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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ori Dec 28. 2019

아프가니스탄 페이퍼 논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왜 실패했을까?

워싱턴포스트지(WP)에서 12월 중순 공개한 이른바 아프가니스탄 페이퍼 기사를 읽어보았다. 아프가니스탄 페이퍼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도통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던 2008년에 미 의회가 세운 미 아프간 재건 특별감사관실 (SIGAR)이 작성한 2,000쪽의 문건이다. 아프가니스탄 교훈을 찾기 위한 작업이었다. 아프간 전쟁에 참여했던 400여 명의 군인, 고위 관료, 외교관, 아프간 당국자 등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기밀문건으로 분류돼있었는데 WP가 3년간의 법정 싸움 끝에 입수하여 공개하면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지의 아프가니스탄 페이퍼 특집 기사면---------인터넷으로도 열람이 가능하나 유료;;


이 기사에는 지난 18년간 미국의 군사력, 자본, 정치력이 마치 늪에 빨려 들어가듯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국가 재건 과정 속에 잠식당한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무엇보다 그 긴 세월 미국이라는 국가의 이름 하에 자행되고 묵인돼온 여러 범죄와 부패의 민낯을 당사자들의 입으로 고백한 기밀문서라는 점에서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6부작에 걸친 이번 기획 기사에는 관련 SIGAR 인터뷰 원본 자료까지 읽을 수 있게 정리돼있다. 정말이지 미국 저널리즘의 묵직한 힘이 느껴진다. 


그러나 부시를 비롯하며 오바마, 트럼프 행정부까지 전쟁의 실상에 대해 장밋빛 발표로 국민을 속였다는 WP 핵심 주장의 파급력은 제한적이다. 이미 알려진 메시지에 디테일과 생동감을 부여할지는 몰라도 놀랄만한 새로운 메시지가 없기 때문이다. 즉, 아프간 전쟁은 알케이다 소탕과 탈레반 정권 축출이라는 제한된 전략적/군사적 목표만 달성했을 뿐, 아프가니스탄의 국가 안정화와 민주정권 수립이라는 전쟁 이후의 재건에는 완전히 실패했음은 이미 여러 매체들을 통해 잘 알려진 바다. 전문가/학자들의 글 속에만 존재하는 결론이 아니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War Machine’은 아프가니스탄 사령관(브래드 피트)이 부임 당일 아프간 정부/사회에 만연한 부패, 미-아프간 정부 간의 갈등, 갈수록 팽창하는 마약 재배 등에 대해 설명을 듣고 당황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2년 전 영화다. 


(좌) War Machine (2017) 우스꽝스럽지만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우) 한국에서도 오랜 베스트셀러였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프가니스탄 전문가가 된 것은 아니다!


아프간 전쟁은 왜 실패했을까? 이유는 여럿이고 하나같이 복잡하지만 하나는 ‘무지’로 축약된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지역 전문가는 물론 재건 전문가도 부족했다. WP 기사에는 미국에서 파견된  관료/재건 인력이 아는 거라곤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비행기 편에서 읽은 ‘연을 쫓는 아이’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한 베스트셀러) 한 권의 지식뿐이라고 개탄하는 아프간 장관의 푸념이 나온다. 또 순환근무 체제 속에 1-2년마다 담당 직원의 아프간 전문 지식이 리셋되는 악순환이 반복돼왔다. 


아프가니스탄 페이퍼에는 무지로 인한 정책 실패의 예가 가득하지만 알 케이다와 탈레반을 적극적으로 구분 짓지 않은 것이 특히 치명적이었다. 알 케이다와 탈레반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라는 포장은 같지만 지향점과 지리적 거점, 정치/사회적 배경이 엄연히 다른 조직이다. 특히, 9/11 당시 알 케이다는 탈레반 정부의 보호 속에 아프가니스탄에 머물던 손님이었다. 9/11의 책임이 있는 알 케이다 소탕은 명분도 있었고 실현 가능한 전략적 목표였지만, 9/11과 직접적 관계가 없을뿐더러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이 거점인 탈레반을 소탕하겠다는 목표는 명분도, 실현 가능성도, 모호했다. 아프간 사태가 18년이나 끌어온 데에는 탈레반이 알 케이다와의 공생관계를 깨끗하게 끊길 거부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두 그룹을 적극적으로 구분 지어 상대하기보다 뭉뚱그려 함께 소탕의 대상으로 삼은 미국의 무지와 욕심에서 비롯된 책임도 크다.  


