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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단 Oct 28. 2016

집을 그리다

침선 수필

올여름 뒷마당으로 나가는 나무 데크에 평상을 마련했다.  캘리포니아의 강한 햇볕에 하루 종일 시달린 집이 뜨겁게 달궈지는 오후가 되면,  나무 그늘 아래 놓은 평상에 나가 앉아 있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아침에 널어놓았던 빨래를 걷어 팡팡 털어 개어놓고,  욕실로 가서 햇볕에 바짝 말라 까실해진 수건으로 바꿔 걸어 놓고 나서도 긴 여름의 해가 밝아 점심밥 같은 기분으로 저녁밥을 먹곤 했었다.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한 번도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까지도 방방마다 따로 아궁이에 연탄불을 때던 집에서 살았었다.     그때 우리 집 여자들의 소원은 따뜻한 물이 펑펑 나오는 편한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었는데 그 소원은 금방 이루어지지 않았고,  부모님은 우리 세 자매를 다 출가시킨 다음에야 살림을 정리해서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셨었다.    물론 출가한 우리 자매도 모두 아파트 생활을 시작했고,  우리 집이 있던,  통장 할머니가 하시던 작은 구멍가게 하나 달랑 있던 그 널널했던 동네는 언제부터인가 아파트 단지가 뺵뺵하게 들어섰고,  어디서 왔는지 모를 사람들이 그 많은 아파트들을 다 채웠다.   동네가 커지니 상가가 생기고 배달을 해주는 마트와 세탁소,  다양한 메뉴를 자랑하는 각종 음식점들 덕에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걸어 다녔던 길거리가 환해졌다.   그렇게 나와 우리 가족들까지 합류한 편리한 아파트 생활을 사람들 모두 누리게 되었다.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 편리하다고들 하지만 아직 어린 나이의 아들을 키우는 입장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고층 아파트라는 게 결국 남의 집 천장 위에서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으니까.   아이에게 뛰지 말라고 성화를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런다고 안 뛰면 애도 아니겠고 아래층에 참으라고 뻔뻔스럽게 굴 수도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천장을 강철로 만들어 아무런 울림도 없다면 좋겠지만 옆집의 전화벨 소리는 물론 조용한 밤에는 더욱더 적나라해져서 코 고는 소리는 물론 위 아랫집 화장실에서 소변보는 소리만 들어도 그 주인공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별을 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이런 수준이니 아들의 뜀박질은 마치 천둥과 같은 소리가 날 것이라 짐작되고도 남았다.   나 스스로가 더 이상의 민폐를 참을 수 없어 이사를 결심했었다.  수리까지 하고 이사간지 8개월 만에 다시 일층을 찾아 이사를 하였으니 맹모삼천지교가 따로 없었다.


새로 이사한 집은 일층 세대에 작은 정원도 딸려 있었다.   마루의 베란다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정원을 통해 놀이터로 갈 수 있어 정작 아들아이는 밖에서 놀지 집에선 잘 안 뛰게 되었었다.   온몸에 흙을 묻히고 지렁이를 잡으면서 노는 아이를 보면서 잔디를 깎고 꽃도 심으니 그동안 받았던 층간소음의 스트레스가 어디 갔나 싶었다.   앞동의 그림자에 가려 햇빛이 적게 드는 것만 제외하면 꼭 아파트가 아닌 것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상추를 길러 여름내 쌈을 싸 먹고 고추도 길렀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어 그 깨끗한 고추로 장아찌를 담그고  그 이파리 하나도 버리지 않고 고춧잎으로 나물을 해 먹으니 정말 살맛이 났었다.    그렇게 나는 나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몇 년을 잘 지냈었다.  하지만 그렇게 그 집에서 살면서도 나는 새삼 또 아파트가 아닌 집이 생각나고 그리워졌었다.


아침에 뚜껑을 열었다가 해가 지면 꼭 덮어놔야 하는 장 단지들.  무얼 넣고 끓여도 맛있던 그 장맛.  실에 꿰어 빨랫줄에 널어 말린 호박고지를 넣어 끓인 된장찌개.  나무에서 바로 따서 먹던 사과보다도 더 맛있던 대추.  마당에 앉아서 번개탄에 구워 먹던 삼겹살.    늦가을 김장을 해서 땅에 묻고,  겨우내 살얼음이 낀 동치미를 꺼내 먹던 것과 생선의 코를 꿰어 매달아 꾸둑꾸둑 말려 찜 쪄먹고 구워 먹고 했던 기억.    김장독을 묻을 때  옆에 묻는 작은 단지엔 소금에 절인 조기를 켜켜이 담아 놓는데,  알맞게 곰삭은 조기는 갖은 양념을 해서 밥 할 때 위에 얹어 찌면 그게 바로 밥도둑이었다.   푹 삭혀 달인 그 조기젓을 넣고 담은 김치 맛은 이젠 어디에도 없다.  서리가 내린 뒤 따먹던 연시도 생각이 난다.   마당 가득 펼쳐 말리던 빨간 고추와 그 위에서 펄럭이던 빨래들.  여름 내 장독대에 앉아서 그림도 그리고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서 온 가족이 화투도 쳤었는데.  어딜 나가지 않아도 그 마당 안에서만 놀아도 정말 재미있었는데.  


나는 지금 아파트가 아닌 집에 산다.   아파트에 살면서 그리워했던,  나 혼자 맘에 집이라고 정의 짓던 그 공간. 지금 그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있으면서도 집이 그리우니 어쩐 일인지 모르겠다.   허브도 몇 그루 키울 수 있고 깻잎도 키워 따먹고,  소나무에서 솔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기도 하면서 살고 있는데도 집이 자꾸 그리운 건 왜인지 모를 일이다.     장독대가 없어서 인지,  마당 가득 빨갛게 고추를 말리지 않아서 인지,  그도 아니면 여름에 내어 놓은 그 평상에 앉아 놀기엔 식구들이 다들 너무 바쁘기 때문에?  그래서 늘 나 혼자 달랑 나가 앉아 있기 때문인지도......     


올여름 방학,  내가 평상에 혼자 앉아 있는 동안 아들은 한국엘 다녀왔다.   나의 부모님은 십여 년의 아파트 생활을 거쳐 지금은 다시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계시는데,  그곳에서 아들은 할아버지와 마당에서 등물을 하고 평상 위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내 아버지가 따다 말려두신 쑥으로 피운 모깃불 옆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수다를 떨고 할아버지의 장화를 빌려 신고 잔디 깎기를 밀고 다니며 여름 내내 뒹굴뒹굴 놀다 왔다.   그곳에 있는 동안 아들이 보고 삼아 매일 보내주었던 사진과 영상들에 제목을 붙인다면 그게 바로 '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요즘도 집이 그립다.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내가 '집이 그립다' 고 말하는 게,  사실은 부모님이 계시는 곳을 그리워하는 '향수'인 것인지,  어릴 적 살던 그 집을 그리워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니면 몇 년째 살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이 여전히 낯설고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쓸고 닦고 열심히 건사하면서도 자꾸 여기가 아닌 그 어떤 '집'이 그리운 내 마음을,  나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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