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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단 Oct 08. 2016

로마의 휴일 따라잡기

침선 수필

공주님은 몰래 궁전에서 나와 생전 처음 세상으로 나왔다.  우연히 만난 기자 양반과 로마의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공주님은 아름다운 로마가,  아니 바깥세상이 마음에 쏙 들었다.  게다가 함께 다닌 훈남 기자도 좋아져 헤어지기 싫어졌다.   하지만…… 미처 하지 못한,  많은 말들을 눈에 담고 기자를 쳐다보며 아쉽게 공주는 다시 돌아갔다.  그녀의 일상, 공주님의 일상으로.  


공주는 다시는 그런 일탈을 맛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오랫동안 그 기자를 잊지 못하고 생각하며 지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주가 맛 본 ‘로마의 휴일’로 인해 그녀의 인생은 그 뒤로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자신의 처지, 신분등을 잊고 즐기는 하루의 일탈은 인생의 성장에 꼭 필요한 비타민 같은 요소이다.  꽉 짜인 일상의 일들.   반복되어 돌아가는 거대한 생활의 바퀴.  주부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처신의 굴레.  아무리 즐겁게 지내려 애써도 한숨 한번 쉬지 않고 지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매일매일 압력솥에 밥을 안치고 달걀을 부치면서,  마음으로는 한나절 만이라도 일상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가는 ‘로마의 휴일’을 꿈꾼다.  


일상을 떠나 삶의 활력소를 구하는 행위는 사람마다 제각각 일 것이다.  현실세계에서는 어림없을 것 같은 세상을 영화를 통해 맛보기도 하고 항상 긴장된 몸으로 유지하던 품위를 한잔의 술로 휘청거리게 할 수도 있다.  가사노동으로 경직된 어깨를 한 바탕의 운동으로 달랠 수도 있겠고 빠듯한 살림살이를 잊은 충동구매로 기분전환을 삼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어둡고 밀폐된 공간을 싫어하는지라 영화관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알코올을 분해하지 못하는 덜 떨어진 체질인 데다가 학창 시절 내내 체육은 ‘수 우 미 양 가’ 중에서 ‘양’만 받아온 몸치이고,  골치 아프게 빡빡한 성격으로 인해 충동구매도 쉽지가 않다.  게다가 나이 들어 시작한 바느질은 데드라인도 없고 완성을 재촉하는 사람 하나 없는데도 혼자서 스트레스를 사서 받으면서 외로운 작업을 눈 빠지게 계속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하지만 이런 인물도 다 살아갈 궁리는 하고 산다.


어릴 적부터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지라 나에게 있어 가장 쉽게 마음먹고 실행에 옮기는 활력소란 세상에 나가 다른 곳,  다른 사람들을 보고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들을 머리에 떠올리며 좋아하고,  또 다른 나들이 계획을 짜면서 행복해한다.   시골 장터 한구석에 서서 먹는 국수 한 그릇은 집에서 끓여 먹는 그것과는 많이 다르고,  고급 일식집보다는 어시장 평상 위에 앉아서 먹는 생선회의 맛을 더 잊지 못한다.  하얀 거품이 부서지는 바닷가 백사장에 누워서 읽는 소설책은 매일 침대 머리맡을 지키고 있는 그 책 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떨어지는 폭포수와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비치던 강촌의 자전거 길은 나에게 자전거 타는 것을 배우게 만들었다.  그리고 정말 정말 드문 일이지만, 늦은 밤까지 식구들을 잊고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장에서 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흔들다 오는 일탈에서부터, 쉽게는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맘이 맞는 친구들과 맛난 음식을 먹고 수다를 떨며 보내는 소박한 반나절도 내게는 필요하다.  


유난히 많은 일들을 해치워야 했었던 한주가 끝나가는 금요일,  나는 내가 부엌에 서서 지지고 볶아서 해 먹는 밥이 아닌 남이 해주는 맛있는 밥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먹었다.  그리고 선선한 바람과 조금은 따가운 햇빛을 몸에 두르고 호숫가를 산책했다.  그러는 내내 나누었던 우리의 수다는 그래봤자 우리의 사는 얘기, 가족 얘기, 아이들 이야기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거리낌 없이 맘껏 웃고 눈가에 주름을 보태며 일상에서 한 발짝 나갔다 돌아온 반나절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식구들을 위한 맛있는 저녁밥을 짓게 만들었다.


생명 유지에 필수 요소이면서도 사람의 몸안에서 합성이 되지 않아 계속해서 공급되어야만 하는 비타민처럼 일상생활에서는 충족되지 않는 필수 요소가 인생에도 있다.  그것이  ‘꿀꺽’ 삼키면 되는 한 알의 비타민같이 간단하지는 않겠지만 일상에서 탈출한 며칠,  혹은 반나절은 분명 앞으로 이어갈 일상을 견디기 수월하고 즐겁게 만든다.


로마에서 보낸 공주님의 하루,  잊지 못할 로맨스로 보였던 그 하루가 단지 일상에서 벗어난 한나절의 비타민 같은 활력소로 보이는 나는, 이제 나이가 들었나 보다.   일상에서 탈출해 맛보았던 공주님의 하루가 인생을 바꾸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아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숨 쉴 구멍일 뿐이라고 선을 긋는 나는,  소극적이고 재미없다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박하고 얌전하게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일상 탈출을 하고 비타민을 찾아 먹고 로마의 휴일 같은 영화를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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