탈레반(좌)과 알케이다(우) 전투요원-- 겉모습으로 구분이 가능한지 모르겠다ㅠ 미군 모라할게 아니다ㅠ


9/11 직후 전격적으로 시작된 전쟁이기 때문에 초기의 무지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1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무지했던 것은 미국의 ‘무관심’ 탓이다. 전쟁보다 점령이 어렵고, 점령보다 어려운 게 재건이다. 워싱턴은 그 반대의 순으로 관심을 두었다. 불과 수주만에 수도 카불을 점령하자 관심이 빠르게 식었다. 특히 2004년 어렵게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탄생하면서 재건의 단계로 전환되던 순간 미국은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혼잡한 이라크 내부 상황에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전쟁의 무게감이나 상징성 면에서 아무래도 아프가니스탄은 이라크보다 후순위에 있었다. 결국 아프간 재건에 더 이상 세밀한 정책을 고민할 여력이 없던 워싱턴과 아직 통치 능력을 갖추지 못했던 신생 카불 정부라는 최악의 조합을 낳았다. 전략적 비전의 부재와 무지 속에 미국은 눈먼 돈만 뿌려댔고 아프가니스탄의 부패는 점점 제도화되었다—이번 WP의 기사의 초점이기도 했다. 상황은 급속히 악화됐다. 


출처: WP, "Inside the Taliban’s Afghanistan, violence remains the path to power", Dec 19, 2019


이후의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다. 탈레반은 슬금슬금 다시 활동을 재개하였고 곧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부패한 카불 정부는 여전히 무기력했다. 미국은 오바마 정부 당시 일시적인 미군 증강 surge 을 통해 마지막 탈레반 소탕 작전에 나섰으나 이에 맞춰 산악지대로 숨어 들어간 탈레반을 몰아내기에 역부족이었다. 결국 2019년 현재 카불 정부는 아프간 영토의 53.8%만 온전히 지배 중이고, 33.9%는 탈레반과 경합 중이며, 12.3%는 탈레반이 장악한 상태다. 그 사이 15만 명에 달하는 아프간 군과 민간인, 탈레반군이 사망했다.


군사 작전의 실패로 워싱턴과 카불 정부는 새로운 현실에 맞게 정치적 셈법을 바꿔야만 했다.  2018년 아프가니스탄의 가니 대통령은 탈레반을 합법적 세력으로 인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역시 올해 미군 철수를 위한 탈레반과의 평화 협상을 재개했다. 탈레반은 그렇게 18년을 살아남아 다시 아프가니스탄의 중앙정치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 모두에게 피비린내 나는 아픈 추억만 남긴 전쟁은 그 누구도 승리하지 못한 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태세다... 


세계 테러, 국가 재건, 중앙아시아, 모두 한국이 당장 마주한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져 보인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재건에는 현대 국제 정치/사회/안보가 던져야 하는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이 담겨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비대칭전 전투, 산악 전투, 드론 등의 분야에 풍부한 전술 데이터가 축적돼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재건 노력이 실패한 과정을 보면 침략한 국가를 재건시킬 능력이 없는 전쟁은 안하느니 못하다는 일차적 결론도 나지만 동시에 더 효과적인 재건 방안을 연구하는 야심찬 이들에게도 더 없이 유용한 케이스가 될 것이다. 변화한 미국의 세계 위상과 현재 트럼프 정부의 군사력 투사 자제와 축소 경향의 원인도 일부분 아프가니스탄 전쟁 실패에 담겨있다. 아프가니스탄의 경험과 교훈을 심도있게 정리해놓아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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