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문재인 대통령 평양 방문 및 공동선언 평가
많은 화제를 낳은 문재인 대통령의 첫 평양 방문이 마무리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당 청사 방문, 5.1 경기장 연설, 백두산 방문 같은 눈과 귀를 자극하는 이벤트가 헤드라인을 채우며 우리의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러나 이벤트는 일회성이고 눈속임이 용이하다. 회담 평가의 핵심 근거가 될 수 없다. 결국 평양 방문은 비핵화라는 근본 틀에서 평가하는 게 옳다. 이번 정상회담은 실질적 성과가 있었는가, 속 빈 잔치였나.
박한 평가가 적지 않다. 비핵화와 관련된 조치가 상징적일 뿐 본질적이지 않다는 것이 지적의 핵심이다. 첫째, 이번에 북한이 약속한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폐쇄는 미사일 엔진 추가 실험 중지 정도의 의미는 있으나 기존에 생산된 미사일은 손대지 않았고, 미사일 발사대 폐쇄 역시 북한이 이동식 발사대를 보유한 이상 군사적 의미가 크지 않다고 지적한다. 둘째, 북한은 미국의 '상응조치'에 따라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를 추진할 용의를 평양 공동선언에서 합의하였지만 이는 북한이 그동안 주장해온 행동 대 행동을 재확인한 수준이라고 본다. 근본적인 태도 변화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셋째, 비핵화는 이렇게 더딘데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성급하게 풀고 있다라는 지적이다.
북한이 현재 보유한 핵능력에 대해 실질적 양보 조치가 없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남북 외교는 비핵화 조치, 순서, 일정을 논의하는 장이 아니다. 한국의 협상 카드가 제한돼있기 때문이다. 미국만이 경제 제재 해제, 종전 선언, 북한 안보 강박 해소를 해줄 실질적인 당근을 보유하고 있다.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당근을 제시할 수 없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은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약속할 수도, 할 이유도 없다. 좋던 싫던 북핵은 북미가 협상하고 풀어갈 어젠다다. 이번 평양 공동선언에 구체적, 본질적 비핵화 조치가 부족하였다는 비판에는 이런 맥락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대신, 평양 방문과 평양 공동선언문은 징검다리로서 평가되어야 한다. 즉,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동력을 이어가기 위한 징검다리, 남북 간 평화공존 체제로의 전환 가능성을 탐색하는 징검다리로서의 목적을 이뤘는가.
첫째, 한국 정부는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중재자는 양쪽을 오가며 정보를 생성, 전달, 공유하고, 만남을 주선하며, 필요에 따라 관련국을 조언한다. 결국 이번 평양 정상회담은 지난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다소 정체된 북미 협상의 모멘텀을 살려내었는지, 한국이 북미 소통의 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다. 때문에 이번에 공개된 방문 일정과 공동선언문의 행간만큼이나 (1) 평양 방문 직전 워싱턴에 전달된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 등을 통해 북한이 미국에 직접 추가적으로 얘기한 양보/요구 조치가 있는지, 무엇인지, (2) 또 문재인 대통령이 다음 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할 김정은 위원장의 추가적 메시지 존재 여부와 그 내용이 관건이다. 정보 라인이 주도하는 2018년도 남북미 협상의 성격 때문에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눈에 보이는 내용만으로는 낙관도 비관도 모두 성급한 이유로 충분하다.
둘째, 한국 정부는 남북관계의 당사자이다. 또 북미 협상이 지연되고 틀어지면 가장 즉각적으로 타격을 받는 당사자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과거 경험을 통해 비핵화의 과정이 한국이 통제할 수 없는 다양한 리스크로 가득 차 있음을 몸소 알고 있다. 비핵화는 강대국의 전략적 이익이 걸려있어 한국의 손을 벗어난 상황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비핵화의 속도에 매몰되지 않고, 남북 간 관계를 단기적으로는 관리하고 길게는 평화공존의 방향으로 전환시켜야 할 동기가 발생하는 이유다.
때문에 이번 공동선언이 이러한 리스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남북 간 군사긴장완화, 신뢰구축 조치를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합의한 면은 평가받을 만하다. 서해 완충지역에서 km의 논란이 있지만 내용도 대체적으로 상호적이다. 적극적인 대북정책만으로는 비핵화를 유도할 파급력은 지니지 못한다는 태생적 한계는 있지만, 향후 한반도 군사적 긴장을 야기시킬 외부 충격을 고립시키고 억지시킬 수 있는 완충대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오랫동안 한반도의 안보 리스크로 작용해온 오인에 의한 충돌 리스크 관리 효과도 기대한다. 결국 이번 합의 사항의 추후 실천 여부가 남북관계 진전의 징검다리 역할에 대한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결론을 내리면 한국 정부는 이번 평양 방문을 통해 (1) '중재자'로서 당장의 비핵화 협상 동력을 되살리고 (2) '당사자'로서 장기적 남북관계 리스크 관리 두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분리되어 보이기도 하고 연계되어 있기도 하다. (1)이든 (2)든, 둘다든, 평양 공동선언문은 이제 막 시작된 한반도 평화체제로의 전환 가능성 탐색과 구체적 실천 방안을 논의할 지루하고 긴 과정의 시작일 뿐이다. 동시에 앞으로 나가기 위해 징검다리를 만들고 다져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맥락을 담지 않은 평가는 성급할 뿐더러 큰 의미도 없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남북, 북미, 한미 협상과 조율 과정의 초점이 비핵화에 전부 놓여있기보다 최소한 작년 이맘때 즈음의 초긴장 군사대립 상태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돌아갈 수 없는 징검다리'로 놓는 것에 맞춰져 있길 바란다. 북한의 핵보유는 불안정을 야기하고 안보리스크를 지우지만, 예전처럼 비핵화에 집착하다 겉잡을 수 없는 일촉즉발의 핵긴장 상태로 되돌리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비핵화는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