찰나 덕분에 그때도 지금도 살아가고 행복을 되새겨본다.



어렸을 적은 모두 크림스프다. 학교 급식에서도 그리고 군생활 중에도 심심하면 크림스프는 나왔다. 그 흔한 크림스프는 좋은 추억으로 무장된 나의 무기였다. 식욕을 떨어뜨리는 차디찬 금속판 위의 피난처였다.



마지막으로, 어른 시절로 넘어가기 전, 스프라고 우기고 싶은 기억이 있다.


그 행복했던 할머니 집, 새벽 우유 배달은 강아지를 깨웠고, 강아지는 나도 깨웠다. 마당에 나가 강아지와 술래잡기를 두세 바퀴 정도하고 퍼석퍼석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문으로 걸었다. 나보다 훨씬 큰 강아지는 같이 걸어가는 나를 의기양양하게 만들었다. 차가운 쇠 철문은 습기가 느껴졌고, 잘 안 밀리던 검은색 플라스틱 고리를 끙끙대며 밀었다. 강아지가 문밖으로 나가 밖에서도 술래잡기를 해본 터라 조심히 열었다.


손잡이에 걸린 우유를 가지고 와 부엌 쪽 문을 열고 할머니를 크게 불렀다. 할머니는 냄비에 바로 우유를 올려 흑설탕 한수저를 넣고 끓이셨다. 앉으면 항상 혼나던 문턱에 앉아 봐도 봐도 신기해 보이던 석류나무를 지켜봤다. 할머니는 컵에 달콤한 우유를 담아 주셨다. 차가운 공기와 손에 쥐어진 따뜻한 우유 한 잔, 그걸 부러워하듯 바라보던 강아지까지. 억지를 조금 부려 이것도 내 인생의 스프라고 하고 싶다. 이제는 다시 먹을 수 없어 가장 그리운 스프라고.




어린 시절의 이야기밖에 쓰지 못했다. 어른이 되서도 몇 번의 선명하게 기억되는 스프들이 있다.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내가 스프를 사랑하는데, 단어 ‘정말’을 써도 괜찮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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