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브리지 스파이 (2003)
공산주의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참으로 냉혹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가 여전히 읽히는 것은 그 근본에는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현실을 처음 접하게 되는 20대에 공산주의의 매력은 그래서 그렇게 강렬하게들 다가간다.
Cambridge Spies (2003)는 차별, 착취와 같은 단어가 당연시 여겨지던 20세기 초기의 시대 상황에 반발하고, 그 대안으로 공산주의를 받아들인 4명의 캠브리지 대학생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It's a simple, unavoidable choice, Donald. Communism or fascism. Everything in the middle has gone to sleep. To fight fascism you have to be a communist. Anything else is appeasement."
이들은 그 선택에 대한 자부심과 삶에 대한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곧 그들이 바로잡고자 했던 현실만큼이나 차가웠던 스탈린주의에 종속되어가고 결국은 그 현실을 지탱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올바른 해결법을 찾는 것과 분명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별개이기도 하다. 하나의 틀에서 두 가지 모두를 이루려는 흔한 행동에 경고를 주는 듯했다.
영화는 스페인 내전(1936), 독소 불가침 조약(1939), 세계대전, 소련의 핵무기 개발(1949) 등을 동시대 사람들의 시각에서 생동감 있게 조명해내었다. 특히, 파시즘에 침묵하는 서방국가들에 분노하며 스탈린을 그 구세주로 믿고 있던 이들에게 독소 불가침 조약이 던진 충격을 그린 장면이 인상 깊었다. 냉전 초기 세상을 들었다 놓았던 킴 필비(Kim Philby)의 열정과 고뇌도 설득력있게 그려냈다.
사회의 모순에 대항하는 순수함과 눈을 감고 소련을 받아들인 무모함은 분리될 수 없었던 것일까,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뒤틀어진 현실의 논리 속에 매몰된 이들의 열정은 우리에게 어려운 질문과 불쾌한 답변을 던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