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도빌 포위작전 (2016)
전투(battle)의 성패는 전술(tactics)이, 전쟁(war)의 결과는 전략(strategy)이 결정한다. 군사학 101 기본 개념이다. 이 구분은 개념적이고 이론적일 뿐 아니라 실제 군사 운용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전략과 전술은 맞물려있지만 그 결과물은 종종 충돌도 한다. 각개전투 결과와는 다르게 패전으로 치닫는 전쟁을 수행했던 2차 대전 독일군이 있는가 하면, 주목할만한 전술적 승전 없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베트남군도 있었다.
[자도빌 포위 작전]은 전사자 하나 없이 수십 배에 달하는 적군의 공세를 5일이나 버텨낸 UN 평화유지군 소속 아일랜드 중대의 분투를 밀착 묘사한 전투 영화다. 그러나 현장 지휘관의 의도와 배치되는 악조건 투성의 전장에서 전투가 시작된 원인인 전략적 오판에 대한 따가운 비판도 잊지 않는다.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정치인이 이기적이고 무책임하게 내린 결정으로 전투 경험이 전무한 부대가 수십 배에 달하는 적들과 전투를 벌이게 된다는 설정은 언뜻 진부해 보이지만, 이는 상투적 장치가 아닌 1961년 콩코의 Katanga 지방에 파견된 UN 소속 아일랜드 평화유지군이 UN의 전략적 오판으로 인해 프랑스·벨기에 용병이 이끄는 콩고 군 4,000-5,000명을 상대로 싸웠던 5일간의 실제 전투 기억을 끄집어 기록한 것이다.
[자도빌 포위 작전]의 방점은 중대를 이끈 퀸란(Quinlan) 소령의 리더십과 노련한 전술 운용에 찍혀있다. 영화는 이를 생생하게 재연해낸다. 현장 지휘관은 상층부의 오판에서 시작된 원하지 않는 전투를 거부할 권한이 없다. 주워진 조건 속에서 아군의 희생을 최소화시키고 적군의 최대 사살시켜 굴복시키는 기술, 즉 전술의 중요성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이유다. 물자, 물량, 무기, 작전, 숙련도, 사기, 날씨 외 수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전장에서, 이를 적절하고 재빠르게 종합 판단하여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군이 전투에서 승리한다. Quinlan이 지시한 참호 위치, 물자/물량 배분, 군사 배치, 경계와 같은 세세한 결정은 아일랜드 병사들이 생명을 보존하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핵심 요소들이었다. 그 작은 결정들이 전장에 남긴 큰 자국들을 조명하며 영화는 Quinlan의 잊혀졌던 눈부신 활약에 찬사를 보낸다.
퀸란에게 보내는 찬사의 바탕에는 그러나 전략 부재에 대한 묵직한 비판이 깔려있다. 전략은 전투의 시점과 지점, 전장 조건들과 같은 성패를 결정짓는 주요 조건을 설정한다. [자도빌 포위 작전]은 UN의 잘못된 전략적 판단으로 인해 앞뒤가 개방되어 있고 물자 보급이 어려운 악조건의 방어 지점에서 갑작스럽게 개시된 전투다. 영화는 UN책임자였던 오브라이언 박사가 내린 전략적 판단이 내려지는 과정을 놓치지 않으며, 뒤이어 그 오판의 결과를 뒤집어쓴 현장 군인들의 피가 튀기고 살점이 뜯겨나가는 처절한 몸부림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Quinlan의 노련한 전술을 빛내는 장치이면서, 그 모든 고통의 시작점이 UN의 전략 부재에 이었음을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간략하게 언급되지만 전략적 고려는 전투를 가까스로 치러낸 군인들의 이후 운명도 잔인하게 처리해버린다. 물자가 고갈되어 항복한 이들은 한 달 남짓 전쟁 포로의 생활을 했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 눈부신 전술적 성공이 전략적 패배 뒤에 숨겨지며 그 활약 또한 역사 속에 묻히고 만 것이다. 1961년의 이야기가 수십년이 지나서야 대중에게 알려진 이유다. 이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싸웠던 것일까. 1961년 자도빌 전투의 위에서 작동했던 전략이라는 것은 그렇게 전투의 과정과 결과물까지 공허케했다.
"정치인은 전술을 이해 못해. 군인은? 전략을 몰라." 파병 전날 수하 병사들과 나눈 대화 중에 Quinlan이 이어서 내뱉는다. "... 카이사르는 둘 모두를 이해했지."
고금을 막론한 카이사르에 대한 동경은 그만큼 전술과 전략을 동시에 섭렵한 지도자가 드물었음을 알려준다. 전술과 전략을 각각 다른 이가 담당하는 보통의 전장에서 둘 간의 충돌 여지는 더욱 클 수밖에 없으며 종종 필연적이기까지 하다. 때문에 [자도빌 포위 작전]이 은연중에 주목한 이 충돌 지점은 1961년 아일랜드 전쟁 초보자들을 갑자기 덮친 불운이 아니라 전투와 전쟁 중 늘 맞닿뜨려야 하는 필연적 장애물로 보는 게 맞다. 수많은 전투가 그랬고 지금도 다음도 그럴 것이다.
전투와 전쟁이 더욱 비극적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