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익명의 새글 Oct 10. 2017

꽃잎으로 현현하는 관능의 서사

-장선우 <꽃잎>을 보고

※아래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장선우 <꽃잎>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1시간 24분 50초. 꽃잎에 비견되는 붉은 입술과 흰 치아, 입술이 달싹일 적마다 덩달아 물결치는 핏빛 옷 주름.  소녀의 미장센은 관능적이다. 1시간 남짓 보아왔던 소녀의 비루한 생을 순식간에 무마할 정도다. 이 모순적인 관능은 어디에서부터 기인하였으며 또 어디를 향하는 것인가.


   관능은 통상적으로 대중에게 섹슈얼리티로 각인된다. 많은 영화가 섹슈얼리티를 통해 의미론적 관능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왔다. 그런 점에서 소녀의 관능은 시종일관 철저하게 시각화된 관능이다. ‘꽃잎’이 여성의 음부를 상징하는 은어로 사용된다는 점을 상기해 보라. 그러나 그러한 타성적 관능이 소녀의 생 전부라 할 수는 없다. 한자어 그대로의 관능(官能)은 “감각 기관을 비롯하여 생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기관의 기능”이다. 관능은 생의 도구이자 증명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관능으로써 존재하고 살아간다. 따라서 작중 섹슈얼리티는 관능의 제유(提喩)에 지나지 않는다.


<꽃잎> 1시간 24분 50초의 미장센


   가이아적 모성애에서 태동한 그녀의 관능은 생을 지키기 위해 개화한 꽃잎 그 자체다. 생을 지키려는 꽃잎의 본능적인 의지는 불가역적으로 곤충에게 주목된다. 영화에서 소녀가 상상하는 곤충은 수분을 돕는 익충은 분명 아니다. 그로테스크하게 묘사된 곤충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정상적으로 분리되지 못한, 그래서 세상을 실재로써 수용하지 못하는 꽃잎같이 어린 자궁의 동화적(童話的) 시선에 내재한 그녀의 분리불안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곤충은 결국 어머니의 자궁 대척점에 있는 ‘아버지의 법’의 집행자다. 그로테스크는 특정 시대에 직면하여 기형화된 아버지의 세계를 암시한다. 왜곡되고 시커먼 아버지의 세계가 소녀로 하여금 어머니를 배반하게 했다. 그러나 어머니를 더욱 갈망하게 된 소녀는 상징계의 질서에 편입하기를 거부해 버린다. 이는 정신병에 관한 라캉의 사유와도 맥을 같이한다.


   소녀는 아버지를 저버리고(혹은 아버지에게서 버려지고) 흰 천으로 현재화한 어머니와 동행한다. 그녀의 이뤄지지 못하는 회귀 욕망은 비로소 순전한 관능으로 표출된다. 아버지의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결핍된 남성들은 소녀의 관능에 동화한다. 그리고 그녀의 관능은 남성들의 회귀에의 욕망에 불을 지핀다. 김상태는 처음 폐가에서 발견한 그녀를 “같은 인간으로서도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의 모든 신체적 관능(官能)은 비정상적일 만큼 온전하다. 소녀가 어머니의 온전한 자궁을 갈망하듯 남성들은 열다섯 소녀의 불완전한 자궁을 욕망한다. 김상태는 소녀를 통해 죽은 연인의 회귀를 체험했다. 다리를 절면서 창고 같은 곳에 사는 장은 아버지의 세계에서 자꾸만 동일시되는 소녀와 자신을 거리 두고자 그녀의 여성으로서의 관능에 치중한다. 진위를 판별할 수 없는 불순한 법과 질서로부터 벗어난, 무의식적으로 자궁으로부터 부여받은 순수한 관능으로의 회귀를 욕망하게 되는 것이다.     
 


어머니를 더욱 갈망하게 된 소녀는 상징계의 질서에 편입하기를 거부해 버린다. (출처= 네이버 영화)


   1시간 24분 50초는 그녀가 진정 꽃잎으로 현현하는 순간이다. 강압으로 인해 모성을 저버렸다는 진실과 조우하는 그녀의 관능은, 역설적으로 회귀의 불가능을 깨달은 순간 오히려 눈부시게 개화한다. 생의 마지막에 활짝 피우고 스러지는 꽃잎과 같이 널브러진 그녀는 오갈 데 없는 관능의 알레고리다. 그녀의 고통과 허망이 핏빛 미장센 속에 아로새겨진다.


   마지막에 ‘우리들’은 끝내 찾지 못한 그녀가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어디에나 있는 존재임을 시인한다. 그녀의 생은 시대적인 비극의 서사이자 비루한 ‘우리들’이 잃어버린 관능의 서사다. 김수영도 일찍이 아버지의 세계 속에서 관능을 잃고 타성에 젖은 대중을 향해 ‘식민지의 곤충들’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이처럼 역사를 등진 예술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꽃잎과 곤충, 그리고 관능에 대하여.





작가의 이전글 불행에 관한 고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