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만 그래도 행복한 순간들을 즐기려고 했던 포닥
몇 년 전에 "흔들리며 살아가기"라는 제목으로 썼던 글입니다. 지금 힘들게 포닥 자리를 찾고 계시거나 미래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계시는 분들. 이 글 보면서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 생각하며 위로 받으실 수 있길 희망합니다.
지난 6월 이후에 한 8개월 만에 글을 쓴다. 그동안은 바쁘기도 했었고 글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쓰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나의 일기장처럼, 개인공간처럼 느껴지는 이 곳에는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요약하자면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부침이 계속되고 있다.
졸업 후 진로가 아주 아주 불투명했던 시기가 있었다. 박사 디펜스를 마친 5월초에는 졸업하는 8월 중순까지 시간이 많다고 느꼈었다. 뭔가 어떻게든 될 것 같았던 기대감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급함으로 바뀌기 시작했었다. 내가 원하던 진로의 방향으로는 아주 더디게 일이 진행, 아니 거의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졸업하고 손가락 빨고 싶지 않았던 나는 회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좋은 곳들에서 오퍼를 받고 협상까지 진행 중에 있었지만 내가 오래도록 원하던 쪽으로의 미련이 남아있던 상태였다.
절망까지 할 뻔하다가, 대기업 연구원이 되는 일이 왜 절망해야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역시 훌륭한 인생이다. 그리고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그 쉽지 않은 길을 자부심 넘치게 걷고 있다. 왜 마음 속에 품어온 그 꿈, 그 길이 아니면 실패라고 생각을 해야만 했을까하는 자책이 들다가 연민도 들었다. 왜 나는 그 부담감을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왔을까. 성찰없이 품어온 어릴적 꿈에 대한 벌이었을 것이다. 가족의 기대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생각을 바꿨다. 아니 바꿔보려 노력했다. 왜냐면 결국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으므로.
완전히 끝까지 버틸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 더 노력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마음이 기특해서였는지 정말 가고 싶던 곳에서 인터뷰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그 곳에서의 연락은 한 동안 오지 않았다. 인터뷰의 분위기는 좋았었기에 연락이 오지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실망감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개의치 않으려 했지만 자꾸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마음을 비우고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그럴 시기는 아니었다. 열심히 구직활동을 해도 모자라던 그 때에 친구 부부와 전화도 인터넷도 잘 되지 않는 곳으로 며칠 다녀왔다. 어른들에게야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느낄 수 있던 여행이었지만 갓 돌이 지난 우리 아들에겐 고된 수행의 시간이었다. 매일밤 울고불고 힘들어하는 아들 달래고 어르느라 다른 고민을 머릿 속에서 깨끗하게 지울 수 있던 시간이었다. 물론, 대자연을 보며 고민을 잊자고 간 여행이었지만... 어쨌든 고민을 잊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론 목표를 이룬 셈이었다.
여행 마지막 날 밤, 인터넷이 되는 도시로 나와서 하룻밤을 지냈다. 아들과 아내가 일찍 잠들어 불은 꺼둔 방 안에서 홀로 생각에 잠겼다. 등 뒤에서 현실이 여행의 끝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번 인터뷰했던 곳의 교수에게 몇 번이고 쓰다 지우다 고쳐쓴 이메일을 보냈다. 보낼까 말까 고민을 많이했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글이었다. 아마 여행지에서 여행자의 감성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메일을 쓰지도, 보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담은 메일은 그 새벽 침대 위에서 보내졌다. 보낸 메일을 되돌릴 수 없었다. 잠에 빠져들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여전히 아무 연락이 없었다. 일단 현재 살고 있는 집의 계약이 끝나면 몇 달간 버티며 머무를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이제 집 걱정은 해결되었으니 호흡을 길게 가져가자는 마음을 먹었다.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마음 먹었다. 새로운 마음으로 몇 군데 이메일을 더 넣어보았다. 그냥 자려다가 그래도 여기 몇 군데는 더 보내보자는 생각으로 메일을 보냈다. 그동안 연락했던 곳들처럼 아마 별 답변이 없겠지하며 큰 기대없이 연락을 넣었던 곳인데 한 좋은 랩에서 인터뷰 기회를 얻었다. 며칠간 열심히 준비를 해서 화상 인터뷰를 했다. 학교에서도 포닥 자리가 있을 것 같은 곳에 컨택을 해둔 상태였는데 그 교수와의 인터뷰도 같은 날 이루어졌다. 졸업가운도 주문하러 학교 서점에 갔어야했다. 덥디 더운 텍사스의 7월 중순에 긴 셔츠를 입고 자켓도 입고 땀을 줄줄 흘리며 캠퍼스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니 몸이 지쳐버렸다. 그래도 마음이 지치는 것보다는 얼마나 좋냐며 힘든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 굉장한 일이 일어났다. 전날 인터뷰를 본 곳에서 바로 오퍼를 준 것이었다. 좋은 조건으로. 정말 울 뻔했다. 아내와 아들이 그 자리에 없었으면 아마 울었을 것이다. 그동안 쌓아온 마음의 짐들을 다 내린 느낌이었다. 끝없이 내려갈 줄만 알았는데 어느새 나는 바닥을 쳤던 것이다. 바닥을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던 것을 몰랐던 것이다. 마음을 편히 먹고나니 일이 풀리기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새로 갈 도시의 집을 알아보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점이 많다며 즐거워하기도 하고, 긴 겨울을 어떻게 보낼거냐며 걱정도 했다. 그래도 다 좋았다. 살던 동네와 비슷한 분위기의 도시인 것 같아 정붙이고 살기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좋았다. 지난 몇 달간 힘들던 시간들이 눈 녹듯 기억에서 사라져버렸다. 기존에 인터뷰를 했던 곳에도 최후 통첩을 날렸다. 좋은 곳에서 오퍼를 받았는데 곧 결정을 해줘야한다며, 만약 이번에도 답이 없다면 나에게 오퍼를 안주는 것으로 알고 그 쪽이랑 계약하도록 하겠다며, 기대한만큼 갑절이된 서운함이 마음에 가득했지만 그래도 간절함을 더해서 꼭 답변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여기서도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거의 3주간 답이 없던 그 교수가 오퍼를 주겠다며 답메일을 보낸 것이었다.
행복한 고민이었다. 행복한 고민을 며칠간 했다. 어딜가도 나에게 날개를 달아줄 것만 같은 곳들이었지만 비교를 하자니 장단점이 보였다. 비슷한 것보다 다른 것이 더 많았고 성질이 확연히 달랐다. 그러니 더 많은 고민이 되었다. 결국 먼저 인터뷰를 했던, 원래 가고 싶었던 곳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 뒤로도 몇몇 우여곡절들이 있었지만 비교적 순탄하게 이사를 했고 지금 이 곳에서 몇 달째 지내고 있다.
행복한 스토리가 계속 이어질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지금도 계속해서 흔들리고 힘들게 지내고 있지만 그래도 지나고 보니 어떻게든 살아왔더라. 그래서 앞으로도 어떻게든 살아가질 거라고 믿고 있다. 힘들지만 그래도 행복한 순간들을 즐기려고 한다. 행복한 주말이었다. 다음주도 행복하게 지나갈 것이라 믿는다.