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전등화의 New START--그 원인과 함의
미국과 러시아가 이번 6월 22일 빈에서 신전략무기 감축협정 (New START) 연장 협상을 갖기로 발표했다. New START는 2010년에 맺은 미국-러시아간 핵군비통제 조약으로 (1) 실전 배치된 핵탄두 수 제한, (2) 핵 운반수단 수 제한, (3) 이를 위한 상호 검증절차가 핵심 내용으로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 초반에 시작된 핵군비통제 레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내년 2월까지 연장 합의에 실패하면 자동 종료되는데 문제는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폐기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미 지난달인 5월 21일 항공자유화 조약 (the Open Skies Treaty) 탈퇴 의사를 밝힌 바 있다. OST는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 34개국 (주로 NATO회원군)이 1992년에 체결된 조약으로 가입국 간 비무장 공중정찰을 통해 군사활동의 투명성을 높이고 상호 신뢰 구축 및 유지하면서 미러 간 군사적 긴장 수위를 낮추는데 기여해왔다.
이는 2019년 미러중거리핵전력조약 (INF) 탈퇴에 이은 두 번째 핵군축 관련 조약 탈퇴 선언이고 2018년 이란 핵협정 (JCPOA) 파기까지 치면 트럼프 행정부가 휴지조각으로 만든 세 번째 핵 관련 협정이다. New START는 이제 마지막 남은 미러 간 핵군비통제 조약이다. 이게 폐기되면 두 나라는 50여 년 만에 아무런 상호 정보공유나 감시 및 검증의 수단 없이 서로에게 핵을 겨누던 냉전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이미 여러 차례 언급되었듯 INF 탈퇴도 그렇고 미국이 New START 종료 카드를 만지작 거리는 이유는 2000년 이후 급상승 해온 중국의 핵전력에 있다. 중국은 INF와 New START의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에 지난 10-15년간 자국의 핵전력을 별다른 제재 없이 급속도로 증강/현대화했는데 이게 같은 시기에 진행된 미중간 군사적 갈등과 맞물리면서 중국의 핵전력이 미국의 적극적 견제 대상이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 그동안 미국은 지속적으로 New START에 중국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고, 곧 열릴 빈의 협상장에도 중국을 초청한 상태다. “중국이 강대국의 지위를 얻고 싶다면 비밀리에 핵전력을 증강할 것이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처럼) 강대국다운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하라"는 미국 군축 담당 특사의 (트윗) 주문과 함께.
중국은 그러나 그동안 일관되게 삼자 협상 참여를 거부해왔고, 어제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거부의사를 밝혔다. 중국은 1964년 핵보유국이 된 이후 2000년대 초까지도 최소한의 핵무력을 확보하는 정도로 핵전력을 운용해 핵통제의 관심 밖에 있었다. 중국의 부상 속도에 비춰보면 최근의 핵전력 증강과 현대화 작업은 좀 뒤늦었다는 느낌일 정도다. 중국은 현재 300 여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6000기에 달하는 미국과 러시아가 각각 보유한 핵탄두에 비해 턱없이 작은 숫자다. 북경 입장에서는 일단 몸집이 더 커질 때까지는 핵군비통제 협상을 거부하고 미루는게 합리적 선택지라고 판단할 수 있다.
워싱턴 내에는 중국의 핵전력 증강 속도와 규모의 통제 필요성에는 널리 공감대가 형성돼있지만 그렇다고 트럼프 특유의 막가파식 대응책, 즉 New START를 폐기하고 전면적 핵경쟁을 시작하겠다며 중국을 위협하는 식의 구상에 동의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1) 50년 가까운 핵군축 협상의 역사와 노력의 결과물인 New START를 중국 압박 카드 용도로 하루아침에 거품으로 만들 수 없고 (2) New START 폐기가 초래할 핵통제 공백 상황은 천만 위험하며 (3) 설사 미러중 삼국 간 핵군축 협상이 시작돼도 이게 하루아침에 체결될 리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 통제 장치의 파기는 미국, 러시아, 중국 삼자 간의 위험한 핵경쟁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때문에 미러간 New START는 일단 연장하고 중장기적으로 중국의 참여를 설득하자는 게 전문가들 사이의 중론이다. 다만 중국을 설득시킬 방안이나 양자 간 New START를 대체할 삼자 간 핵군축 레짐의 형태 등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그동안 참 일관성 있게 각종 국제합의를 흔들고 무력화시킨 화려한 경력 덕(?)에 New START의 운명이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해 보인다. New START 강점은 미국과 러시아가 오랜 시간 쌓은 경험과 신뢰를 바탕으로 구축한 민감한 핵전력 정보의 공개 범위, 검증 및 공유 절차 등과 같은 기술적 부분에 있다. 비록 일부 부족한 부분에 대한 지적이 있으나 New START 하에 수집되고 공개된 정보에 충분한 신뢰성을 부여하여 핵군비통제 레짐을 지탱해온 기둥이다. 이 노하우를 리셋하는 New START 폐기는 여전히 중국의 참여를 이끌어 낼 카드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그로 인한 중장기적 손실은 매우 우려스럽다.
많은 미국 외교 안보 이슈와 마찬가지로 New START의 운명도 올 11월 미국의 대선에서 결판난다. 현재 미국 국내 정치의 혼란과 이슈를 도덕적 관점에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트럼프의 선택은 미지수지만, 조 바이든의 공약에는 New START 연장이 포함돼있다. New START의 연장은 대통령 서명을 이뤄지기 때문에 내년 1월에 취임을 해도 2월 만료일까지 시간적으로 촉박하거나 절차적으로 복잡한 사안은 아니다.
우리는? 이 이슈는 결국 강대국 간의 핵 대립축이 미-러에서 미-중으로 옮겨간다는데 핵심이다. 근데 그냥 느낌 정도지만 점점 풍부해지는 미-중 갈등 요소 논의에 핵경쟁/핵확산은 아직 좀 뒤로 밀려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냉전 당시 미소 관계나 유럽 안보 역학에 핵이 차지했던 지배적 위치를 돌이켜보면 점점 심화되는 미중간 핵경쟁과 대립을 우리의 안보의 부차적 변수로 취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에 관련된 연구를 찾아봐야겠다.
코로나가 2020년 전반기 국제이슈면을 도배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한 국제사회의 변화를 그려보는 논의만큼 코로나와 별개로 움직이고 있는 국제정치의 복기도 필요하다. 미러 중 세 핵보유국 간의 힘겨루기는 2020년 후반기에도 코로나 사태와 미 대선에 가려 여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핵경쟁이냐 핵통제냐의 갈림길 앞에 선 국제안보 현실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코로나 대응 정책 개발만큼 (아니면 그 이상의) 다양한 전문가와 정책결정자들의 지속적 관심과 고민이 필요한 국가 안보의 주요 중장기적 도전과제로 인식돼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